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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꼴찌학교 수능 돌풍 산골학교엔 전입생 북적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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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숨쉰다. 그곳 교사들은 전교생의 이름을 부른다. 그곳에는 학원도 족집게 과외도 없다. 범재도 영재로 키워내는 시골학교가 공교육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 폐교 위기의 산골학교에 도시의 전학생이 찾아오는 이유는.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겨울 체험학습으로 연날리기를 하는 거산분교 아이들.

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동리 565번지 익산고등학교(교장 최인호).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왁자한 소리가 들리는 학생기숙사로 향했다. 방학을 하루 앞둔 12월26일, 기숙사 대청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에 분주한 아이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1966년 개교한 익산고는 전주, 군산, 익산 등 평준화 지역 선발고사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입학하는 ‘후기 학교’였다. 학생들은 창피하다며 교복을 입지 않으려 했고 졸업생들도 모교 이야기가 나오면 머쓱해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영재학생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상황은 180。 달라졌다. 특히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된 12월2일 이후 이 학교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면 소재 종합고등학교(인문계 3반, 실업계 3반)에서 전라북도 인문·자연계 전체수석(고인성), 예체능계 수석(김경범)을 동시에 배출했을 뿐 아니라, 3학년 영재반 29명 가운데 330점 이상 고득점자가 16명, 수능평균은 320점대였다. 영재반뿐 아니라 일반반 학생들의 성적도 동반상승해 2개반 62명 중 26명이 이미 4년제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이런 소문이 나자 제일 먼저 언론사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만년꼴찌 시골학교의 수능반란’ ‘꼴찌학교 명문고로 우뚝’ ‘농촌학교의 쾌거’ 등 익산고 돌풍은 전국적인 뉴스거리였다. 12월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아 수업에 지장이 생기자 최 교장이 ‘방문 금지’ 명령을 내렸을 정도. 불청객인 기자가 익산을 방문한 바로 전날에도 서울 손님들이 다녀갔단다. 그들은 한결같이 “공부를 잘하게 만든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범재를 영재로 만든 비결

“찾아온 분마다 질문은 똑같은데 해드릴 말이 없네요.” 고3 학년부장인 이정두 교사(42)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교사는 3년 동안 2기 영재반 담임을 맡았다. 일부에서는 익산고 돌풍에 대해, 장학금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끌어모아 3년 내내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1999년 익산고가 영재반 간판을 내건 것은 사실 신입생을 끌어모으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인구 1만명이 채 안 되는 익산은 다른 농어촌 지역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학생 부족이 최대 고민이었다. 이 무렵 학교설립자인 익성학원 지성양 이사장(1999년 작고·신흥증권 창업자)이 150억원의 장학기금을 내놓았다. 이 기금으로 익산고는 30명 규모의 영재반을 설치했다. 이들에게 3년간 학비와 기숙사비 면제, 1개월간 호주 어학연수, 원어민 영어회화, 방과후 특별수업(수학, 토플, 논술) 등 파격적인 특전을 약속했다. 그래도 선뜻 ‘꼴찌 학교’에 오겠다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말이 영재반이지 전라북도가 실시하는 고교 선발시험(180점 만점)에서 140~160점대를 받은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3년 후 수능에서 330~340점대를 받았다.

범재를 모아 영재로 키워낸 비결이 궁금해 질문을 쏟아냈다. “기숙학교니까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책상 앞에 붙잡아둔 것 아닙니까?” “3년치 진도를 2년 만에 끝내고 3학년 때는 수능 문제풀이 위주로 복습했죠?” “방과후 특별수업이 있던데 별도의 족집게 과외 아닌가요?” “사립학교니까 전국에서 난다 뛴다 하는 교사들을 특별 초빙이라도?”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사실 사립학교인 익산고는 꼴찌였을 때나 지금이나 교사들의 변동이 거의 없다. 이정두 교사도 이 학교에 14년째 재직중이다. 속진수업 이야기가 나오니까 학교 사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며 웃는다. “교과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어요. 인문계·실업계 18개 학급에 교사가 교장·교감 포함해 38명입니다. 한 교사가 2~3개 과목을 맡는 것은 일도 아니어서 저만 해도 1학년 공통과학, 2학년 물리1, 3학년 물리2, 교과 재량 보충까지 맡고 있어 속진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학원에 대한 미련 끊어라

기숙사의 기상시간은 아침 6시반에서 7시. 운동장 한바퀴 도는 정도로 아침 운동을 하고 0교시 심화학습, 1~7교시 정상수업, 다시 8교시 심화학습, 9교시 자율학습까지 마치면 저녁 8시. 도시의 아이들이라면 학원으로 향할 시간이지만 이곳 익산은 학원이 있는 시내까지 너무 멀다. 그래서 고3 수험생들도 새벽1시까지 기숙사에서 자율학습을 한다.

“성공 비결이 있다면 ‘자율’이에요. 1학기 때 강제로 9교시(저녁 8시에 끝난다) 논술강좌를 듣게 했는데 어느 날 학생들이 희망자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해요. 대신 뭐할래 하고 물었더니 교육방송을 시청하겠다는 아이, 인터넷 사이버 강의를 듣고 싶다는 아이, 과학실습실에서 그룹스터디를 하겠다는 아이 등 제각각이었습니다. 희망에 따라 그룹을 만들어주고 7개 교실을 개방해서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라도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기다리죠. 그래서 익산고 아이들은 질문이 있으면 교무실로 스스럼 없이 찾아와요. 그렇게 했더니 첫 모의고사 성적이 오히려 올라가서 아예 3학년 보충수업을 없앴죠.”(이정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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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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