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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일본패망운동’ 벌인 ‘시온산제국’ 스토리

“우리가 이겨냈으므로 ‘제국’은 이미 완성됐다”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일제 말기 ‘일본패망운동’ 벌인 ‘시온산제국’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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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본 패망을 예언하며 경북 청송 일대에 ‘제국’을 선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6·25와 5·16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세상과 불화하며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왔다. ‘제국’의 마지막 일원은 “이겨냈으므로, 살아남았으므로 우리가 승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60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우화 같은 이야기.
일제 말기 ‘일본패망운동’ 벌인 ‘시온산제국’ 스토리
2월 말의 어느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니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인이 보낸 메일 한 통이 눈에 띈다. ‘시온산제국’이라는 사건에 대해 들어보았느냐는 내용이었다. 제국이라, 이름만으로는 사이비종교집단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지인의 말은 조금 달랐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봄, 일제가 곧 패망할 것이라 예상해 제국 건국을 선포했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호되게 탄압을 받은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기자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

며칠 지나지 않아 국사편찬위원회 홍보담당 연구관으로부터 자료가 도착했다. 2월초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문서였다. 1945년 6월11일 미국 전쟁성 산하 통신보안국(SSA)이 조선총독부에서 도쿄의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첩보내용을 도감청해 작성한 문서였다. 페이지마다 상단과 하단에 큼직하게 박혀있는 ‘Top Secret Ultra’라는 글씨가 유난히 돋보였다. 다섯 페이지 남짓 되는 이 문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태평양전쟁의 전세 반전 이래 조선인들의 정서가 불안해지면서 발생한 특이할 만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경상북도(조선의 남동부 지방)에서 발생한 이른바 ‘시온산제국’ 사건이다. … 이들 일군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일본의 붕괴 및 연합국의 필연적 승리를 전파하며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공포했다. 또한 ‘주일본 한국총독’을 포함한 약 600명의 관리를 임명하여 연합군의 조선 상륙 환영준비를 하였다. … (여기서부터는 조선총독부의 보고서 원문인용) 국명, 국기, 국가, 헌법 및 독립선언을 채택한 이들은 전세가 일본에 불리해질 때마다 승리의 축제를 열었고, 1600개의 ‘시온왕국기’를 제작해두었다. … 설령 이것이 다분히 광신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최근 조선인들의 정서와 그리스도교도당 저변에 있는 숭미(崇美) 및 숭영(崇英)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3·1절 아침, 신문을 펼쳐들자 몇몇 일간지에서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간략한 시온산 관련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지방방송국에서도 단신을 제작한 모양이었다. 한 지방방송국 기자로부터 당시 사건에 가담했다는 노인의 연락처를 얻었다. 시간 날 때 한번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상의 분주함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북핵문제와 6자회담, 이라크파병 같은 초대형 이슈 사이에 60년 전의 ‘해프닝’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마지막 기회

시간이 한참 지난 4월 하순 어느날, 마감을 끝내놓고 취재수첩을 정리하던 손끝에 구석에 박혀 있던 전화번호 하나가 걸린다. ‘정운훈이라, 이게 누구였더라.’ 달랑 이름 석자만 가지고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역번호 053, 한참을 바라본 후에야 ‘시온산제국 농무대신’ 이었다는 노인의 전화번호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전화를 해보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일 아침, 별 기대 없이 버튼을 누르자 그제야 누군가 수화기를 든다. 정노인의 부인이라고 했다. 노인은 벌써 한달 이상 입원중이라는 전갈이었다. “그래도 말하는 데는 불편이 없으세요.” 입원실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시 부인과의 몇 차례 통화. 어쩌면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입원해 있는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올해 나이 여든셋인 그는 병색이 완연해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해 보였다. 장시간 앉아 시온산교회에 관한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느라 생긴 병이라고 했다. 시온산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는 인사에 그가 대뜸 책 한 권을 꺼낸다. 자신이 쓴 ‘시온산예수교장로교회사’(이하 교회사·‘시온산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교파가 아니라는 것이 정노인의 설명이다. 교파를 초월한 이들이지만 다수가 장로회에 속해 있었기에 훗날 장로교라는 이름을 붙였을뿐이라는 것이다)였다.

힘겨워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의 눈에 금세 힘이 들어간다. “우리가 이겼지. 오직 성경의 힘으로 마귀의 제국 일본을 이긴 거야.”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 동안에도 그의 믿음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고문 당하고 두드려 맞고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켜냈어. 일본놈들, 점복(占卜)에 경배하는 가짜들, 좌익우익 할 것 없이 모두 이겨냈다고.”

경북 의성에서 나고 자랐다는 정노인은 대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에서 일하기도 했던 인텔리 출신이라고 했다. 1941년 고향에 온 박동기 전도사와 함께 새벽기도운동을 하며 시온산교회를 처음 시작한 그는 1945년 ‘제국 선포’ 때 친형과 함께 내각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형은 내무대신, 그는 농무대신이었다. 역시 장시간의 대화는 무리였을까. 그의 자세가 점점 흐트러져갔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단순한 종교적 광신일 수도, 태평양전쟁 말기의 스트레스가 일군의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의 발현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제통치와 해방, 미군진주와 좌우익의 대립, 6·25, 박정희의 집권에 이르는 시간 동안 그와 그의 ‘형제’들이 겪은 이야기는, 가혹했던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하나의 우화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소용을 알 수 없는 옛이야기를 여기 옮겨두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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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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