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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극 후손의 땅 찾기 소송 해프닝

옛 지번과 현 지번 혼선, 전혀 다른 땅 소유권 주장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이재극 후손의 땅 찾기 소송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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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재극 후손의 땅 찾기 소송. 그러나 이 소송은 한마디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이 확인됐다. 소송이 제기된 땅과 이재극이 소유했던 땅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재극 소유였던 땅의 지번과 토지정리 이후 부여된 이 땅의 지번이 우연히 일치한 것일 뿐, 위치도 크기도 용도도 전혀 다른 것. ‘지번만 같으면 무조건 소송부터 걸라고 부추긴다’는 토지 브로커들이 활개치며 국가의 재산을 노리고 있는데….
이재극 후손의 땅 찾기 소송 해프닝

현재의 당동리 일대 지번도. 인근 땅과 비교해보면 6○○번지는 농지가 아니라 농수로임(색칠된 부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8월8일 친일파 이재극의 손자며느리 김모(82)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말소’를 신청한 땅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 6○○ 번지 1만4700여㎡로 4400여 평에 달한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땅은 1982년 6월10일자로 국가에 의해 ‘소유권보존’ 등기된 상태로 농수산부(현 농림부)가 관리청으로 지정돼 있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일제 강점기 언론보도에 따르면 1927년 이재극이 사망하고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그의 유산이 완전히 탕진됐다는 사실이다. 1932년 무렵 이재극 남작의 아들 이인용과 며느리인 조중인 부부 사이에 수년에 걸쳐 송사가 이어지면서 ‘백만금 유산이 먼지가 됐다’ ‘재정정리위원회가 남은 부동산 전부를 팔아 현금으로 만들어 보관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454쪽 ‘이인용 남작 부부의 소송 전쟁’ 기사 참조).

그렇다면 이재극의 손자며느리가 국가를 상대로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땅은 어떻게 된 것일까. 재정정리위원회가 모든 땅을 팔아치웠다는데, 이재극의 후손이 이 땅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처음 찾아간 곳은 파주등기소였다. 당동리 6○○번지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2005년 8월22일자로 ‘소유권말소예고등기’가 되어 있었다. 소유권말소예고등기는 민사소송법에 의거해 소송이 제기됐을 때 해당 지번(地番)에 대해 등기부 상으로 소송이 제기된 상태임을 알리는 것이다.

문제의 등기부에는 지목(地目)이 ‘구거(溝渠)’로 나와 있었다. 농업기반공사 지역개발과에 따르면 구거는 필요에 따라 물을 넣고 빼고 할 수 있는, 흔히 말하는 농수로다. “옛날에는 농지를 가로지르는 개울을 일컬었다”는 것이다. 지자체 관계기관을 찾아 당동리 6○○번지 지적도를 확인한 결과, 문제의 땅은 당동리 일대를 감싸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4400여 평의 농수로가 어떻게 이재극의 개인 소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일제가 친일파에게 농수로를 하사했다는 말인가.

김씨는 소장에서 “국가가 1982년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친 당동리 6○○번지 땅은 이미 일제시대 시조부(이재극 지칭)가 사정(査定)받아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근거해 국가기록원에서 동일 지번으로 일제 강점기의 ‘토지조사부’를 발급받았다. 당시 행정구역상 주소는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당동리 6○○번지로 되어 있었다.

토지조사부를 확인하자 의혹은 더욱 커졌다.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돌려달라는 땅과 토지조사부상 동일 지번의 이재극 소유 땅은 그 크기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또한 지목도 ‘전(田)’과 ‘구거’로 판이했다. 일제 강점기 이재극 소유의 당동리 땅은 소송을 제기해놓은 4400여 평 땅에 비해 그 크기가 10분의 1도 안됐다. 여러모로 두 땅은 도저히 동일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멸실된 등기부등본

토지조사부에는 이재극의 땅이 대정2년(1913년) 6월에 신고된 것으로 기록이 나와 있다. 1913년과 소송이 제기된 토지가 국가소유로 등기된 1982년 사이에는 70년 가까운 공백이 있다. 그 긴 시간을 메워줄 관련 기록을 찾기 위해 우선 이 땅의 관리 기관인 농림부에 연락을 취했지만, 농림부 담당자는 “소송이 제기됐는지도 알지 못하며 아직 소장을 못 받았다. 소장이 관할 지자체로 갈지 우리 부로 올지도 알 수 없다”며 취재 협조를 거절했다.

지자체 관련 기관 공무원에게 문의했지만 역시 돌아온 대답은 마찬가지. “일단 소장을 받아봐야지, 지금으로선 아무 답변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십 차례 전화접촉을 하는 동안 상부기관은 하부에, 하부기관은 상부에 떠넘기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반복됐다.

추적을 계속할 실마리는 어렵게 얻은 정보를 통해 확인한 1950~60년대 구(舊) ‘토지대장’에서 나왔다. 이 토지대장은 정부 수립 이후 농지개혁법이 발효된 후에 새로 작성된 것이다. 토지대장의 기록에 의하면 당동리 6○○번지 땅(田)은 1964년 9월1일자로 ‘소유권’자가 ‘사정(査定) 이재극’으로 등재됐다. 앞서 김씨가 소장에서 “일제시대 시조부가 사정받아”라고 했던 부분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재극의 이름 옆에는 나중에 기록된 또 다른 소유권자로 A씨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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