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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에 에이즈까지… 구멍 뚫린 혈액관리

‘혈액장사’ 비판받는 적십자사

  • 글: 최영철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간염에 에이즈까지… 구멍 뚫린 혈액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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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십자사 내부 제보자들이 검찰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사의 ‘혈액 안전 불감증’은 심각한 지경이다. 2년에 걸쳐 4회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의 혈액이 이후 한 차례 음성반응이 나왔다는 이유로 병원에 공급됐다. 또한 B형 C형 간염 양성반응을 보인 ‘헌혈유보군 혈액’도 각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됐다.
간염에 에이즈까지… 구멍 뚫린 혈액관리

백혈병을 앓고 있는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상덕 감사가 4월1일 대한적십자사 앞에서 불량혈액을 유통시킨 데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3월28일 감사원이 발표한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안전 관련 감사 결과는 온 국민을 ‘혈액 공포’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당장 적십자사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는 사람들은 감사 결과와 아무 관련이 없는 헌혈 자체를 거부하고 나섰고, 자신이 낸 적십자 회비 5000원을 환불해달라며 적십자사를 괴롭히는 ‘열성’ 회원도 줄을 잇고 있다. 한편 적십자사의 혈액 비리를 최초로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은 이번 감사를 빙산의 한 파편에도 이르지 못한 ‘부실감사’라고 증언한다.

‘과거 혈액 검사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인 헌혈 부적격자 99명의 혈액 309건이 수혈용과 의약품 원료용으로 각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 예전 혈액검사에서 B형 간염과 C형 간염에 1회 이상 양성 반응을 보인 헌혈 부적격자 혈액 7만6369건이 시중 병원과 제약사로 유출. 이들 혈액을 수혈한 환자 중 실제 9명이 간염에 감염. 에이즈 환자 199명의 신상정보에 오류 발생, 이에 따른 에이즈 감염 혈액 유통 가능성 제기 등….’(감사원 감사 결과 요약)

때마다 예산지원을 하면서도 정부에 징계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피감사기관인 적십자사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웬 소란’이냐는 반응이다. “출고된 혈액의 대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감사 결과를 정면 반박한 적십자사는 “자체 추적 결과 수혈사고로 확인된 B형과 C형 간염 감염자 9명에 대해선 문제를 일으킨 선별 헌혈시스템이 완비됐기 때문에 향후 똑같은 실수란 없다”며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다. 일간지에 낸 사과문과 해명서 어디에도 수혈 사고 피해자에 대한 진지한 사과나 보상에 관한 내용은 없다.

지난 8개월여 동안 적십자사의 ‘부실한 혈액관리’ 실태와 ‘도덕적 해이’ 현상을 취재해온 기자와 그 취재를 도운 적십자사 내부 제보자들에겐 이번 감사의 내용이나 그에 대한 적십자사의 ‘비양심’적 대응이 전혀 새롭지 않다.

감사원 감사결과는 빙산의 일각

그동안 기자와 제보자들은 적십자사의 ‘오염혈액 유출’과 ‘혈액장사’ 실태의 베일을 벗겨나갈 때마다 금세 드러날 거짓말을 해 놓고도 도리어 언론을 ‘협박하는’ 적십자사의 생리를 생생히 경험해 온 터였다. 적십자사는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나오자 기자에게 내부 자료를 유출했다는 빌미로 오히려 제보자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정작 기자가 이번 감사 결과에 별다른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현재 밝혀진 감사 결과보다 앞으로 드러날 더 놀라운 혈액관련 비리가 고구마줄기처럼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캐기만 하면 끝도 없이 올라올 적십자사의 ‘혈액 비리’는 이제 새로운 수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는 유출되어서는 안 될 혈액이 공급되었다는 사실만 늘어놓았을 뿐 문제의 혈액을 수혈받은 환자나 그 혈액으로 만든 혈액제제를 먹은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는 핵심 결론부분이 빠져 있다. 장전만 하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꼴이자 뇌관이 터지지 않은 불발 감사였던 셈이다. 적십자사가 ‘그러니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식으로 국가기관의 감사를 무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혈사고로 확인된 10명(적십자 주장 9명)의 간염 감염자도 감사원이 직접 밝혀낸 것이 아니라 언론이 먼저 이를 밝혀내자(‘주간동아’ 424호 단독보도) 적십자사가 어쩔 수 없이 진실을 토해낸 경우다.

이번 감사가 서류나 전산상에서 이루어진 ‘앉은뱅이 감사’로 끝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감사원은 문제가 된 혈액이나 혈액제제에 대한 역학조사 권한이나 능력이 없을 뿐더러 역학조사 권한과 인력을 확보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옛 국립보건원)를 동원할 ‘힘’이 사실상 없다. 힘은커녕 역학조사를 벌일 의지 자체가 없었다.

감사원은 자신들이 밝혀낸 ‘진실’이 ‘혈액 유통 비리’라는 거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은 혈액비리의 뿌리까지 파헤쳐 발본색원할 경우 공기업 성격을 띤 적십자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국가 혈액유통 체계가 일시에 붕괴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세부 감사를 포기해버렸다.

내부 제보자들, 검찰에 자료 제출

감사원의 이번 감사결과는 정식 기자회견을 거친 것이 아니라 적십자사에 통보된 감사결과를 모 기관에서 언론에 흘리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공개된 것이다. 감사원측은 이후 “감사결과 발표를 두고 일반 국민들이 받을 충격 때문에 고민한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또 적십자사를 관리·감독해야 할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적십자사와 ‘같은 배를 탄 비리의 운명공동체’로서 그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감사원의 감사가 오히려 적십자사의 조직적 비리구조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에서 가장 힘 있는 두 조직이 적십자의 ‘혈액 비리’ 척결에 나섰다. 바로 지난 2월과 3월 검찰과 국세청이 적십자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와 세무조사에 각각 들어간 것. 그것도 보건범죄 수사에는 가장 베테랑이라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김병화) 소속 보건담당 검사 3명과 국세청 본청 특별조사팀이 투입됐다. 적십자 10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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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영철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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