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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

왜 지금 이순신인가

드라마·소설·평전 재조명 열풍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왜 지금 이순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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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순신인가
“이순신은 국민영웅인데 이렇게 중요한 인물에 대한 정확한 평전이 없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책임이다. ‘난중일기’ 수준에서 이순신을 이해하는 데는한계가 분명하다. 16세기 후반 조선과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임진왜란은 왜 발발했으며, 그 시기 각국의 지배층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등 전체 맥락에서 이순신의 역할을 묻고자 한다.”

드라마로, 소설로, 평전으로 2004년 우리 앞에 다시 선 이순신. 그러나 저자마다 달리 그리는 이순신과 주변인물, 사건에 대한 제각각의 해석과 시각차가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이것이 유신시대 ‘민족영웅 이순신’과는 또 다른 이순신의 이미지를 고착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세기 이순신, 무엇이 문제인가. 몇 가지 쟁점별로 정리했다.

시대 따라 달라진 위상

송우혜씨는 4월28일 열린 세미나 ‘이순신 정신의 현대사적 재조명’에서 ‘문학작품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이순신 폄훼현상’을 발표했다. 우선 이 논문은 이순신 평가가 시대에 따라 큰 편차가 있음을 보여주고, 드라마 원작소설의 역사왜곡 부분을 지적했다. 다음은 논문 일부를 요약한 것.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원균을 모함하고 전공을 가로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이른바 ‘원균 명장론’은 원균 지지자들에 의해 줄기차게 제기됐고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더욱 기세를 올렸다. 결국 이것이 받아들여져 이순신이 투옥되고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됐으나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한다. 그러나 다시 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이 13척밖에 남지 않은 배를 가지고 명량대첩 신화를 이룩함으로써 이런 주장은 수그러들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이순신은 ‘희대의 영웅’으로 문학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종전 2년 후 나온 윤계선의 ‘달천몽유록’은 순국 충장 27명을 묘사하면서 ‘대장군 이순신’을 가장 비중있게 다뤘다. 정조시대에는 왕실에서도 이순신을 최고로 예우해 왕명으로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된다.

일제시대에 지식인들은 300년 전 일본을 통쾌하게 이긴 이순신을 상기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북돋우려 애썼다. 이 시기 박은식 신채호 이광수 등이 각종 지면을 통해 ‘이순신전’을 연재했다. 이순신이 ‘성웅’의 이미지를 얻게 된 것도 이 무렵. 해방 이후 70년대 말까지 이은상의 ‘이충무공 일대기’를 필두로 이순신 전기물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이순신 현창’에 나섬으로써 확고하게 ‘성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직후 ‘원균 명장론’이 등장하면서 ‘이순신 폄훼논쟁’이 벌어졌다. 포문을 연 것은 1981년 울산대 이정일 교수가 ‘역사학보’에 발표한 ‘원균론’. 이 논문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원균이 이순신, 권율과 같은 반열인 ‘일등공신’에 선정된 사실과 선조의 적극적인 원균 옹호 발언을 근거로, 이순신의 신격화 과정에서 원균이 부당하게 악역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정일 교수와 논쟁을 벌였던 송우혜씨는 “1980년대 초반 돌연 그런 주장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매우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특히 대학가에서는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반감과 반발 때문에 그런 주장을 받아들인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정두희 교수는 1994년 발표한 논문에서 시대에 따라 달라진 이순신 평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체제유지를 위하여 이순신을 과도하게 비인간적으로 성웅시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이순신에 대하여 일종의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을 체제 유지에 이용한 그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지 이순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이순신연구-임진년 이후 그의 전략과 정유재란에 관한 재검토’ 이기백 선생 고희기념 한국사학논총).

한편 송우혜씨는 ‘원균 명장론’이 10년 주기로 고개를 든다고 말한다. 1981년 이정일 교수의 논문에 이어 1994년대 고정욱 소설 ‘원균 그리고 원균’, 그리고 이번에 개작한 김탁환의 ‘불멸’도 그런 혐의가 있다는 것. 송씨는 백번 양보해 원균이 이순신을 신격화하기 위해 부당하게 악역으로 설정된 ‘희생자’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곧 ‘원균은 명장”이란 등식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평범에서 비범으로

이순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이충무공전서’에 “어려서부터 호탕하여 구속을 받지 않았고 뛰어나게 기백이 있었으며 여러 아이와 장난할 때도 군진놀이를 하였는데 이순신을 받들어 장수를 삼는 것이었으며 그 지휘하는 법도는 아주 볼 만하였다”는 정도다. 이것이 어린이용 위인전기에 등장하는 ‘골목대장 이순신’의 모습이다.

이순신은 스물한 살 때까지 ‘문과’ 공부에 정진하다 결혼 후 스물둘에 비로소 무과로 바꿨다. ‘이충무공전서’는 “처음 두 형을 따라 유학(儒學)을 배웠는데 재주가 있어 성공할 만도 했으나 매양 붓을 던지고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고 전한다. 김태훈씨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오히려 보성군수를 지낸 장인 방진이 활쏘기 등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 그 영향으로 결혼 후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장인 방진의 재력과 무예가 이순신의 무과 공부를 뒷받침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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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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