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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오늘, 다시 교육을 생각한다

일파만파,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후폭풍

‘저주받은 89년생’, 내신·수능·논술 ‘버뮤다 삼각지’에 빠지다

  • 글·사진: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일파만파,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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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주받은 89년생’이 폭발했다. 노트가 찢기고 교과서를 도둑맞는 전쟁터 같은 교실. 내신등급제는 우정을 갈라놓는 철조망이 됐다. 주요 과목은 물론 줄넘기, 뜀틀, 초상화 그리기, 노래 부르기까지 전방위 과외에 매달리며 ‘1등급 사수’에 이를 악무는 아이들.
  •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마련됐다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공교육 체제의 아이들을 ‘죽을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교육도, 아이들도 함께 살리는 길은 없는 걸까.
[장면 1] 우울한 수학여행…봄이 춥다

일파만파,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 후폭풍

5월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 추모제’에 참가한 시민단체 관계자들.

봄 햇살이 따사롭던 4월30일. 서울의 한 외국어고교에서 만난 1학년 학생들의 얼굴은 팽팽하게 긴장돼 있었다. 중간고사 1주일 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좀체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들은 2008학년도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대입제도가 처음 적용되는, 이른바 ‘저주받은 89년생’. 상대평가에 의한 내신등급제가 시행되고 대입 전형에 내신 반영비율을 높인다는 새 입시안은 이들에게 최대 관심사다. 입시안에 대해 묻자 불만이 봇물 터진 듯 쏟아진다.

“어휴, 고3 선배들은 수능을 200일 앞뒀지만, 우리는 수능을 1주일 앞뒀다고 해요. 1주일 뒤에 중간고사를 보거든요. 3년 동안 수능을 12번 치러야 한다니 끔찍해요.”

“다들 공부 잘해서 들어온 애들인데, 어느 정도 수준인지 서로 모르잖아요. 그러니 모르는 게 있어 물어보면 친한 친구조차 잘 안 가르쳐줘요. 친구가 아니라 적이 돼버려요. 공부 안 하는 척하면서 남몰래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애들이 수학여행 가면서도 기차 안에서 책 펴놓고 공부해요. 내신 3등급 밑으로 나오면 좋은 대학 못 들어간다니 이번 시험 잘 못 보면 일반계 학교로 전학갈래요.”

“엄마가 그러는데, 고3인 언니보다 저한테 사교육비가 배로 들어간다고 해요. 내신 대비를 더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저는 지금 국어·영어·수학·사회·독어·논술을 가르치는 종합학원에 다녀요. 예체능 과목이나 2학년 때 배울 중국어(외국어고는 제3외국어를 가르친다) 과외 수업 받는 애들도 있는데요, 뭐. 참, OO는 독어 과외 한다던데. OO야, 너는 독어 누구한테 배워?”

“비밀이야!”

“이것 봐요. 친구끼리 누구한테 과외 받는지도 안 가르쳐주잖아요. 아이들이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씩 매달린 것 같아요.”

대화를 마친 아이들은 학원으로, 독서실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밝은 햇살과 환하게 핀 봄꽃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었다.

[장면 2] ‘고딩’들의 반란, 촛불집회

5월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는 입시교육에 내몰린 고교생들의 작은 반란이 시작됐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이 주최한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추모제’에 고교생들이 참가한 것. 올 봄에만 성적 비관으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이 10명이다.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불만에다 새 입시안의 내신등급제가 초래한 비인간적 경쟁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초 이 행사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불만을 표출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대규모 촛불집회가 될 것으로 알려져 교육당국을 긴장시켰다. ‘내신등급제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급속히 전달됐고,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각종 인터넷 사이트로 순식간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5월6일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교육부총리 서한문’을 띄워 진화에 나섰고, 서울시교육청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력 대처하고 나섰다. 그 결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학생은 400명에 불과했고 학생들을 만류하기 위해 나온 교사와 교육청 관계자들은 600명에 달했다. 교육당국의 ‘오버’는 과잉대응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집회에 참여한 학생의 면면은 다양했다. 교복을 입고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참여한 김모(16·K고 1년)군은 “상대평가인 내신제도가 우리들의 인성 및 도덕 교육까지 망치고 있다”며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의사 표현까지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군은 또 “중간고사를 마친 친구들이 모두 의기소침해 있다. 문항도 많고 난도도 높아 제 시간에 다 풀기도 어려웠다.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건지,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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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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