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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누명 쓰고 혹독한 고문받은 두 여인의 ‘잃어버린 30년’

“벗겨진 가슴 막대기로 찔러대며 ‘이북 갔다왔다고 하면 옷 주지’…”

  • 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간첩 누명 쓰고 혹독한 고문받은 두 여인의 ‘잃어버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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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1971년, 갑자기 들이닥친 남자들이 살림을 돌보던 두 여인을 어디론가로 끌고갔다. 이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일주일 넘게 온갖 폭언과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고정간첩 혐의 때문이었다. 미혼의 젊은 여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성학대까지 받았다. 이들은 33년 전의 일을 털어놓는 동안 온몸을 떨며 오열했다. 한 여인은 인터뷰를 마친 뒤 결국 실신했다.
간첩 누명 쓰고 혹독한 고문받은 두 여인의 ‘잃어버린 30년’

간첩으로 오인돼 혹독한 고문을 받은 김정례(왼쪽)씨와 강덕례씨. 김씨는 얼굴이 밝혀지는 걸 꺼려 모자이크 처리했다.

지난 7월 ‘신동아’ 편집실로 한 건의 제보가 날아들었다. 30여년 전에 일어난 ‘간첩조작 고문의혹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제보자는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에 사는 김기웅(46)씨.

‘1971년 9월21일, 전남 여천군(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작은 섬마을에서 지금까지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섬마을이 세상의 전부인 양 자식과 남편밖에 모르고 사시던 저의 어머니 강덕례(당시 32세)와 막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던 사촌누나 김정례(당시 26세)가 가사 일을 보고 있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요원 15명에 의해 영장도 없이 질질 끌려간 것입니다. 당시 화정면사무소(전남 여수시 화정면)에 근무하던 큰아버지(김익환) 또한 군수실에서 호출이 와서 나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정보요원 두 명에게 바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여수시 관문동 소재 여천군청 관사로 끌려간 어머니와 사촌누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캄캄한 방에 따로따로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어 김씨는 세 사람에게 가해진 섬뜩하고 충격적인 고문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이곳에서 어머니와 사촌누나는 치욕적인 고문을 당했습니다. 특히 사촌누나는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성학대까지 받았습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어머니는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으며 다리를 온전히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촌누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터라, 낯선 남자 앞에서 알몸으로 고문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병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싸워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려지는데, 우리 가족은 고정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혹독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 말한마디, 하소연 한번 못하고 살았습니다. 인간에게 행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고문을 했던 자들은 지금 잘살고 있겠지요. 자유민주국가에 사는 국민으로서 침해받은 인권과 박탈당한 행복추구권을 찾고 큰아버지, 어머니와 사촌누나의 삶을 되찾고자 하니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4 용지 두 장 반 분량의 제보 내용을 읽고 나니 막막했다. 33년 전 일이니 고문 피해자들은 이미 60∼70대가 되었을 터였다. 또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구체적인 정황과 피해사실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을지, 입증할 만한 물증이나 증인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더욱이 가해 당사자로 지목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이 소속과 신분을 밝혔을 리 없을 것이기에 무척 난감했다. 그나마 글 끝에서 김씨 가족을 고정간첩으로 지목해 신고한 사람이 ‘현재 여수에서 회사를 경영중’이라고 밝힌 부분이 사건의 실마리를 잡는 단서가 될 것 같았다.

부역자 안다는 이유로 끌려가

일단 제보자 김씨와 연락을 취했다. 김씨는 고문 피해자 강덕례, 김정례씨가 현재 서울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김씨는 “언제 어머니와 누나를 만나러 갈 것인지 미리 내게 연락해달라. 그러면 내가 약속시간을 정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강덕례, 김정례 두 사람은 지금도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낯선 사람의 전화는 일절 받지 않으며 가족이 아니면 대문도 절대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8월27일, 어렵게 약속을 정하고 신도림역 근처의 한 아파트로 이들을 찾아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준 사람은 김정례씨였다. 거실로 들어서자 ‘10년 만의 폭염’이라는 날씨에도 강씨가 거실에 이부자리를 편 채 누워 있었다. 그는 “척추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날짜가 미뤄져 몸이 불편한 상태”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한숨 끝에 강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날 오전 11시쯤 되었을까. 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낯선 남자 여럿이 시숙(김익환 지칭) 집에 들어가 마구잡이로 뒤져 쑥대밭을 만들어놓는 걸 보았다. 놀라서 우리 마당(김익환씨 집과 강씨 집은 한쪽 담이 터진 채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으로 뛰어가 그 사실을 말했더니 애아버지(김기웅씨의 아버지 고 김인환씨)가 득달같이 큰집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한 남자가 애아버지한테 ‘골통을 부숴버리겠다’고 고함을 치며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놈들은 옷이고 시숙 책이고 할 것 없이 다 땅바닥에 팽개쳐놓고 구둣발로 밟고 다녔다. 하다못해 부엌 아궁이 속 재와 화장실 똥통까지 막대기로 휘저었다.”

남자들은 마을 앞 부두에서 강씨를 경비정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갔다. 김익환씨의 부인과 조카 김정례씨는 강씨보다 하루 앞서 끌려간 상태였다.

“형님(김익환씨 부인)은 이름자도 못 쓰고 묻는 말에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니까 그놈들도 답답했던지 바로 풀어줬지만 나는 일주일 가까이 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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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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