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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⑦

부산 마리아 참살(慘殺) 사건

난자당한 조선인 하녀, 싸늘히 웃음짓는 일본 여주인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부산 마리아 참살(慘殺)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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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몸무게가 60kg이나 됐고 보통 남자 이상으로 힘이 셌다. 40kg 되는 물건을 들고 2~3㎞는 예사로 오갔다. 그런 마리아 변흥례가 어느 날 아침 혈흔이 낭자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다카하시 부인은 하녀가 살해당하는 줄도 모르고 바로 옆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마리아를 죽인 것일까. ‘힘센’ 마리아를 옆방에 있는 사람도 모르게 ‘소리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기괴한 투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부산경찰서 형사들은 밤낮없이 분주했다. 그러나 단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더욱이 범죄장소가 철도국 관사이고 집주인이 고등관인지라, 제아무리 서슬 퍼런 경찰도 함부로 수사할 수는 없었다.

관사 안팎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외부에서 범인이 침입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내는 2층 유리창이 깨진 것 외에는 살인사건의 현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정돈돼 있었다. 비 오는 날이라 땅이 질었음에도 마당과 뒤뜰에서 수상쩍은 발자국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현장조사 결과를 놓고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외부에서 침입한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을 7대3 정도로 압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내부인의 범행이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않았다. 내부인은 오직 일본 고등관의 부인 다카하시 히사코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마리아를 처참하게 살해했을 뿐 집안 물건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단순 절도범의 우발적 범행이었을 가능성은 없었다. 가능한 추리는 세 가지였다.



1. 어떤 남자가 연애관계를 맺으려다가 마리아가 그에 순응치 않으니 죽였다.

2. 집주인 다카하시씨가 마리아의 교태에 빠져 서로 사랑을 하게 되니 그 꼴을 보다 못한 다카하시 부인이 질투심이 폭발하여 마리아를 죽였다.

3. 다카하시 부인이 다른 남자와 연애관계를 맺고 지내오던 차 하녀 마리아에게 들키고 말았는데, 그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다카하시 부인과 정부가 공모하여 마리아를 죽였다.

(‘마리아 참살 사건, 진범이 잡히기까지’, ‘별건곤’ 1933년 5월호)

경찰은 마리아의 목을 조른 비단 허리띠가 다카하시 부인의 물건이라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시간이 지나도록 유력한 증거물을 범행현장에 놓아둘 리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다카하시 부인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음부를 찌를 때 사용한 칼은 숨기고 목을 조른 허리띠는 남겨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비단 허리띠는 다카하시 부인이 범행 이후 실수로 남겨둔 것일까, 아니면 범인이 다카하시 부인을 모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겨둔 것일까.

경찰이 발견한 유일한 물증은 마리아 침실 전구에 찍혀 있는 지문이었다. 부산에는 지문감식 장비가 없어 전구를 경기도 경찰부로 보냈다. 그러나 지문이 희미해 감식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그렇듯 의미 없이 사흘의 시간이 흘러간 8월3일, 부산경찰서 서장 앞으로 괴(怪)투서가 날아들었다. 투서의 내용은 장난편지라고 간주하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나는 절도전과 2범입니다. 범인은 집안 사람입니다. 나는 31일 밤 오전 3시경 철도국 관사 부근을 방황하던 중 돌연히 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 그곳에 가서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전깃불 밑에 30세 가량 되는 여자가 사정(射精)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 곁에는 20세 되는 여자가 발가벗고 누워있었습니다. 중년여자는 정액을 그릇에다 받아두고 한참 생각하다가 벽장을 열고 칼을 꺼내 누워있는 여자의 음부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곁에 두었던 정액을 부었습니다. “이년! 이 입으로…” 하고 입을 물어뜯고 “이년! 이 젖통으로…” 하고 젖통을 물어뜯은 이후, 발로 죽은 여자의 머리를 두 번 차고 배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유히 수도에 가서 피 묻은 칼을 씻었습니다. 유리창을 깨고 창살 한 개를 뽑아 가지고 문을 나서 철도병원 앞 공원 풀밭 속에다 파묻었으니 찾아보십시오.부산경찰서 서장 친전 목격자로부터(‘동아일보’ 1931년 9월16일자)

가장 놀랄 만한 대목은 혹시나 해서 경찰이 철도병원 앞 공원 풀밭을 조사해보니 실제로 피 묻은 수건과 창살 등이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입술과 가슴을 물어뜯었다는 내용도 부검결과와 일치했다. 부검 당시 마리아의 입술 전체에는 흰 솜 같은 거품이 덮여 있었다. 거품을 걷어내지 않고는 입술에 찍힌 이빨자국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가슴에 난 이빨자국은 너무 희미해서 여간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투서가 날아올 때까지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투서자가 마리아의 살해과정을 직접 목격했거나 혹은 투서자 자신이 범인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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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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