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초등학교 교사의 학습혁명 체험기

국어책 내리 3번 읽기, 90분 연속수업, 학급 영어캠프 완전·완성학습에 기초실력 쑥쑥

  • 글: 박덕규 교육학 박사·전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처장 sampopak2003@yahoo.co.kr

    입력2004-07-29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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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6월 21년간 일한 한국교육개발원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나는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휴가를 이용해 내가 유학한 독일과 이웃나라 프랑스와 영국의 초등학교를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세심하게 초등교사로서의 새출발을 준비했다. 기간제 교사였지만 학교측의 배려로 담임을 맡게 됐고 여학생 5명, 남학생 6명인 삼포초등학교 4학년과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의 학습혁명 체험기

    할아버지 선생님과 11명이 전부인 4학년 교실. 겨울방학 중 모습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지닌 장래 교수 예은이, 작곡가를 꿈꾸는 백설공주 해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혜진이, 오보에 같은 웃음의 소아과 의사 슬기, 새로 맞춘 안경 속에서 반짝이는 눈빛이 영롱한 한국의 빌 게이츠 현주, 늠름한 장군이 될 남일이, 침묵의 실천가로 국민 기업가가 꿈인 건희, 오빠부대를 이끌며 다닐 탤런트 상현이, 유엔 사무총장을 목표로 영어공부에 열심인 이레, 대한민국 유도 금메달리스트 감인 동심이, 한국의 스프린터로 자랄 날쌘돌이 연수. 이 11명의 아이들이 지난 한 학기 동안 나의 학습혁명 동반자였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 있는 삼포초등학교는 홍천강을 건너 그리 넓지 않은 들판을 지나 중학교가 있는 작은 마을을 1km쯤 달리면 왼쪽으로 보이는 학교다. 지난해 여름 나는 이 학교 기간제 교사로 부임했다. 인천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것이 나의 교직생활 전부. 독일 유학 후 줄곧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와 강의활동만 해온 내가 60세에 기간제 교사를 자청한 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교원의 자질향상과 처우개선’ ‘교원의 소양과 자기계발의 이론과 실제’ ‘올인교수법’ ‘교원 표준 수업시수 설정연구’ 등 이론 중심의 연구를 현장에서 적용해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2003년 7월19일 여름방학식날 이루어졌다. 인사도 할 겸 부모님들께 드리는 편지를 나누어주기 위해서였는데 예상 밖으로 아이들이 간단한 영어인사에도 반응을 못하는 것을 보고 특별 방학숙제를 내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1주일에 1시간씩 영어 말하기와 듣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언어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아이들은 말문이 터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이들에게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를 각색한 영어대본을 나누어주었다. 학기 중 교재로 쓰려고 준비한 것인데 방학 동안 미리 읽어오라는 취지였다. 영어단어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우리말 발음과 해석을 달았더니 A4용지로 10쪽 가량 됐다. 그리고 부모님께 담임의 편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방학 중 과제를 적었다.

    이런 식의 공부는 어른도 아이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방법은 장기기억법 학습으로 국어의 읽기, 말하기, 듣기, 글짓기의 기본이 되는 개념형성, 사고력 증진, 글의 이해력 증진, 언어 표현력 강화, 고급국어 문화 형성 및 발성 연습 등을 한꺼번에 키워준다. 단 반드시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3번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읽는 도중에 조바심하여 중단해서는 안 된다. 또 부모님들께 공부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밖에 나가서 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공부할 때와 놀 때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주관식 평가에 취약한 아이들



    한편 2학기 개학은 8월25일인데 욕심 같아서는 새로운 교수법의 적용을 위한 준비적응기간으로 개학을 1주일 앞당기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학년과의 형평성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학생들의 가정도 살피고 방학숙제를 점검할 겸 가정방문을 시작했다. 8월13일 일찌감치 학교관사로 이사를 했다.

    가정방문을 하면서 숙제를 다 한 아이가 2명밖에 없음을 알았다. 나머지는 아예 숙제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개학 전 학생들의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 실시할 예정이었던 학력·체력 진단테스트는 결과를 보지 않아도 뻔했다. 어쨌든 개학 이틀 전인 8월23일 예정대로 4학년생들을 학교로 모이게 해서 진단테스트를 강행했다. 문제는 학생들이 이미 배운 4학년 1학기 교육과정을 참고로 내가 직접 출제했다.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이 시험은 2003년 4월,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달간 수업참관을 하며 수집한 시험지와 각종 학습지를 참고해서 주관식과 선택형 문제 비율을 50 대 50으로 해 출제한 것이다. 〈표1〉에 나타난 최저 점수는 거의가 선택형 문제에서 얻은 점수였고, 그나마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되물은 결과 우연히 찍어서 맞힌 것이었다.

    국어는 주로 지문을 읽고 답하는 문제와 의견을 3줄로 쓰는 문제를 출제했고, 수학은 선택형이라 해도 계산을 바탕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덧·뺄셈과 곱·나눗셈을 손가락 계산을 하고도 틀린 경우가 2명, 손가락 계산은 아니지만 4학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가 1명 있었다. 과학시험은 3학년과 4학년1학기 실험관찰 내용만 출제했고, 사회는 내 고향에 관한 문제를 중심으로 냈다. 예·체능 교과는 이론과 실기를 50%씩 반영했고, 영어는 회화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듣기와 말하기 중심으로 출제했는데 〈표1〉에도 나타났듯이 평균 24점이라는 난감한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개학과 동시에 학교 차원에서 실시된 진단테스트 결과는 뜻밖이었다. 외부 시험지로 치렀는데 영어를 제외한 학급 평균성적이 75점이나 됐다. 문제는 모두 선택형이고, 예·체능은 이론 시험문제 10개씩 출제됐다. 성적을 연구부장에게 보고한 후 시험지를 가지고 다시 꼼꼼히 확인해본 결과 이를 학생들의 실력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4명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찍어서 맞춘 성적이었다. 그래서 이 수준에서 좀 쉽게 출제한 제2차 자체 진단평가를 실시했다.



    1차 평가 때보다 약간 높아졌으나 여전히 저학력 상태였다. 특히 외부시험지인 선택형 객관식과 순수한 개인적 학습상태를 확인하는 주관식 평가 간의 성적차가 컸다. 한편 내가 직접 구입해 실시한 학생들의 지능지수는 평균 107.5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다. 머리가 나빠서 학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주관식 평가문항을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읽기능력이 부족하고, 문제 자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이해력 부족과 언어개념의 형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언어개념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은 영어 단어는 많이 외고 있으나 정작 회화나 작문은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국어공부를 4년이나 해왔지만 일상적 언어개념과 국어책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일치하지 않아 읽기, 이해, 문제해결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책 읽기를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휴일 없는 우리반

    개학 후 이틀째인 8월26일, 수학 셈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남학생 1명을 남도록 해서 저녁 6시 반까지 보충수업을 시켰다. 하필 그 아이의 집이 제일 멀어서 학교버스를 타지 못하면 하루에 네 번 왕복하는 홍천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했다. 한 달 예정인 특별보충수업 기간에는 저녁 6시40분 버스를 타고 귀가하라고 했다. 꾸물거리다 그마저도 놓쳐 내 차로 집에 데려다준 일도 있었다.

    이 아이의 보충학습은 2학년 수준의 구구셈부터 했다. 순서대로 시키면 더듬거리긴 해도 9×9까지 외웠다. 그러나 중간에 “9×5는 얼마?”라고 물으면, 다시 9×1=9부터 시작해 9×5=45가 나왔다. 다음날, 반 전체의 계산능력이 수준 이하임을 알았고, 그 다음날부터 반 전체를 대상으로 4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10자리 덧·뺄셈, 10과 100자리 곱셈, 다양한 자릿수의 나눗셈 문제를 100개씩 만들어 집중 연습시켰다.

    수학 기초 계산문제를 테스트한 첫날, 그러니까 수업 3일째 테스트결과는 허탈했다. 충분히 시간을 주었음에도 만점은 1명도 없고 80점이 2명이었다. 나눗셈 문제는 4분의 1도 풀지 못한 아이, 3분의 1도 풀지 못한 아이가 각각 1명씩 나왔다. 전반적으로 풀어 쓴 답의 정확도가 50%를 밑돌아 덧·뺄셈과 곱·나눗셈 400문제의 평균이 48점에 불과했다. 수학 계산문제를 푸는 연습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반 아이들 중 4명은 1주일에 한번씩 과외교사가 가정방문을 해서 수학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계산능력은 수준 이하였다. 방과후 특별보충수업에 국어책을 잘 읽지 못하는 아이 1명을 합류시켰다.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한편, 국어시간에는 일주일 내내 국어책 2권 읽기를 시켰다. 국어 교과서는 두 종류이고 주당 6시간이다. 하나의 소단원을 6시간에 걸쳐 가르치도록 편성되어 있는데, 읽기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매주 1단원씩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매주 정해진 소단원을 온전하게 계단 올라가듯 착착 진행시키려면 2∼3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모두 남겨서 보충수업을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담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소란을 떨었다. 뭐 공부 못하는 것이 죄인가. 즐겁게 뛰어놀면 건강해지고 서로 부딪치면서 커야 원만한 인격이 형성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이건 이론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뭐 하러 그 많은 돈을 들여 학교를 만들었나. 강원도교육청의 초등교육과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의 초등교육에서는 기초·기본교육을 중시한다. 그리고 인성교육을 위하여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말 대로라면 지금 이 학급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덧·뺄셈과 구구셈, 국어책 읽기에는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첫주를 탐색기간으로 보내고 다음주부터 학급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상했다. 첫주 마지막 날인 토요일, 아이들 머릿속은 온통 오후에 뭘 하고 놀 것인가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주 학습계획서를 받아드는 순간,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는 표정이었다.

    다음주부터 주중에는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수업을 하며, 기존의 시간표를 무시하고 아침 자습시간엔 영어, 오후 보충수업시간엔 국어와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및 국경일에도 공부한다고 선언했더니 반이 쥐죽은듯 고요했다.

    교육과정상 4학년은 주당 29시간씩 공부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후 우리반은 그 3배가 넘는 무제한 공부가 시작됐다. 급식이 없는 토요일에는 점심을 싸오도록 했고 5시까지 공부하며, 일요일과 각종 휴무일에도 점심을 가지고 와서 오후 3시까지 공부한다고 했다. 주중엔 오후 간식을, 주말과 국경일엔 오전과 오후 간식을 꼭 가지고 오도록 당부했다.

    〈표3〉은 삼포초등학교 4학년의 2학기 주간 수업시간표다. 시간표를 자세히 보면 영어·도덕·체육과 같은 생활교과는 주기적 학습으로 운영하고, 국어·수학·과학·사회·미술 및 특활은 집중수업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금요일에는 과학실험/사회탐구를 앞으로 설명할 ‘시나리오/프로젝트 방법’으로 진행했다. 토요일 오전은 미술 집중수업을 했다. 보충수업은 개인별로 부족한 교과를 하고 뛰어난 아이를 위한 촉진교육(영재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초등학교 교사의 학습혁명 체험기

    겨울방학 중에도 수학 촉진교육을 위해 학교에 나온 아이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눈사람을 만들었다.

    모든 수업은 토론·경험 중심 및 시나리오 학습방법을 적용, 학생활동 중심수업으로 교사는 가능한 한 간접 참여 혹은 안내자 역할만 한다. 학습목표 달성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학급 자체적으로 월 단위 학력고사를 실시했다.

    완전학습을 위해 장기기억법인 반복·강화 학습법을 적용하지만 단, 강화된 집중학습에 지치거나 스트레스성 압박감을 받지 않도록 적절한 휴식과 놀이, 산책, 등산 및 자유시간을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성의 원리, 준비성의 원리, 자발적 참여의 원리, 성취감의 원리, 강화 학습원리(또는 동기유발 원리)를 이용해야 한다.

    한편 긍정적인 사고방법을 깊게 심어주려면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고 수업중 일체의 대화는 존댓말을 사용하며 어떤 경우에도 힐난이나 꾸중 등 공격적인 발언을 하지 않게 한다. 체벌 대신 청소 등 학급회에서 몇 가지 유형의 벌칙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골 아이들이라 체력은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예상 외로 그렇지 못했다. 체력증진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휴식시간에 마주보고 밀어내기, 팔씨름, 철봉 등을 했다. 특히 구름다리 건너기는 신체의 균형발달에 큰 도움이 되는데 처음에는 구름다리 위를 걸었고, 숙달된 후에는 뛰어다니도록 했다. 그밖에 체조, 유산소 심호흡 등을 매일 놀이 형태로 실시했다.

    “4학년은 죽었다”

    나의 최초 목표는 모든 과목을 연극 시나리오처럼 아이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시나리오 교수법’을 통해 학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초학습능력 부족으로 당장 실시하기는 어려웠다. 시급한 것은 국어 읽기와 이해능력 및 기초수학 계산훈련이었다. 이 무렵 전학년에 “4학년은 죽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이들 말대로 ‘살인적인’ 새로운 주간 수업시간표는 당초에 계획했던 집중, 학생중심, 주기적 학습계획표를 더 확대한 강화학습 프로그램이다.

    어린이활동(A)·집중(C)·주기적(E) 학습 프로그램은 완전·완성학습 교수법으로서 ACE(Action·Concentration & Epoche) 프로그램이라 한다. 이는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내가 3년간 전국의 초·중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수에 적용한 새로운 교수법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완전·완성학습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 3∼4학년부터 어려워지는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학습부진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소한 4학년부터 시나리오 형태로 언어, 사고력, 수학적 논리, 과학적 사고, 사회화의 일정한 틀을 형성시키면 온전한 성장과정에 진입할 수 있다고 보고 만들어진 학습법이 ACE프로그램이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던 그 학습법을 내가 직접 현장에 적용하게 된 것이다. ‘시나리오-오라켈-완성학습’으로 명명된 이 교수법은 학력신장 극대화 전략으로 일명 ‘올인 교수법(All-in Didactics)’이라 한다.

    시간표만 보고도 질릴 법하지만, 아이들은 결석 한번 없이 한 학기 내내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기자들이 찾아와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취재해갔는데 그때 기자들의 단골 질문이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예외 없이 “공부 좀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라고 당돌하게 대답했지만 한 명도 태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들은 겨울방학 동안에도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학교에 나왔다. 그렇게 해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치되어 있던 아이들의 기초실력이 튼튼히 다져졌고 수학영재의 가능성이 있는 두 아이도 발굴하게 됐다. 그들은 이제 강원도 홍천군의 한 조그만 초등학교 어린이가 아니라 전국의 어린이들이 부러워하는 삼포의 샛별이 됐다. 그들이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은 1년 반의 학습량에 맞먹는 것이었다.

    4학년 전부라야 11명뿐인 시골의 소규모 학교라서 겉보기엔 재미있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이 작은 집단 속에서도 학급당 35∼40명씩 되는 대도시 학교에서 있는 일이 다 벌어진다. 교우관계나 학습 부진의 문제뿐 아니라 윤리·도덕적 갈등도 존재한다. 처음에는 청소할 때나 휴식시간에 서로 웃으면서 협력하고 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난 정말로 천사들을 만났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현금 분실, 치고받는 싸움, 욕지거리 등의 사건이 계속되어 나를 실망시키고 슬프게 했다.

    마음을 고치는 선생님

    또 아이들에게 한 가지씩 심리적인 문제가 있음도 발견하게 됐다. 예를 들어 학교공부를 무조건 싫어하는 아이, 공격성이 매우 강한 아이, ‘꼴찌 증후군’에 걸려 있는 아이, 가벼운 ‘공주병 증세’를 가진 아이 등이 있었다.

    우리 반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수업을 했는데 나는 시간마다 60도씩 이동했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이유 없이 몸을 움츠리거나 손으로 머리를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교사의 접근은 곧 머리를 얻어맞는다는 의미였다. 얼마나 쥐어박혔으면 이런 자기방어적 자세가 습관이 됐을까. 3명의 남학생들이 이런 방어 및 회피성 공포증에 젖어 있어 이를 치유하는데 거의 2개월이 걸렸다.

    한 아이의 경우 ‘순환적 보상증후군’이 보이기도 했다. 한 가지 행동을 교정하면 다른 이상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교사의 세밀한 행동교정이 요구되는 상황이라 긴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심리적·정신적 요인이 아니라도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이탈현상을 보인다. 한번은 수업 도중 이런 일이 있었다. 장난이 심한 남학생이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을 계속 괴롭힌다. 연필로 옆구리를 찌르거나 발을 뻗어 종아리를 간질이기도 한다. 평소 조용한 성격인 여학생은 이리저리 피하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30cm자로 남학생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런데 그 남학생은 오히려 여학생의 반응에 고맙다는 듯 킬킬 웃는다. 이어 반 전체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듣는 척했을 뿐 처음부터 남학생의 수작을 지켜보고 있었고, 얌전하던 여학생이 전에 없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자 통쾌하도록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틈만 나면 아이들은 학습으로부터 도망가려 한다. 손가락 빨기, 손톱 물어뜯기, 머리카락 쥐어뽑기, 공책이나 교과서 귀퉁이 혹은 옷의 일부를 입에 물고 빨아먹거나 씹기 등 40분 수업 동안 11명 중 5∼6명이 스무 차례 이상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일각에서는 “애들이 다 그렇지요, 뭐. 정상 아닙니까?” 하고 반문하지만, 유럽 교육현장을 둘러보면서 이런 행동은 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의 심리·정신·행동을 관찰해보면 30% 이상이 불안정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놀이할 때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공부와 놀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공부도 놀이도 휴식도 아닌 혼돈된 학습 및 생활태도가 문제다. 이대로 어른이 되면 책임감이 없고, 직업교육에도 문제가 되며, 권위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되묻는 습관 고치는 데 6주

    아이들의 나쁜 학습태도 중 하나는 내가 하는 말을 한번에 듣지 않고 반드시 반문하는 습관이다. 나는 이를 ‘부족한 자기 자신의 방어적 내세우기 습관’이라고 명명했다.

    수학적 두뇌를 훈련시키는 집중연습으로 매일 10분씩 속셈연습을 했는데(손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손을 마주잡되 집게손가락만 펴고 나머지는 깍지를 끼도록 했다) ‘4분의 3 더하기 4분의 2는 얼마입니까’ 하고 물으면 누군가 꼭 ‘뭐요?’ 하거나 ‘4분의 3 더하기 뭐요?’ 또는 ‘4분의 3 더하기 4분의 2요?’ 하고 되묻는다. 이는 정신을 팔고 있다가 정확히 듣지 못했거나, 자신이 없어 생각할 여유를 가지려거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보상심리가 작동한 결과다. 첫주에는 일일이 다시 한번 말해줬다. 그러나 둘째주부터 한번만 말한다고 선언하고 절대 반복해 주지 않았다. 그 버릇을 고치는 데 6주가 걸렸다.

    이와 유사한 행위로 ‘다음 시간에 뭐해요?’ ‘수학시간에 뭐해요?’ ‘오늘 체육 해요?’ ‘오늘 숙제 있어요?’ 하고 묻는 아이들이 있다. 그때 내가 곧장 대답해 주면 아이는 반 전체에 들리도록 ‘얘들아 다음 시간에 00한대’ ‘오늘 체육 안 한대’ ‘오늘 숙제는 뭐래’라며 마치 선생이 자기에게만 특별히 이야기해준 것처럼 떠든다. 이런 행동은 애정결핍에서 오는 수도 있고 소외감에서 발생하는 ‘소속감 회복 행동’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반복적인 질문 습관을 없애기 위해 벽에 걸린 일과표(각 과목을 영어로 표기) 보기를 강조하고 모든 과제, 다음날 할 일, 준비물 등을 정확히 말해주고 반드시 공책에 기록하게 했다. 물론 두 번 묻는 것에는 일절 답해 주지 않았다. 이 버릇을 고치는 데도 5주가 걸렸다.

    1∼2학년이면 어느 정도까지는 친절하게 답해줄 필요가 있지만 10세가 되는 4학년부터는 이와 같은 ‘확인용 질문’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질문이나 보상행위는 습관성이 매우 강하여 아이들의 집중력과 준비성 및 자발성, 자기계발능력 발달을 억제한다. 단 친구들에게 묻는 것은 허용했다. 이는 동료들간의 협동심과 일체감을 위한 집단치료방법이기도 하다.

    학습과 관련한 질문도 묻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가르쳤다. 내 책상 옆에 항상 국어사전, 영한사전, 옥편을 두었고 교실에 백과사전을 비치해 책에서 답을 구하는 훈련을 두 달간 시켰더니 모른다고 질문하는 일도 없어졌다. 물론 토론형태의 질문과 응답은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방해하고 학습에서 도망치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손장난에 빠져 있다. 지우개 가운데에 구멍내기, 책상에 줄긋기 혹은 홈파기, 샤프심 바꾸기, 연필 돌리기, 연필이나 필통에 달린 장식품 만지기, 인형의 눈을 뺐다 다시 박기, 공기놀이, 편지 같은 걸 쓴 종이를 구겨 옆사람에게 던지기, 멍하니 먼 산 바라보기 등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 행동이 교정되지 않으면 공부는 이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행동교정에 3개월을 소비했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손장난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에는 손을 책상 위에 얹어놓고 수업을 하도록 했다. 그래도 장난이 게속되면 아예 손을 머리 위에 올려놓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시선을 마주하도록 하면 학습효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틀 만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손을 머리에 얹고 눈은 나를 보고 있지만 머릿 속에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을 반복해 말하도록 시켜봤더니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단다. 나는 이를 ‘눈뜨고 꿈꾸는 병’이라 했다.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것으로 ‘딸그락’하며 떨어지는 연필 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연필을 돌리다 떨어뜨리거나 들고 있다가 무의식중에 떨어뜨리는 경우, 필요 없는 연필이 책상 위에 2∼3개씩 돌아다니다 떨어질 때도 있다.

    연필 떨어지는 소리가 문제가 아니고 연필이 떨어지게 행동하는 것이 문제다. 연필도 보통 때는 가만히 있다 이해를 위해 긴장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 굉장한 소음을 내며 떨어진다. 나는 필요한 연필 하나와 노트만 두고 모두 책상 속이나 가방에 넣으라고 매일 잔소리를 했다. 두 달 만에 연필은 조용해졌다.

    수업으로부터의 탈출현상은 책을 읽으면서도 한 손은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고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하는 행동으로도 일어난다. 그래서 글자를 빼먹고 읽으며 줄을 건너뛰어 읽고, 숨을 쉬지 않고 읽어 읽기의 리듬이 깨진다. 책 읽는 본인도 낭독의 즐거움이나 책읽기의 낭만을 느끼지 못하며, 듣는 사람들도 기쁨이나 슬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제발 좀 그만 읽어주었으면 하는 불쾌감에 읽는 아이가 오히려 불쌍할 정도다. 이를 고치는 데 역시 3개월이 걸렸지만 1명은 끝까지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선생님들에게 하면 “연필 떨어지는 소리는 그나마 조용하지요. 책과 필통이 통째로 떨어지고, 의자에 앉아 흔들다가 뒤로 벌렁 자빠지거나 책상까지 엎어져서 총소리가 아니라 대포가 터지는 일도 빈번해요”라며 웃는다. 그러나 이는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엄히 가르쳐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다.

    또 잔소리를 해보자. 아이들이 가진 나쁜 습관 중 하나는 문제를 풀거나 답을 썼을 때 내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하면 무조건 지우개부터 들고 지우는 행동이었다. 이것을 고치는 데 무려 5주가 걸렸다.

    교실에 이면지를 연습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두었음에도 공책 한 면에 한 문제씩 큰 글씨로 휘갈겨쓰고 다음 장을 또 버려놓는 낭비습관을 고치는 데 2개월이 걸렸다. 물질적 풍요 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고 혀를 찰 게 아니라 본래부터 공부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을 탓해야 한다. 우리반은 공책 아껴 쓰기 전쟁을 벌인 결과 11명 중 깨끗하고 빈틈없이 사용하는 아이가 9명이 됐지만 여전히 2명은 공책 한 면에 크게 휘갈겨 쓰거나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잘 안 되면 찍 그어버린다. 참으로 구제불능이다.

    코피 터지는 사건

    본격적인 학습이 아니라 학습 강화 훈련에 집중한 지 2주째에 접어든 어느 날, 일요일이라서 학교는 매우 조용했다. 수학 기초문제를 푸는데 갑자기 남학생 한 명이 소리쳤다.

    “선생님, 현주 코피요.” 현주의 손가락 사이로 코피가 흘렀다. 옆에 있던 친구가 자신의 손수건을 주자 현주는 곧 화장실로 갔다.

    현주의 코피로 잠시 수업이 중단됐다. 그런데 현주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도 코피가 난다며 밖으로 나갔다. ‘흉내내기 연속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이날 이후 우리반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휴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 부모에게 알렸으나 집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희한하게도 교실에서만 코피가 터진 것이다. 이는 ‘학습 회피성 신체반응’이다. 의사에게 갈 필요도 없었다. 피가 많이 흐르면 걱정이 됐겠지만 요상하게도 이 코피는 막아놓은 휴지 안쪽 끝부분만 적시고 말았다. 아이들은 코피가 터져 야단법석을 떠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듯했다. 몇 명은 왜 자기 코에선 피가 나지 않느냐며 주먹으로 코를 쥐어박는 시늉도 했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것이 ‘회피성 신체반응’이며 의학과 심리학의 ‘심신상관설’은 무엇인지에 대해 쉽게 설명해줬다. 또 채소와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부탁했고 체력강화를 위한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생각했다. 쉬는 시간에 개별적으로 노는 것 외에 유산소 호흡 체조를 시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공부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라고 일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난 공부가 재미있다’ ‘난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코피야 나올 테면 나와 봐라. 난 겁나지 않아!’ ‘나는 비겁하지 않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도록 했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은 영어에서도 뚜렷한 학력향상을 보였다. 2003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A4 10장 분량의 영어 연극대본 ‘여우와 두루미’를 방학 동안 서른 번 이상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는 과제를 내주었다. 그러나 영어 읽기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리였던지 숙제를 해온 아이는 단 2명뿐이었다.

    영어 까막눈 벗어나기

    영어공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7시반부터 9시까지 영어수업이었다. 일단 영어를 생활화하기 위해 영어수업 중에는 영어로만 이야기하도록 하고, 게시판 자료들을 모두 영어로 바꾸었다. 등교하자마자 영어로 인사하고 대화하는 법을 습관화했다. 대답을 못하면 하나씩 반복해서 가르쳤고 특히 발음에 신경을 썼다.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입을 떼지 않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견딜 수가 없었는지 어떤 식으로든 영어로 말을 하려고 애썼다. 한글로 써줘야 겨우 영어를 읽을 수 있던 아이들은 한 학기 사이에 눈부시게 성장했고 학년말 학예발표회 때 아이들은 영어연극 ‘여우와 두루미’를 무대에 올렸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영어학습은 먼저 초등학교 3~6학년 영어교과서에서 사용되는 600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1단어 회화훈련으로 시작한다. 학생들 대부분 문장 구성 능력이 없으므로 1개 단어와 신체언어를 동원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다음 단계로는 동사를 활용하는 법과 인간이나 동물을 표현하고 자연현상을 과거 현재 미래로 표현하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주어와 동사를 연결하는 2단어 표현을 연습하고, 이어 주어+동사+부사를 연결하는 3단어 표현, 주어+동사+부사+목적어가 연결되는 4단어 연습을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부사와 동사가 요구하는 전치사 개념을 배운다.

    이때 교사와 학생은 일체의 의사소통은 영어로만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영어를 중심으로 교사는 완벽한 영어로 표현하고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경우 반복적으로 지도한다. 만약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잘 안될 경우 차라리 몸짓이나 그림을 그려 표현하도록 지도한다.

    사실 영어학습은 매주 한두 시간씩 하는 것보다 하루 종일 영어로만 수업하거나, 더 좋기로는 일주일 내내 영어학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때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일주일 동안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영어만 쓰는 학급 영어캠프를 열고 싶었다. 개학 일주일전에 실시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건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말았다.

    어느 날 홍천에 가려고 교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승강장 벽의 낙서를 보게 됐다. ‘00는 내꺼’에서부터 ‘보건 선생님은 정말 예쁘다’ ‘아무개 선생은 XXX’ 하는 식의 낙서가 빼곡했다. 쭉 읽어 내려가다가 오른쪽 벽면 귀퉁이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눈이 번쩍 떠졌다. 아주 작은 글씨로 ‘박덕규는 개새끼’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난 바짝 긴장했다. 내가 매를 든 것은 우리 반 아이들뿐이다. 누굴까? 손바닥을 맞은 6명 중의 누구?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은 저런 글씨를 쓸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의 글씨체는 정교하지 못하다. 이 낙서는 작은 불개미처럼 아주 조그맣게 썼지만 글씨가 매우 세련됐다.

    그런데 낙서를 보면 볼수록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교장도 낙서의 대상인데 나라고 예외일 리 없다. 예외가 됐다면 난 왕따 선생이다. ‘개자식’이라면 욕 중에서도 제일 약하지 않은가. 그날 카메라가 있었다면 찍어두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다음날 카메라를 빌려 다시 승강장으로 갔더니 이미 말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얼마나 섭섭하던지.

    기가 막혀 웃어야 했던 두 번째 사건은, 숙제를 습관적으로 해오지 않는 3명의 손바닥을 가볍게 두 대씩 때린 날 일어났다. 한 녀석이 자리에 가서 앉더니 기도를 했다. 청소시간에 살짝 불러 “너 아까 손바닥 맞고 자리에 앉아 뭐라고 기도했니?”하고 물었더니 녀석이 빙글빙글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기분 나쁘지 말래요. 할아버지 선생이니 돌아가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하느님께 제발 ‘빨리 데려가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

    세 번째 사건은 겨울방학을 앞두고 벌어졌다. 부모와 떨어져 외가에서 학교를 다니는 한 아이의 학습태도에 문제가 있어 부모 면담을 요청했다. 두 달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상담을 마치고는 아무 말 없이 10만원이 든 봉투를 던지고 총총히 가버리는 게 아닌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학기말에 아이의 저금통장에 넣어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12월27일 겨울방학식날 갑자기 아이가 전학을 가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 아이 외할머니에게 부탁해 저금통장을 우편으로 받아 입금시켰다.

    종업식날인 2004년 2월14일, 아이는 5학년 교과서도 받고 친구들에게 인사도 할 겸 학교로 찾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온 녀석은 새 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저금통장부터 펼쳤다. 한참 들여다보던 녀석은 “엇! 일십백천만십만, 이자가 10만원이나 붙었뜨래요” 하고는 인사도 없이 뛰어나갔다. 특별한, 아주 특별했던 이 아이를 아마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90분 연속 수업의 효과

    대학의 초빙교수 제의도 거절하고 초등학교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완성교육 프로그램의 현장적용이었다. 이를 위해 이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도입한 제도가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간 시간표를 집중학습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이런 주간 시간표 변경은 물론 다른 학년과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어린이들은 한 가지 교과를 40분 이상 집중할 수 없다는 원칙과 수업시간마다 다른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는 관습에 정면 도전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완전·완성 학습을 위해 교과전담 교사가 3학년과 합동으로 운영하는 수업 이외에는 되도록 한 과목을 90분 이상씩 수업했다.

    영국의 영재학교인 그래머 스쿨, 프랑스의 리세, 독일의 김나지움의 입학기준은 ‘한 가지 일에 30분 이상 집중할 수 있는가’이다.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진학하는 기준도 교과성적이 아니라 주의집중력이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공통점은 최소 기준인 30분이 아니라 2시간 이상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지구력과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것이다.

    삼포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11명 중 2명을 제외하면 최고 120분까지 한 가지 학습에 집중할 수 있다. 3명은 150분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 수분을 충분하게 섭취해야 하는 성장기의 생리학적 욕구 충족을 위해 음료수를 항상 가방에 가지고 다니게 하면서, 주의집중 시간에도 필요하면 한두 모금씩은 마시도록 했다.

    그러나 부족한 수분의 섭취와 배설을 위해 음료수 마시는 시간과 간식시간, 철봉과 산책시간, 조용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조정하여 고급 문화인의 규칙적인 생활을 아주 서서히 적용시켰다. 하루아침에 치료가 되었으면 좋겠으나 아직 10∼11세의 어린이들이므로 충분한 적응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120분이 지난 후 휴식시간에는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고 손도 닦도록 했다.

    한편 전통적인 수업시간 배분 원칙(40분 중 5분 도입, 30분 전개, 5분 정리)을 무시하고 항상 본론부터 시작해서 본론으로 끝냈다. 도입 5분으로 동기유발이 충분하지 않고 학습내용의 본론 전개를 위해 30분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5분 동안 그 시간에 배운 것을 정리하는 일도 불가능하기에, 매 시간 다른 교과시간으로 구성하지 않고 한 교과의 단원을 완전히 끝내는 수업시간의 연속배치 방법을 사용했다.

    내가 담임교사가 되면서 가르친 결과를 확인하는 첫 번째 학력 평가는 외부 출제에 의한 9월말 학력고사로 실시됐다. 평균점수는 70점이고, 영어를 포함하면 69점이었다. 3~4학년은 공식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영어는 우리반만 내가 직접 출제했다.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다

    우리반은 매달 외부학력평가와 자체평가를 병행했다. 10월 자체평가 결과, 국어·수학 및 영어 성적이 별로 향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11월에 접어들자 학습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특히 국어책 읽기와 수학 기초 계산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11월말 학력평가에서 90점 이상이 3명이나 나왔고, 학급평균도 80점대로 껑충 뛰었다. 학예회 발표용으로 영어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영어회화 능력도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주관식 문제풀이에 한계를 보였다.

    12월말 실시된 학년말 시험〈표4〉은 2학기 교육과정 전체가 시험범위이며 예체능 평가는 담임이 출제해 4학년만 실기와 이론의 점수 비율을 50 대 50으로 평가했다. 체육실기로는 특기, 턱걸이, 달리기, 던지기, 줄넘기, 넓이뛰기를 실시해 유럽 육상연맹 청소년 체력 기준의 5단계 평정기준을 적용하여 평가했다. 미술은 그리기, 음악은 노래 부르기와 자신이 제일 잘하는 악기 연주를 실시해 5단계로 평가했다.

    8월말 실시된 1학기 진단평가 결과와 비교해보면 아이들의 실력은 많이 향상됐다. 90점 이상도 3명 나왔다. 자체 시험결과 평균성적〈표5〉이 외부시험 결과보다 높은 것은 국어 문제 해결능력인 읽기와 이해능력이 향상됐고, 수학의 기초 계산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수학의 계산능력이 향상된 것은 10월 중순부터 내가 직접 출제한 소수점 이하 열 자리의 덧·뺄셈과 곱·나눗셈을 집중적으로 연습시킨 결과였다. 소수 나눗셈은 5학년에서 배우는 것이지만 통합원리에 따라 분수의 통분과 함께 한번에 가르쳤다. 그리고 분수의 덧·뺄셈과 곱·나눗셈도 100문제씩 연습시켰다. 분수 약분과 나눗셈은 5학년 과정이지만, 이 역시 통합해서 가르쳤다.

    4학년 어린이들이 한 학기 동안 얻은 성과는 수학 점수에서 잘 나타난다. 11월2일 전국적으로 실시된 한국수학능력평가원 주최 평가대회에 이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3명을 내보냈다. 춘천에서 열린 이 경시대회에서 금1, 은2개를 따는 등 3명 모두가 입상했다. 대도시 큰 학교에서는 금상만 몇십 명씩 받기도 하지만 11명 중 3명을 내보내 모두 80점 이상 받은 것은 자랑할 만했다.

    또 영재촉진법에 의하여 2004학년도부터 각 시도에 설치·운영되는 수학영재(과학 및 정보영재와 함께) 선발에도 3명이 나가(홍천군 영재반) 3, 4, 5학년 중 20명을 뽑는 판별검사에 1명은 1등으로 다른 한 명은 13등으로 합격했다. 이렇게 삼포초의 4학년 어린이들은 공부하는 방법을 바꾼 덕분에 한 학기 만에 전국적으로 결코 뒤지지 않는 학습능력을 갖게 됐다.

    성적 떨어졌다는 학부모들의 항의

    학력평가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는 우선 일부 교사들이 학급성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이 평가된다는 조바심 때문에 사전에 시험문제와 아주 유사한 문제를 암시하고, 혹은 시험범위를 너무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곤란했던 일은, 이런 앞뒤 과정은 모르고 무조건 4학년 1학기 때보다 2학기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였다. 점수는 1학기보다 떨어졌을지라도 실력이 향상됐음을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학력평가에서 드러난 두 번째 문제는, 선택형 문제를 외부에서 가져다 그대로 실시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국어책을 온전히 읽지 못하는 아이의 국어 성적이 60점이고, 계산능력이 부족한 아이의 수학점수가 66점이며, 삼국시대를 거꾸로 아는 아이의 사회과 성적이 80점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 모든 게 잘 찍은 결과일 뿐인데, 이런 시험결과를 놓고 자신의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고 믿는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삼포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꽤나 유명해졌다. 특히 한 중앙 일간지에 ‘대학강단 마다하고 시골학교 간 박사 선생님’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뒤 여기저기서 취재를 요청해왔다.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어느새 삼포초등학교는 강원도 홍천군의 작은 학교가 아니라 전국적인 학교가 됐다. 전학오겠다며 방문하는 학부모와 어린이가 13명이나 됐다. 그러나 내가 기간제 교사인 데다 시골이라 머물 집을 구하기 어려워 발을 구르다 돌아가곤 했다.

    한번은 기사를 보고 가족과 함께 찾아온 변호사에게 직업세계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다. 근처 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제자가 인사차 들렀다가 그 자리에서 직업군인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취재차 찾아오는 기자, 방송작가, 프로듀서들, 친구를 만나러 온 대학교수, 의사 모두 아이들에게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창구였다.

    학습법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교사들도 많았다. 특히 대전광역시와 충남에서는 ‘설명식 수학교수법’을 배우기 위해 어려 차례 찾아왔다. 대구, 경기도, 부산, 제주도에서도 참고자료를 얻고자 문의가 이어졌다. 대구와 강릉, 인천, 대전에서는 특강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반의 파격적인 수업방식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잠시 머물 기간제교사가 방과후는 물론 토요일 공휴일에도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면 다른 학교, 다른 교사는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가장 많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한 학기 동안 혹사한 내 목이 완전히 쉬어버려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기가 어렵게 됐다. 또 2004학년도 강원도내 교원 인사에서 삼포초등학교는 전출 3명에 전입 4명으로 결정돼 더이상 기간제교사가 필요 없게 됐다. 2004년에는 4학년 때 기초를 다진 5학년을 맡아 실험운영에 그친 ‘설명하는 수학교수법’과 시나리오 학습법, 1주일 내내 영어로만 수업하는 영어캠프 등을 본격적으로 실시할 계획이었는데 못내 아쉽다.

    아쉽기만 한 6개월

    초등교수법 개발을 목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느낀 문제점과 개선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려면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을 대폭 통폐합하고 교사를 충원하여 자기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모두 구제하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지금의 체제에서는 교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학습부진아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

    둘째, 새로운 교수법의 실험적 검증을 위한 실험학교를 전략적으로 운영하여 그 결과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수정하여 교실 수업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장연구, 연구지정학교 운영제도는 학문적인 지원체제를 갖추어 통합하여 확고한 풍토에 맞는 개혁방안을 창조해야 한다. 형식적인 연구가 너무나 많다.

    셋째, 교수학습 기자재와 실험·실습내용과 방법을 현대화해야 한다. 과학실험 내용을 현대화하여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넷째, 교사의 교육적 기능이 ‘teacher’에서 ‘information worker’로 바뀐 만큼 교사교육과정을 학술훈련과 현장중심으로 현대화해야 한다. 교사 후보생들이 어디에 사용되는지도 모르는 낡은 이론을 배우는 기존의 대학교육을 학문훈련과정으로 바꾸어 변화하는 어린이들의 특징, 올인 교수법, 학습현장에 대한 이론-실제 통합과정으로 개혁해야 한다.

    다섯째,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비(非)영어권 국가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국민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생활언어로서의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교 3~4학년 영어수업을 주당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리고 반드시 평가를 해야 하며 ‘학급별 영어캠프 특별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집중학습방법을 해야 한다. 영어는 누구나 반드시 수료해야 하는 ‘전학교·전학년의 인증제’를 실시해야 한다.

    돌이켜보니 지난해 8월13일 삼포초등학교 관사로 이사한 후 2004년 2월20일까지 서울 집에 다녀온 것은 모두 네 차례뿐이었다. 추석과 설에 하루씩 당일로 다녀왔고, 교사의 표준수업시수 연구자로 전교조 회의에 참석한 것, 한 차례 교육부 회의에 다녀온 것이 전부다.



    삼포초 4학년의 완전학습에 대해 사법고시 버금가는 학원식 수업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무사히 그 과정을 넘겼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권리를 박탈했다는 비난은 무시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집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것보다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뛰어노는 것이 더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교육비가 문제라지만 학교가 학원보다 더 잘 가르친다면 사교육비를 쓸 학부모가 과연 있을까?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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