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역사 모독하는 일본

日 역사교과서 왜곡의 정치적 배경

경제위기, 개혁 불안감, 군사 대국화 열망이 우익사관 점화

  • 글: 김호섭 중앙대 교수·정치학 interkim@chol.com

日 역사교과서 왜곡의 정치적 배경

2/4
1990년대 중반, 과거 군국주의 역사를 반성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일본 국내 정치세력은 크게 두 갈래다. 먼저, 일본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과거청산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보수적 정치세력이 있다. 일본의 대외적 역할 확대를 비판하는 아시아 주변 국가들을 대상으로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과거 군국주의 역사에 대한 고백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은 군국주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전통적으로 주장해온 사회당 중심의 진보적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일제의 침략적 국가행위로 한국과 중국이 커다란 피해를 보았지만, 사실 일본 국민이 가장 큰 피해자다. 당시 국가정책이 잘못됐다고 반성하는 것은 주변국 국민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1993년 7월, 7개 정당 연합으로 결성된 호소카와 정권은 “과거 전쟁에 대해서 반성한다”는 정책제안을 연립정권의 정책 대강에 포함시켰다. 호소카와 총리는 1993년 8월 취임 후 국회의 소신표명 연설에서 “과거 전쟁은 침략적 행위였기에 깊이 반성하며, 인근 아시아 제국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1994년 6월 발족한 무라야마 정권은 사회당, 자민당, 신당사키가케의 연립정권으로 ‘전후 50년 결의’를 채택할 것을 3당 합의사항으로 공표했다. 1995년은 전후 50주년. 이를 계기로 과거 50년의 역사를 반성하며, 장래 50년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취지였다. 사회당은 과거 전쟁으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희생과 고통을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국회 결의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협조를 호소했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이라고 명확히 규정해 ‘아시아 해방전쟁’ 등으로 미화한 우익의 역사관을 비판했다.

‘不戰과 사죄’ 표현 논란



사회당의 주도로 1995년 6월 ‘역사를 교훈삼아 평화에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결의’가 통합야당과 자민당 소속 일부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다수의 찬성을 얻어 중의원에서 채택됐다. 이들은 결의를 통해 “아시아 여러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하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내각 발족 이후 1년 가까이 논쟁을 벌여온 ‘전후 50년 결의’는 정당간의 대결이 아니라 전쟁 인식에 대한 역사관 대립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진보세력의 사과 움직임에 대해 우익세력은 반대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우익 정치세력은 “일본이 사죄를 표현해야 할 과거의 잘못된 국가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하며, 이 결의안의 국회 채택을 강력히 반대했다. 오쿠노 세이스케 등 우익 국회의원들이 반대 움직임을 주도했다. 결국 처음 제안된 ‘전쟁사죄 반성 및 부전(不戰)결의’라는 결의안 제목은 우익의 의지대로 ‘역사교훈과 평화결의’로 바뀌었고, 문안에서 ‘부전’과 ‘사죄’라는 표현마저 빠지게 됐다.

1990년대 후반 일본 국내정치의 불안정과 경기 침체 속에서 역사 인식의 차이가 정치적 어젠더가 되어 진보세력과 우익세력을 가르는 대립각으로 작용했다. 과거 침략역사에 대해서 주변국가게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퍼졌다. 한편, 우익세력은 이러한 움직임을 자학적이라고 비판하고 자신들의 역사관을 일본 청소년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 듯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익 역사가들은 우익사관에 동조하는 정치가들과 함께 자신들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민의 자신감 상실을 위기라고 보고, 일본 민족의 역사를 미화하고 애국심을 강조함으로써 난국을 극복하고자 했다. 후지오카 교수가 제시한 ‘개정판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7개 포인트’에 ‘애국심 강조’와 ‘자학사관 극복’이 포함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익은, 1999년 히노마루(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공식 지정하는 법이 성립된 것을 커다란 정치적 승리로 해석한다.

새역모를 직접적으로 후원하고 우익 역사관을 공유하며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집단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 우익 정치가 집단이다. 일본 국회에서 ‘전후 50년 결의’가 논의되자, 자민당의 일부 국회의원은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회장·오쿠노 세이스케)을 결성하고, 사죄 및 부전 결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1996년에는 앞의 조직을 국회의원 116명이 참가하는 ‘밝은 일본 국회의원 연맹’으로 확대 개편해 교과서 검정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또한 5선 이하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대표·나카가와 쇼이치로)에 62명의 국회의원이 참가했다. 자민당 내의 이러한 조직들은 우익사관이 역사교과서에 포함되도록 교과서 검정제도와 교과서 채택방침의 재검토 등을 주도하고 있다.

2/4
글: 김호섭 중앙대 교수·정치학 interkim@chol.com
목록 닫기

日 역사교과서 왜곡의 정치적 배경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