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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과 중국 사료로 추적한 고조선의 비밀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고조선은 중국 내몽고 자치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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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단조 기술은 전국시대 말기에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단조 병장기와 농구가 보급될 무렵인 기원전 222년 진(秦)나라가 연(燕)을 멸망시키고 이듬해 중국을 통일했다(기원전 221년).

오랜 분열기를 끝낸 만큼 진시황은 강력한 통일 정책을 펼쳤다. 영토의 통일뿐만 아니라 철학의 통일이 필요했으므로, 진시황은 진나라의 이념이나 사상과 맞지 않는 책과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학자를 없애버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했다. 그러나 지나친 억압정책으로 통일 14년 만인 기원전 207년 진나라가 무너지고,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와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대립하게 되었다.

이 갈등은 기원전 202년 유방이 승리함으로써 중국은 다시 통일되었다. 한나라는 중간에 신(新)나라가 등장해 잠시 잘리긴 했으나, 기원 220년까지 400여 년 간 존속하며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쇠를 단조한 병기에다 북방 유목민족의 기마술까지 받아들였기에 한나라의 군사력은 매우 강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자강 이남까지 영토를 넓히고 서쪽으로도 영토를 확장했다. 이때부터 화하족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한족(漢族)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춘추와 전국의 혼란기는 화하족인 지배층과 이민족인 피지배층을 하나로 녹이는 용광로 구실을 했다. 그리고 진과 한이라는 통일왕조가 등장함으로써 주나라의 품안에 있었던 이민족은 형틀에 부어져 굳은 무쇠처럼 한족으로 굳어졌다. 거대 중국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한나라가 동쪽으로 공세를 퍼부어 기자조선을 멸망시켰다(기원전 108년).



기자조선은 연나라가 망하던 기원전 200년쯤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들어온 위만을 받아들였다. 기자조선은 위만에게 서쪽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는데 위만은 쿠데타를 일으켜 준왕(準王)을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다.

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겼다는 것은 중국 사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우리 사료인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나온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왕위를 빼앗긴 준왕은 배를 타고 마한 땅으로 들어와 한왕(韓王)이 되었다고 한다. 기자조선이 대동강 부근에 있었다면 배를 타고 마한 땅으로 갈 이유가 없다. 기자조선이 난하 부근에 있었기에 준왕은 배를 타고 한반도로 들어갔다고 보아야 한다.

청주 한씨 세보(世譜)는 준왕이 우성과 우평 우량 3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이 각각 기(奇)씨와 선우(鮮于)씨 그리고 청주한(韓)씨의 선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준왕이 한반도로 도주한 것은 한반도가 고조선의 강역(彊域)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조선은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右渠王)이 통치하던 기원전 108년, 한무제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기자조선 옆에 있던 낙랑·진번·임둔 등 고조선의 거수국도 함께 무너졌다. 이곳은 중국과 가까운 곳이기에 한무제는 이곳을 한나라 영토로 편입시키며 한4군을 설치했다.

그러는 사이 고조선 땅에서도 단조술이 확산되면서 거수국들을 하나로 묶어 통일을 이룩하려는 조짐이 일었다. 이 노력의 선봉에 선 것이 부여와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부여와 손을 잡음으로써 세력을 급격히 확대했다. 그러나 요서지역을 포함한 고조선의 옛 강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나라의 쇠락을 기다려야 했다.

기원 222년 한나라가 무너지면서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하는 4세기에 걸친 긴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거수국

고구려 5대 왕인 모본왕은 후한 때인 기원 55년경 난하 유역으로 쳐들어가 점령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 때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다는 것이 평양 덕흥리 고분의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고조선의 옛 영토를 되찾은 것이다. 그후 고구려는 서진을 멈추고 한반도 남쪽을 공략한다. 장수왕 때 본격적으로 남쪽을 공략한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거수국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고구려는 광개토태왕 때 신라가 왜군의 공격을 받자 왕이 5만명을 보내 왜군을 내쫓았는데 이는 고구려가 신라를 거수국으로 거느렸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이 수나라와 당나라로 다시 통일되자 과거 고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고구려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수나라의 공격은 잘 막아냈으나 이어서 등장한 당나라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실패하면서 고구려가 사라졌다.

고·당 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는 고구려의 거수국이었던 신라가 대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구려가 사라진 만주에서 발해가 일어났다. 그러나 발해는 신라 이상으로 친당(親唐) 정책을 취했기에 신라와 통일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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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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