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⑦

1920년대 자살 급증, 오늘날과 닮은꼴

분에 못이겨 목매고, 가난이 고달파 동반자살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1920년대 자살 급증, 오늘날과 닮은꼴

1/5
  • 1920년대에도 ‘한강투신’이 유행했다. 지난 100여년 동안 국운이 기울면 여지없이 자살자의 수도 느는 추세를 보였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한국인은 죽음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 그러나 가장 비참한 것은 생계형 자살이다.
1920년대 자살 급증, 오늘날과 닮은꼴

‘자살장으로 화한 한강’이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1922년 5월16일자 보도. 최근 한강투신 자살자가 늘자 경찰은 한강 주변 순찰을 강화했다.

2003 년 8월4일 새벽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한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충격적이었다. 대개 자살이란 약하고 가난한 인간이 생의 궁지에 몰렸을 때 취하는 선택이라고 알려져 있다. 간혹 유명인들 가운데 자살을 한 이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든 자살은 압박에 대한 회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 회장은 ‘왕(王)회장’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업을 계승한 재벌기업의 황태자이며, 정권과 더불어 민족통일사업을 추진한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가 자살을 했으니 이는 자살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나약함’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자살하도록 만들 만한 위치에 있었을 것 같은 인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정 회장의 자살 뒤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자살이 뒤를 이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 초 강명화(康明花, ?~1923)의 자살 사건과 비슷하다. 유명한 미기(美妓)였던 강명화는 양반 부호의 외아들 장병천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쥐약을 먹고 죽었다. 그러자 많은 젊은이들이 강명화를 따라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렸다. ‘연애의 시대’였던 1920년대 초 벌어졌던 이야기다.

정 회장의 자살 뒤 목숨을 끊은 대우건설 사장, 부산시장, 전남도지사, 파주시장 같은 이들은 사회의 ‘모범’으로 평가받아온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사회적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던 권력자들이었다. 타인들은 그들이 지녔을 내면과 자의식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그들의 죽음을 초래한 모멸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지도층이 자살하는 이유

자살자들은 모두 외로운 단독자다. 자살을 선택하는 순간 이들은 모두 천애고아가 된다. 이들은 온전한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맞이하여 자신의 인간됨을 최후로, 외롭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혼자가 되어 유언이 적힐 백지를 내려다봐야 하고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이나 강물을 쳐다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살은 사회적 행위가 아니다. 그 불행과 우울은 아무도 모른다. 그 마음은 온전히 자살자만의 것이다.

부모나 자식도, 친구나 애인도 그 순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라 한들 자살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을 다 알 수가 없다. “자살자의 심리세계를 아무리 재조합하고 싶어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마리들은 언제나 간접적이고 부족하다.”(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남겨진 이들에게 모든 자살이 의문사가 되고, 큰 마음의 상처가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없었다는 배신감과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상승작용하며 자살자 주변의 살아 있는 사람들을 크게 당혹케 한다.

그러나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임에 분명하다. 그것도 전염성이 매우 높은 사회적 현상이다. 자살이 모방·복제되고 번져나가는 현상을 가리켜 흔히 ‘베르테르(Werther) 효과’라고 하는데, 베르테르는 유부녀 로테를 사랑하다 권총 자살한 괴테의 낭만적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인데 괴테의 소설을 읽은 많은 독일 청년들이 베르테르를 흉내내며 죽었다.

오늘날 한국에선 사장님도 시장님도 살아가기 힘겹다. 그 존재도 외롭고 마음도 위태롭다. 사회지도층도 두부처럼 무르고 풀꽃처럼 여리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 삶은 허망하다는 점을 ‘지도층의 자살’로부터 새삼 배우게 된다. 자살은 이렇게 역설적으로, 교훈적인 면이 있다.

자살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행위이다. 생을 유지해가는 동력이며 생 그 자체이기도 한, 삶에의 본능을 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문화권에서 자살은 매혹적이면서도 신비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쉽게’, 그야말로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생의 의지는 자동적이며 일상적이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본능적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밴 이 의지와 공포를 모두 단절시키는 자살에의 의지를 갖기란, 그리고 그것을 밀고 나가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자살은 문제적인 행동이다. 자살은 이상(異常)심리학의 영역에서 다뤄지며, 자살기도자는 정신과의 치료대상이다. 대부분의 철학과 거의 모든 종교는 자살을 죄악으로 간주한다.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물질들

한편 자살은 가장 실천적인 행위다. 자살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 자살하고자 마음먹는다는 것, 자살을 실제로 기도한다는 것, 그리고 자살에 성공한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살아가는 일에 지칠 때 누구나 한번 쯤은 자살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리고 그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자살에 성공한다. 미수에 그친 자살기도자 가운데 14%만이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고 한다.

자살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자살은 사고 영역의 문제며 철학적 문제다. 어떤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자살과 결부될 수 있다. 인간의 ‘고독한 실존’도 자살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살은 문학과 철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어왔다. 자살은 심리학적 현상이다. 심리와 사고는 서로 다른 것인데, 감정의 영역에 속하는 심리는 때때로 사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울’은 결정적인 자살 원인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살 위험 집단이다. 심리는 인간의 신체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심리적으로 자살은 항의이거나 호소, 또는 어리광이다.
1/5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목록 닫기

1920년대 자살 급증, 오늘날과 닮은꼴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