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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논술강사 이재열의 청소년 글쓰기 실태 진단

주술(主述) 호응 무시, 극단적 흑백 논리, 논점 흐리는 ‘대충주의’

  • 이재열 모어댄논술학원 대표 ljyeol@hanmir.com

기자 출신 논술강사 이재열의 청소년 글쓰기 실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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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교육 현장에 논술 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의 글쓰기 실태는 실로 참담한 수준이다. 인터넷 용어와 비속어 남발은 예사고,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문장도 수두룩하다. 논리 전개와 정확한 문장 구사력도 부족하다. 그 배경에 체계적이지 못한 글쓰기 교육이 있다.
기자 출신 논술강사 이재열의 청소년 글쓰기 실태 진단
“공부를게을리해 이번 학기는 정말 성적이 구렸다. 앞으로는 셤 준비를 할 때는 겜에 한눈 팔지 말고 공부에 전념해야겠다. 선생님, 앞으로 공부 열씸히 하겠슴다.”(중2 학생이 쓴 ‘나의 포부’란 제목의 글짓기 중)

“요즘 ‘일진회’라는 애들이 나타나서 학교를 잡고 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빌빌거리기만 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이제 조그만 일에도 서로 싸우고 난리를 피운다. 학교에 평화라곤 찾아볼 수가 없게 되면서 왕따의 자살소식도 많이 들린다.” (고1 학생의 ‘평화에 대한 나의 생각’이란 논술 중)

위의 글은 필자가 실제로 가르친 학생들이 쓴 글에서 뽑은 것이다. 이들의 학업 성적은 반에서 중상위권 수준이다. 위의 글은 같은 제목의 글 가운데 평균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설마 중·고교생의 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필자는 한국 청소년의 일반적인 글쓰기 수준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최근 불어닥친 논술 붐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실제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은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위의 중학생처럼 인터넷 채팅 용어를 남발하는 것은 ‘범세계적 현상’이니 그렇다고 쳐도 은어, 비어, 속어를 거리낌 없이 쓰고 맞춤법, 문장성분의 호응 같은 기본 문법을 제대로 알고 글을 쓰는 학생이 거의 없는 현실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문법을 기본으로 지키면서, 적절한 논리구사로 설득력 있는 글솜씨를 보이는 학생은 정말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차적으로는 국어 과목에서 이를 다뤄야 하지만, 대부분 국어 교사들조차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해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부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고는 있으나 논술은 현재 중·고교의 정식 교과과목이 아니어서 입시를 위한 단기 주입식 교육에 치우쳐 있다. 그나마 대부분 외부에서 초빙된 학원 강사에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학생들의 글쓰기가 이렇듯 참담한 수준을 보이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학생들의 글쓰기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능적인 문제와 내용의 문제다. 기능적인 문제는 어법을 제대로 지키고, 올바른 어휘를 구사해 정확한 문장을 쓰는가를 말한다. 내용의 문제는 깊은 사고와 적절한 논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가이다.

기본 문법도 실종

요즘 중·고교생의 글은 무엇보다 기능적인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문장의 기본 요건은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다. 그런데 주술 호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 의미를 올바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학생들의 문장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특히 국어는 주어 다음에 바로 서술어가 나오는 영어와 달리 주어와 서술어가 각각 문장의 맨앞과 맨뒤에 자리잡기 때문에 두 성분을 호응시키기 어려운 편이긴 하다. 그렇긴 해도 아예 처음부터 이런 호응을 무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일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그녀와 이별한 것은 슬픔이었다’는 모두 주술 호응에 문제가 있는 문장이다(각각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슬픈 일이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중·고생의 논술을 보면 이처럼 주술 호응이 잘못된 문장이 1000자 정도 길이의 글에서 평균 5개 이상 발견된다. 결국 글쓰기의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과 상담해보면 이런 어법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숙달이 안 되니 오류가 잦고 교정을 받지 못하니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영어와 달리 국어의 문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모국어니까 자연스럽게 문법이 몸에 배인 측면이 크게 작용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말이 영어 등 서구어에 비해 문법이 단순하며 또한 규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영어에서는 명령문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어가 생략되는 법이 거의 없다. 또 대명사 같은 지시어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한다. 시제나 복수 표현도 철저하게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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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모어댄논술학원 대표 ljyeol@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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