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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9·23 성매매 특별법 ‘폭격’ 이후

미아리·영등포 집창촌 여성 현장 인터뷰 “紅燈은 하루아침에 꺼지지 않아요”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미아리·영등포 집창촌 여성 현장 인터뷰 “紅燈은 하루아침에 꺼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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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단체는 자발적으로 일하는 우리에게 태클 걸지 말라
  • ●업주와 아가씨는 공생관계, 착취·배후조종 같은 건 없다
  • ●막말로 우리가 숨어서 성매매하며 에이즈 퍼뜨리면 어쩔 건가
  • ●우리도 여잔데 시집 갈 돈은 모아야 하지 않나
  • ●정치인이 ‘영계’ 더 밝힌다
  • ●내세우긴 뭣해도 우린 엄연한 ‘전문직’ 여성
미아리·영등포 집창촌 여성 현장 인터뷰 “紅燈은 하루아침에 꺼지지 않아요”
2004년 9월23일은 대한민국 성매매 역사를 새로 쓴 날로 기록될 게 틀림없다. 성매매 알선업주 처벌 강화를 핵심으로 한 이른바 ‘성매매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이날을 기점으로 전격 발효됨에 따라 전국의 집창촌은 일제히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유흥업소, 휴게텔, 퇴폐이발소, 안마시술소 등 각종 퇴폐업소의 ‘밤꽃’들도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잠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날부터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경찰의 대대적인 성매매 특별단속에 대해 전국 집창촌의 성매매 여성들은 10월1일 인천시청 앞 시위를 시작으로 10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시위, 10월11일 평택 시위 등 잇따라 집회를 개최하며 ‘생존권 보장’을 외쳐대고 있다. 이에 앞서 9월29일엔 미아리 집창촌(속칭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 윤모(24)씨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윤씨는 유서에서 ‘내가 죽는 것은 악덕 업주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책 때문이다. 우리가 내는 벌금으로 잘 먹고 월급도 받는 당신(국회의원)들이 왜 밑바닥까지 들어온 우리를 죽이려 하느냐’고 적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왜 ‘그들만의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을까. 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에 그토록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걸까.

그동안 언론매체들은 ‘불 꺼진 집창촌’ 풍경만 집중 부각했을 뿐, 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하는 데는 다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신동아’는 무엇보다 그들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며칠간 매일 한 차례씩 미아리 집창촌 종업원들의 대표격인 한 여성을 거듭 설득한 끝에 그들의 말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 일시를 잡을 수 있었다.

10월10일 일요일 오후 7시. 거리 입구를 반쯤 가린 장막을 들추고 들어가본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 미아리 집창촌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드문드문 들어선 슈퍼마켓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등 불빛만 골목길을 어스름히 비출 뿐, 성매매 업소 유리문 너머엔 ‘아가씨’들의 실루엣조차 비치지 않았다.

같은 시각, 미아리 집창촌 중심부의 한 4층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엔 성매매 여성 2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창 회의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할 임원진을 보충 선출하기 위해 논의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미아리·영등포 집창촌 여성들과 2시간여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법 시행 직후인 9월27일부터 미아리 집창촌 여성들을 대표하는 26세의 한 여성은 자신을 ‘미아리 아가씨 운영위원회 대표’라고 소개했다. 성매매를 한 지 4년쯤 됐고, 이름은 ‘김○○’이라고 했다. 김씨 외에도 미아리 집창촌에서 일하는 윤모(24)씨와 또 다른 김모(34)씨, 영등포 집창촌에서 일하는 김모(26)씨와 나모(25)씨 등 4명이 인터뷰에 동석했다. 편의상 아래에서는 이들을 거명한 순서대로 아가씨 1∼5로 표기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약속 깼다

-먼저 특별법 얘기부터 하죠. 특별법 시행에 따라 경찰이 특별단속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당하다는 생각이 앞서죠. 원래 정부는 집창촌을 2007년부터 차례로 없애겠다고 발표했었고, 그건 우리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전업(轉業)을 준비한다든지, 그때까지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지 하는 생각을 아가씨들마다 하고 있었죠. 그런데 느닷없이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그런 계획이 다 무너져버렸어요. 당초 ‘2007년부터 단계적 폐쇄’라는 약속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깨버린 거죠.”(아가씨1)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들을 갖고 있었나요?

“아가씨마다 다르지만, 제 경우는 부모님이 편찮으시니까 병원비를 좀 여유 있게 모아두고, 이 일을 그만둔 뒤 조그만 가게라도 하나 차릴 수 있을 만큼 자금을 모으려 했어요. 2∼3년만 더 일하면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봤어요. 일부에선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 사치가 심하고 유흥비도 많이 써서 과연 돈을 모을 수 있냐고들 하지만, 사실 이 일 하면서 명품 한번 사본 적 없어요. 우리가 입는 옷이나 신발, 가방은 전부 짝퉁 아니면 동대문·남대문 시장에서 산 거예요.”(아가씨1)

“저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치료비가 필요해요. 또 이 일을 그만두면 전셋집이라도 얻어야 할 것 아녜요? 우리도 여잔데 시집 갈 자금도 조금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지금 법을 시행하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죠.”(아가씨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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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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