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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이주영 교수의 진보 역사학계 비판

민중-통일사학은 이데올로기 없는 허상, ‘자유주의 사학’이 유일한 대안

  • 이주영 건국대 교수·사학 jylee@konkuk.ac.kr

이주영 교수의 진보 역사학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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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들어 민주화운동이 더욱 거세지면서 젊은 연구자들의 관심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이후의 현대사 연구로 옮겨졌다. 연구 주제는 민주화운동의 참여 과정에서 찾아졌고, 거기서 나온 연구 결과는 다시 민주화운동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됐다.

그들의 의기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한풀 꺾기는 듯했다. 그러나 남북해빙 무드가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렸다. 1990년부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1994년에는 김영삼 정부에 의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됐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정부에 의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6·15선언이 채택됨으로써 한반도는 곧 통일이 될 것 같은 흥분에 빠져들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타고 ‘민중사학’은 ‘통일사학’으로 변신을 꾀했다. 젊은 연구자들의 실천적 과제는 ‘민중이 주체가 된 민족 통일’로 바뀌었고, 연구대상은 광복 직후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을 주창했던 김규식, 김구, 여운형 같은 좌우합작파와 남북협상파, 그리고 좌익인사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사상적 체계를 마련한 것일까.

민중-전통사학 공통분모는 민족주의

그들의 사상적 체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글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학문에 뛰어든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대부분 특정 주제의 탐구에만 집중됐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과 생각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몇몇 원로 국사학자의 세련된 글을 살펴보는 것이 그들의 사상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원로 국사학자인 강만길 교수는 일찍이 1970년대부터 기존의 국사학이 분단 현실을 외면하는, 분단체제를 정착·지속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빗나간 학문’이라고 비판해왔다. 그 대안으로 그는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사론’, 즉 민족 통일을 지향하는 지도 원리로서 올바른 민족주의를 수립하고 그러한 목적에 봉사할 수 있는 국사학을 제안했다.

또 다른 원로 사학자인 조동걸 교수는 “역사학이 이제 더는 연구실만 지키는 학문에 머물지 말고, 문을 열고 현실참여의 학문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사를 중국, 일본,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주변사가 되지 않도록 ‘한국사적인’ 관점에서 볼 것을 촉구했다. 반대로 남북분단과 6·25전쟁 연구는 통일에 대한 애정과 염원이 없는 외국학자들의 ‘외국사적’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그 대안의 하나로 해방 직후 분단에 반대했던 남북협상파와 남북연석회에 대한 연구를 제시했다. 더불어 북한에 대한 연구는 물론, 북한 역사를 초·중등학교에서 교육할 것도 강조했다. 그것이 북한과의 민족 공동체의식을 유지하는 불가결의 조건이고, 분단 후 세대가 북한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민족의식을 유지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감상적인, 따라서 비현실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이 엿보인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의 발언 중 일부다.

“한(조선)민족 전체가 북한의 주인으로서, 가령 식량지원 같은 것도 역사적·민족적 공동의식 위에서 국민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후세에 민족적 죄인의 길을 가지 않을 뿐 아니라 통일이 달성될 시점에서 우리 민족이 북한의 주인이라는 민족의식과 국제적 발언권을 행사할 힘을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민중-통일사학’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롭게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전통사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존의 한국사 연구 풍토가 민족주의의 토대 위에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나온 것이다. 즉, 민중-통일사학과 전통사학은 민족주의를 공통분모로 연계돼 있었다.

이 사실은 1969년 말에 한우근, 이기백, 이우성, 김용섭 네 사람이 공동 연구한 ‘중·고등학교 국사교육 개선을 위한 기본 방향’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그들은 국사 교육의 목표를 ▲민족 주체성 살리기 ▲세계사적 시야 확보 ▲내재적 발전방향 파악 ▲인간 중심의 생동하는 역사 서술 ▲민중의 활동과 참여 부각 등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의 국사 우대 정책도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데 한몫했다. 박 정권이 지식인과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에 이론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민족 주체성과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했다. 그 결과 각급 학교에서 국사교육이 강화되고, 대학에서도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선정했다. 언론도 ‘국학 붐’에 일정하게 기여했다. 그 과정에서 신채호의 ‘민족사학’이 신성시되고, ‘민족주의’라는 대의명분은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절대선(善)이 되고 말았다.

민족주의 목표는 통일국가

민중-통일사학의 첫 번째 특징은 민족주의의 궁극적인 목표인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이란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본다는 것이다.

강만길 교수는 “역사학이 그와 같은 ‘현재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통일에 도움이 될 사실(史實)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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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건국대 교수·사학 jylee@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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