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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⑭

이화여전 문창숙 자살사건

‘모던 걸’들의 호사스러운 소비문화가 잉태한 조선 최초의 ‘왕따’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이화여전 문창숙 자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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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숙이 주덕순의 돈을 횡령했다는 소문은 전교에 급속히 퍼지더니 급기야 기숙사 사감 박은혜 선생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박은혜 선생은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34년부터 모교에서 기숙사 사감으로 있으면서 종교학을 강의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종교학을 연구한 만큼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이 맡고 있는 기숙사에서 도난사고가 일어났으니 그대로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화여전 문창숙 자살사건

1930년대 당시 이화여전 신촌캠퍼스. 문창숙 자살사건은 이화여전이 정동캠퍼스에서 신촌으로 이전한 후 터진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었다.

박은혜 사감은 문창숙을 여러 번 사감실로 불러 돈이 사라진 경위를 캐물었다. 드러내놓고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실수든 고의든 문창숙이 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감은 문창숙이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길 바랐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창숙은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한사코 부인했다. 그 바람에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었다.

문창숙이 사감실에 불려갔다 나올 때마다 그를 대하는 친구들의 시선은 따가워졌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문창숙은 친구들 사이에서 철저히 따돌림 받아 더는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고통과 번민 속에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장마 중 잠깐 개는 하늘처럼 문창숙에게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사감 앞으로 날아온 투서

1937년 1월15일, 박은혜 사감에게 시내 서대문우편국 소인이 찍힌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박은혜 선생님, 주덕순의 돈 20원을 쓴 것은 문창숙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니 문창숙은 말하자면 애매한 누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문창숙의 결백을 주장하는 익명의 투서였다. 그러나 투서에는 문창숙이 관리하던 기숙사 금전출납부에 주덕순의 서명을 하고 돈을 찾아간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박은혜 사감은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1월18일, 전 사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문창숙은 전혀 혐의가 없다고 익명의 투서자를 대신해 변명해주었다.

이 선언으로 인해 문창숙은 뛸 듯이 기뻐했고 비로소 맑은 하늘을 본 듯했다. 문창숙은 자기 남동생과 함께 시내구경도 다니고 초콜릿과 시루꼬(汁粉·새알심을 넣은 일본팥죽)도 사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잠깐 갰던 하늘은 다시 흐리고 몽몽한 검은 구름이 문창숙을 둘러싸게 되었다. (‘이화여전 문창숙의 자살사건’, ‘조광’ 1937년 3월호)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니 기숙사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밝게 맞으며 지난 시간의 오해를 사과할 줄 알았던 친구들은 사감이 결백을 변명해주기 전보다 문창숙을 더 싸늘히 대했다. 박은혜 사감은 무슨 영문인지 저녁시간 이후 사생 전원을 강당에 다시 불러 모았다. 사감의 조치를 의아하게 여긴 것은 문창숙뿐이었다. 다른 사생들은 예상했다는 듯, 태연히 강당에 모였다. 문창숙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생들은 힐긋힐긋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생이 한 명의 열외 없이 모두 모이자 박은혜 사감은 노트와 필기도구를 꺼내라고 지시했다. 문창숙을 제외한 사생들은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주저 없이 노트와 필기도구를 꺼냈다. 준비가 끝나자 박은혜 사감은 지금부터 자신이 읽어주는 내용을 받아써서 두 통씩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박은혜 선생님, 주덕순의 돈 20원을 쓴 것은 문창숙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니 문창숙은 말하자면 애매한 누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생들의 필적을 조사하기 위한 소집이었던 것이다. 문창숙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친구의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것도 억울한 일이었는데, 이번엔 투서자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 것이었다. 박은혜 사감은 밤새 사생들의 필적을 조사했고 다음날 아침 조사 결과를 문과학장 김상용 교수에게 보고했다. 김상용 교수는 사환을 시켜 문창숙에게 1교시 수업이 끝나는 즉시 학장실로 오라고 전달했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문창숙이 교실문을 나서자 같은 반 학생들은 일제히 숙덕거렸다. 김상용 교수는 학장실로 찾아온 문창숙을 조용히 타일렀다.

“만약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큰일이 아니니까 나한테만 바른대로 말해라. 돈은 선생님이 채워버리면 그만 아니냐.”

문창숙은 “그 대답은 오후 한 시에 하겠습니다” 하는 한 마디 말을 남겨놓고 학장실을 나섰다. (‘이화여전 문창숙의 비참한 최후’, ‘여성’ 193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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