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광부, 간호사 몸값 갚으려 머리카락 자르고 쥐도 잡았죠”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1/7
  • 광부, 간호사들은 개발연대 이끈 정신적 씨앗
  • 단발령 내려 가발 제작, 쥐잡기운동 벌여 ‘코리아 밍크’ 수출
  • 박 정권이 서독·일본과 교류 트자 反韓 미국, 우호적으로 돌아서
  • 1970년 도쿄大 곤노 아키라 교수의 예언 “한국은 천혜의 반도체 왕국 될 것”
  • 상대적 빈곤, 집단이기주의, 재벌 부패는 개발연대의 폐해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노(老) 경제학자 백영훈(白永勳·76)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기자의 손을 잡고 커다란 사진 액자가 군데군데 걸려 있는 방으로 끌고갔다. 가장 먼저 보여준 사진은 1964년 박정희 대통령과 서독의 에르하르트 수상이 대담하는 장면이다. 군인 출신의 47세 대통령과 경제장관 출신의 67세 수상. 두 사람은 지금도 살아 있는 듯 생생한 표정이다. 그들 사이에 앉은 당시 대통령 경제고문이자 통역으로 활약한 백 원장. 그는 지금 42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사진 앞에 서 있다.

미국의 우려, 박정희의 초조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외국 정상으로부터 국빈 초청을 받았다.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타고 14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분단국 서독. 그곳엔 박 대통령보다 앞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나와 있었다. 대통령은 한국 경제 발전의 씨앗이 된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만 서독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명확한, 실패해서는 안 될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사진 속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수상에게 왼손을 내밀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회담 내내 박 대통령은 돈 꿔달라는 얘기만 했어요. 나는 입이 아프도록 통역했지. 손을 내민 건 돈 빌려달라는 제스처였어. 박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 우리도 서독처럼 라인 강의 기적을 일궈내겠다. 군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군사혁명? 그것은 공산주의 이기려고 했다’고 말했죠.”

1인당 GNP 80달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 박 대통령은 국가재건회의 최고의장이던 1961년 11월 미국의 원조를 기대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찾아갔지만 쿠데타 정권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했다. 그를 용인하면 아시아 전체로 쿠데타가 파급되리라는 게 미국의 우려였다. 실제로 그 무렵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연이어 쿠데타의 조짐이 일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현시킬 돈줄을 눈이 빠지게 찾고 있었다.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중앙대 교수로 있었는데, 1961년 5월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났어요. 하루는 자신을 국장이라고 소개하는 중령 몇이서 나를 남산의 한 지하실로 데려갑디다. 그들로부터 혁명정부의 지도이념과 국가관(觀)에 대해 교육을 받았지. 그러곤 ‘경제정책 판단관’이라는 임무를 줬어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서울대 박희범 교수, 이기준 교수, 유진순 교수, 고려대 이창렬 교수와 꼬박 1주일을 함께 지내면서 초안을 작성했어요. 이 계획의 기본 문건은 (1950년대 말) 민주당 정권에서 작성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이었는데, 문제가 많았죠. 자립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 그건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였어요. 증권파동도 일으키고, 화폐개혁도 했지만 자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골자는 고용확대, 수출기반 조성, 중소기업 육성, 농촌 부흥, 기계공업 육성 등이었다. 이를 통해 GNP(국가총생산) 7% 성장을 달성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백 원장 등은 그 무렵 유행하던 ‘해롯 모델(성장률×자본계수=저축률)’을 적용해 필요한 자금을 산출했다. 7% 성장률에 자본계수 3(낮은 수준의 중공업화를 의미)을 곱하면, 21%. 이것이 국민이 담당할 저축률이었다. GNP가 7% 성장하려면 국민의 저축률이 21%는 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저축률은 3%에 불과해 해외에서 자금을 들여오지 않으면 안 됐다.

서독에서 불어온 훈풍

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한국은 지구상에 또 하나의 분단국 서독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서독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한국에 선뜻 돈을 내줄 리 없었다. 정부는 국내 최초로 독일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백 원장을 서독으로 급파했다.
1/7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목록 닫기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