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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굴

조선왕조실록으로 본 문종 독살설

주치의는 왜 종기 걸린 임금에게 독성 강한 꿩고기를 처방했나

  • 글: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mystery123@korea.com

조선왕조실록으로 본 문종 독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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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조는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비정한 삼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발굴된 역사자료에서 세조가 자신의 형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의 죽음에도 관여했다는 정황이 발견됐다.
  • 세조는 문종의 주치의관 전순의를 사주해병약한 임금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데….
조선왕조실록으로 본 문종 독살설

과연 세조는 자신의 형인 문종의 죽음에 관여했을까.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세조의 화상.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격변 중 하나는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이다. 어린 나이에 단종이 즉위하자 삼촌인 수양대군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손에 넣었으며 이에 불복한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무자비하게 처형당하는 등 정치세력간의 갈등은 큰 상처를 남겼다.

세자 향(珦). 삼촌에 의해 왕권과 목숨까지 잃은 비운의 왕 단종의 아버지이자, 조선왕조의 황금시대를 연 세종의 맏아들인 향은 세종 재위기간 32년 중 마지막 8년을 섭정했다. 그는 평소 학문을 좋아하고 집현전 학자들을 아끼는 등 성군의 자질을 보였으나 어려서부터 병약했다. 세종이 그로 하여금 서무(庶務)를 결재하게 하였으나 신하들이 그의 각종 질환을 이유로 반대했을 정도였다.

1450년 세종이 사망하자 세자 향은 왕으로 등극했다. 조선왕조의 제5대 왕 문종(1414~52)이 바로 그이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진법(陣法)을 편찬하는 등 군정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군제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하여 제시했고, 조선 초기 로켓포인 신기전(神機箭)을 발사하는 화차를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이 화차는 ‘문종 화차’로도 불린다).

그러나 문종은 재위 2년4개월 만에 39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세자 단종(1441~57)이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인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단종의 즉위는 앞서 말했듯 정치적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세조(1417~68)는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단종과 사육신 등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역사학자들은 세조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조카 단종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세조가 아니었더라면 어린 단종을 둘러싼 구신(舊臣)들의 세력 다툼에 조선왕조가 멸망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단종이 어리다는 것을 빙자하여 구신들이 세력다툼을 벌이자 세조가 조선왕조를 세운 이씨 왕가의 종친으로서 불가분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데 근래에 발굴된 자료에는 세조가 문종의 사망 이전부터 왕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즉 세조는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른 후 벌어진 불안한 정치상황 때문에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문종의 사망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애초부터 왕위 찬탈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한 문종의 의관 전순의(全循義)가 수양대군의 비호를 받으며 문종의 병을 고의로 악화시켜 빨리 죽게 만들었다는 정황도 발견됐다. 세조의 비호를 받은 의관에 의해 문종이 독살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문종 살해 정황 발견

조선왕조실록은 문종이 원래 병약했으므로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때문에 실록은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사망한 것에 대해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문종의 아들 단종과 동생 세조의 갈등만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세조가 문종의 사망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문종과 세조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 사람이 당시 의관 전순의이다.

전순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성종 등 조선왕조 5대 임금의 질환을 치료했던 당대의 명의로 내의원 의원에서 첨지중추원사에까지 올랐다. 그의 출세가 남다르다는 것은 그가 노비나 백정 등 출생 신분이 대단히 미천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단종 3년 대사헌 권준 등은 “전순의는 계통이 심히 미천한데 세종대왕 같은 밝은 임금을 만나 초법적으로 발탁되어 그 지위가 3품에 이르렀고, 그 상급과 은총을 누린 것이 셀 수 없다”고 상소를 올렸다. 즉, 전순의는 당시 의관이나 역관의 신분이던 중인이나 상민계급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천한 신분임에도 종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른 전순의는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단종 3년 신하들이 그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성화를 부리자 전의감제조가 전순의의 천재성을 설파하며 더 이상 그에 대한 처벌을 운운하지 말 것을 상소한 기록이 있다.

전순의는 의관 노중례, 최윤과 함께 한의학 3대 저술 중 하나인 ‘의방유취(醫方類聚)’를 공동 편찬했고, 근래 발견된 ‘식료찬요(食療纂要)’와 세종 때 세계 최초로 과학영농온실을 건설했다는 기록을 적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을 펴냈다.

그런 전순의가 세조의 사주로 문종 살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까닭은 문종의 종기를 치료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전순의의 문종 치료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원문을 그대로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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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mystery1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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