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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자치구역’, 한국 속 작은 異國들

가리봉동 ‘옌볜거리’의 한숨, 서래마을 마담의 크로아상 향기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외국인 자치구역’, 한국 속 작은 異國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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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외국인 거주자가 8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이문화에 유달리 배타적인 한국에서 편견과 싸우며 공동체를 일궈왔다. 1970년대에 일찌감치 자리잡은 일본인 공동체가 원조 외국인 마을이라면 이슬람사원 중심의 방글라데시 공동체, 음식점 중심의 네팔 거리는 요즘 새롭게 뜬 ‘외국인 자치구역’. 곳곳에 살아 숨쉬는 작은 이역(異域)들을 둘러봤다.
‘외국인 자치구역’, 한국 속 작은 異國들

라마단 금식을 마치고 음식을 먹는 이슬람교 안양성원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

글로벌소사이어티(Global Society).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은 더 이상 한국을 나타내는 적당한 수식어가 되지 못할 것 같다. 2004년 5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80만명(불법체류자 13만8000명 포함). 전체 인구의 2%에 육박하는 숫자다. 외국인은 1993년 산업연수생 제도 실시 이후 급격하게 유입돼 낯선 한국땅에 이문화의 싹을 틔웠다.

중국, 방글라데시, 필리핀, 네팔,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은 고유의 문화를 토대로 한국 내에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민족, 이문화에 유난히 배타적인 한국 사회는 이들로 인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강원대 한건수 교수(문화인류학)는 “외국인들이 서로 돕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집단거주지를 형성하는 것은 자연발생적 현상이며, 이처럼 다양한 외국인 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들 공동체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공업단지 주변의 거주지나 음식점, 시장 등 상권 주변에 형성되었다. 모스크나 성당 등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생겨난 문화공동체도 적지 않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경우 거주민의 70%가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에선 외국인 공동체의 성장이 더러 파열음을 내기도 한다.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갈등이 빚어지는가 하면 급증하는 외국인 범죄로 골머리를 앓는다. 국내 거주 이슬람교도들을 반한단체로 모는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있다.

2004년 10월31일 일요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안양5동 이슬람교 안양성원. 라마단 17일째인 이날, 신도 수백 명의 경건한 기도 소리가 경내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라마단은 이슬람교도의 금식월(禁食月). 신도들은 이슬람력으로 9월 한 달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욕심과 집착을 털어내는 수행기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한단체라니…”

이슬람교 안양성원은 서울, 경기 군포·안산 등지의 방글라데시인 노동자들이 일요일마다 모이는 종교 공동체. 이곳에서 만난 에마라트 후세인 바부(43)씨는 2004년 10월13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한 야당 국회의원이 “잇따른 테러 경고 속에 국내에서 이슬람 반한(反韓)단체가 처음으로 적발돼 조직원이 추방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반한단체인 ‘다와툴이슬람코리아’의 본거지로 지목된 이슬람교 안양성원은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았다.

“우리더러 반한단체라니요. 한국의 발전상을 동경하다 이곳에 온 우리가 왜 한국 사람을 해치려 하겠어요. 더구나 열심히 일하고 아껴 써서 가족에게 한푼이라도 더 보내고 싶어하는 우리가 테러단체에 송금을 할 리가 없죠. 반한단체 이야기가 나온 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어요.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어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하면 잔뜩 경계합니다. 나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데…. 마음이 아파요.”

모스크에 닥친 불행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반한단체’ 발언이 있던 날, 실의에 빠진 한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작업도중 오른팔이 프레스에 눌려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 해고당한 노동자도 여럿 생겼다. 불법체류자 신분의 노동자들은 마음놓고 사원에 올 수도 없게 됐다.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 모스크가 집중 타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스크에 모인 방글라데시인들의 슬픔을 다독이던 한국인 박창모(45)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모스크를 찾는 한국인 이슬람교도들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친구다.

“명색이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자금 모집책이나 회원 명부 같은 근거도 없이 ‘반한단체가 있다’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언론은 그것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받아 썼어요.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이들이 받은 상처는 누가 책임집니까.”

반한단체 이야기는 사나흘 후 언론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실체조차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불법 정당에 송금됐다는 1억여원은 외환은행 안양지점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국가정보원이 검거했다는 ‘반한단체 핵심조직원’ N씨 등 3명은 평범한 미등록 체류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닭 잡는 것도 규율대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한단체 소동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지불식간에 테러조직과 이슬람교도를 동일시해온 편견이 이번 사태를 낳은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금식 시간이 지나자 바부씨는 기자에게 이슬람식 요리를 권하며 다와툴이슬람코리아의 의미와 역사에 대해 들려줬다. 단체의 이름엔 우호 증진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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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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