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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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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세력에 위협을 느낀 연은, 소왕(昭王·기원전 311~279) 시절인 기원전 300년경 전투 경험이 많은 진개(秦開)를 앞세워 고조선 정벌에 나섰다. 당시 중국인들은 말과 마차를 연결한 전차를 전투에 사용하긴 했어도, 개개의 병사가 말을 타는 기마술(騎馬術)은 익히지 못했다.

기마는 북방 유목민족의 전유물이었는데, 진개는 북방 유목민족을 통해 기마술을 익힌 사람이었다. 기마병을 이끈 진개 군은 요하 부근까지 쳐들어갔다.

그로 인해 요서지역에 있던 고조선이 큰 타격을 입고 동쪽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견융의 공격을 받은 주나라가 동쪽으로 밀려나 ‘동주’가 되듯, 고조선도 진개 군의 공격을 받아 동쪽인 한반도 북부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1908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기록돼 있는데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것이 기원전 2333년이라면, 단군이 통치를 끝낸 시기는 기원전 425년이 된다.

기원전 425년경과 진개 군이 쳐들어온 기원전 300년쯤 사이 고조선은 힘이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진개 군의 공격으로 고조선은 세력을 더욱 크게 힘을 잃었다.



진개 군의 공격이 끝난 후 고조선은 난하 지역을 회복하지만 그 힘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해졌다. 이 시기 고조선은 춘추시대 같은 혼란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의 지배력이 급격히 약해진 데는 철기의 보급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단조(鍛造)술이 끼친 영향

하-상-주로 이어지는 중국의 ‘3대’와 한민족의 고조선은 청동기 문명을 이끌던 국가이다. 이 시기 지배층은 청동기를 독점했다. 청동기는 권력과 부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였으므로 지배층은 청동기 제조술이 피지배층에게 흘러가는 것을 차단했다.

피지배층은 간석기나 나무 등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병장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광석을 녹여 도구를 만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도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광물을 녹여보려고 노력했다.

청동기의 재료는 구하기 어렵지만 철광석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중국인과 한민족은 철기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만든 철기는 불순물이 많은 무쇠(鑄鐵)라 단단하지 못했다. 떨어뜨리면 쉽게 깨졌고 청동기처럼 날카롭게 만들 수도 없었으니, 이 철기는 병장기나 땅을 파는 농구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뭔가를 눌러주고 받쳐주거나 마찰력을 견뎌야 하는 곳에는 사용할 수 있었다.

병장기가 되지 못하는 철기는 위협이 아니었으므로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철기 만드는 것을 용인했다.

철기가 보급되자 점차 농업의 생산력이 높아졌다. 그로 인해 과거에는 개간하지 못하던 땅을 개간할 수 있게 되면서 땅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졌다. 이러한 소유욕은 새 땅을 확보하려는 전쟁을 낳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봉건제도를 통한 주나라의 확대이다. 확보할 수 있는 땅이 줄어들면 제후국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초기 철기 문화가 생기면서 고조선의 거수국 사이에서도 새로운 땅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진개 군의 공격을 받은 후 고조선의 통치력이 상실되자 거수국끼리 패권을 다투는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경쟁에서 우세를 점한 것이 부여이다. 그러나 부여는 모든 거수국을 장악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과 고조선은 분열기로 접어들었는데, 이 분열은 새로운 병기가 등장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새로운 병기는 바로 ‘단조(鍛造)한 병장기’이다. 단조는 쇳물을 형틀에 부워 식힌 것을, 다시 불에 넣고 시뻘겋게 달군 후 망치로 때리고 물에 넣어 급랭(急冷)하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하면 청동검보다 훨씬 더 강하고 날카로운 철검(鐵劍)을 얻을 수 있다.

철검과 철창으로 무장한 세력은 청동검과 청동과(戈, 창) 그리고 간석기로 무장한 세력을 압도할 수 있다. 철광석은 도처에서 구할 수 있어 단조술을 익힌 세력은 단기간에 세력을 확대한다. 청동기 시절에는 토성이나 깨어진 돌로 성을 쌓았으나 단조 철을 만들면서부터는 돌을 자유자재로 자를 수 있어, 돌로 된 성과 건축물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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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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