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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구

“고구려 시조 주몽이 한고조 유방 건국 도왔다”

중국, 고구려 건국 연도 조작의혹

  • 글: 송동건 한양대 교수·행정학 mouxri@yahoo.co.kr

“고구려 시조 주몽이 한고조 유방 건국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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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의 건국 연도는 기원전 37년이다. 하지만 옛 문헌과 자료를 근거로 유추해볼 때 그보다 172년 전인 기원전 209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 한(漢)나라의 건국 시기보다 3년 앞선 것이다. 중국의 사가들은 고구려가 중국을 통치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고구려의 건국 연도를 조작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한고조 유방 건국 도왔다”
한국 고대사 중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건국 연도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정설로 삼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것은 기원전 37년 갑신(甲申)년이다. 이것은 기원전 57년 갑자(甲子)년에 박혁거세가 건국한 신라보다 21년이 뒤진다. 백제의 건국 연도는 이보다 더 늦은 기원전 18년 계묘(癸卯)년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고구려 건국 연도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남쪽 학자들이 문제삼는 것은 고구려가 신라보다 늦게 건국됐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북쪽 학자들은 고구려 건국 시기가 ‘삼국사기’ 기록보다 적어도 100여 년은 앞선다고 본다.

남북학계 모두 고구려 건국 시기에 관한 한 ‘삼국사기’ 기록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그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한(漢)이 건국된 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고구려가 건국된 것은 유방이 한을 세우기 3년 전인 기원전 209년 임진(壬辰)년이다. 이것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구려가 한나라보다 후에 세워진 것으로 기록을 조작해 마치 중국 왕조의 번병(藩屛)으로 봉건(封建)을 받은 것처럼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결론이 앞서지만, 고구려 건국은 유방이 한을 세운 것보다 3년이 앞선다. 그리고 중국 황제는 고구려의 봉건을 받았다. 고구려는 황제를 봉(封)하면서 이를 ‘장(장)’이라 했다. 지금부터 이러한 사실을 하나하나 고증해본다.

“유방이 漢 세울 때 이미 부여왕”

고구려 건국에 관한 가장 확실한 단서는 ‘역림’(‘초씨역림(焦氏易林)’의 약자, 전한(前漢)시대에 씌어진 역술서)에 있다. “사슴을 쫓다 얻지는 못했지만(逐鹿不得), 바닷가로 가서(去之海隅), 바람을 맞으며 술을 뿌리면서(臨風洒酒), 스스로 부여왕이 되다(自王扶餘)”라는 대목이다. 진(秦)나라가 사슴을 잃은 것(秦失其鹿)은 진시황이 죽고나서다. 따라서 추무(鄒牟·고구려 시조 주몽)가 부여왕이 된 것은 진시황 재위 37년인 기원전 210년 신묘년 이후라야 맞다.

또 하나의 단서는 ‘이밀묘지명(李密墓誌銘·고구려 시조의 직계후손으로 수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반란을 일으킨 이밀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묘지명을 풀어보면, “처음에는 항우가 패권을 잡았다고 들었으나(始聞楚覇), 마지막에는 유방을 황제자리에 앉혔다(終基漢皇)”고 했다. ‘역림’과 ‘이밀묘지명’ 기록대로라면 초한(楚漢)이 쟁패할 때 추무는 이미 부여왕이었다. 항우가 서초(西楚)의 패왕이 되고 유방이 한왕(漢王)이 된 것은 기원전 206년 을미년이다. 학계에서는 이 해를 한고조(漢高祖) 원년으로 잡는다. 또 유방이 황제에 오르는 것은 고조 5년, 즉 기원전 202년 기해년이다.

‘역림’에는 또 이런 표현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물러나고, 덕을 품은 사람은 흥한다(成功者退, 懷德者興). 유계가 발분해 자영을 잡아 멸했다(劉季發憤, 擒滅子嬰).” 여기서 유계는 유방을 말하고, 자영은 진(秦)의 3세를 말한다. 자영이 죽은 것은 진 2세인 호해 3년, 즉 기원전 207년 갑오년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추하면 추무는 같이 사슴을 쫓다가 갑오년 이전에 이미 건국에 성공, 즉 부여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건국한 해는 진 2세 원년인 기원전 209년 임진년이거나 이듬해인 208년 계사년 둘 중 하나다. ‘한서’ 예악지에서 천마가의 두 번째 부분과 관련해 ‘집서(執徐·秦의 해)’라는 태세(太歲·그 해의 간지(干支))를 명기한 이상 그 시기는 기원전 209년 임진(壬辰)년이다. 이 해는 추무가 서정(西征·서쪽을 정벌)을 하고 돌아와 해본(忽口)에 건국, 건도한 해가 된다. 그렇다면 진나라의 사슴을 얻지 못했으면서 성공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역림’에는 “용과 뱀이 땅에서 일어나니, 천지가 반복한다(龍蛇起陸, 天地反復). 진나라가 그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함께 쫓는다(秦失其鹿, 天下共逐)”라 씌어 있다. 진의 후사가 미정이라 천하의 호걸들이 투쟁에 나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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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동건 한양대 교수·행정학 mouxr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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