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단군의 진짜 얼굴을 찾습니다”

‘제각각’ 단군 초상, ‘단일화’부터 하고 보자

  • 김 정 한국조형교육학회 고문 jkim0124@yahoo.co.kr

    입력2006-10-13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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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3일, 단기 4339년 개천절을 맞는다. 개천절이면 으레 단군을 떠올린다. 단군은 비록 신화 속 인물이지만 오랫동안 우리 겨레의 시조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단군이 여러 명이라면 믿겠는가. 대중이 접하는 초상화 속의 단군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혼란을 빚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민족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고 있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단군 초상화들이 나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한 원로화가가‘신동아’에 글을 보내왔다.
    “단군의 진짜 얼굴을 찾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군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도 막연히 ‘나라를 세운 최고의 어른’으로 그를 이해한다. 그런데 현재 각기 다른 모습의 단군 초상이 통용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이 얼굴도 단군이요, 저 얼굴도 단군이란 얘기다. 그러니 단군에 대한 존경심은 고사하고 진짜 단군 얼굴 찾기 퀴즈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학교에선 학생들이 “누가 진짜 단군이에요?” 하고 질문한다고 한다.

    지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단군에 대한 존경심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단군의 얼굴부터 찾아놓아야 예의도 차릴 수 있을 것 아닌가.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유통되는 단군의 초상과 영정은 10여 종에 이르고, 이들은 각종 인쇄물과 영상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되고 있다. 이들 그림과 조각은 대체로 1960년에서 1970년대 중반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정부에서 유관순과 이순신 등 여러 선열의 영정을 제작했다.

    서울 사직동에 있는 단군 숭봉(崇奉) 단체 사단법인 현정회(顯正會)에 봉안된 단군 영정(문공부 심의번호 77-27, 가로 115cm 세로 170cm, 홍석창 그림)과 단군상(문공부 심의번호 77-16, 신상균 조각)도 각계의 고증을 거쳐 1977년에 제작됐다. 같은 곳에 봉안돼 있는데도 제작자가 달라서인지 영정과 조각이 풍기는 느낌이 다르다.

    광복 직후에 제작된 단군 영정도 있다. 민족문화연구가인 이창구(한국민족문화과학교류위원)씨는 “단군으로 등록한 제1호 그림은 솔거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옛 단군 초상을 지성채(池盛彩)씨가 다시 모사해 그려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성채는 누구인가. 대종교총본사의 ‘천진참알(단군 영정에 절하는 예식)’에 관한 자료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렇다.



    국가 공인 단군 영정도 2개

    1946년 대종교총본사가 만주에서 환국한 후 부여 단군전에 봉안돼 있던 낡은 영정(天眞)을 당시 대가이던 지성채씨에게 모사케 했다. 그 후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 박사가 1949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 이 영정을 대한민국 국조표준본으로 공인했다. 이 표준영정을 표본으로 1975년에 제작된 입체상은 1976년 문공부로부터 국조단성상 승인을 받았다.

    따라서 정부에 심의 등록한 단군 영정은 대종교총본사의 것이 1호이고, 현정회에 있는 것이 2호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종교총본사의 단군 영정과 입체상이 이미 정부로부터 표준공인을 받았는데도 현정회에서 또 영정을 제작해 1977년에 표준공인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두 단체가 각기 단군상을 제작해 봉안하고 있는 것도 의아하다. 정부는 신청만 하면 단군 영정을 공인하는가. 이런 상황이 다수의 단군 영정 및 초상이 생겨나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인사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공인된 단군 영정이 있는데도 또 다른 단군 영정을 공인한 이유에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즉 대종교의 영정은 종교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다소 어렵다는 판단에서 현정회의 신청을 승인했으리라는 것이다. 실제 두 기관에서 하는 사업의 성격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종교총본사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반면 사단법인 현정회는 그 이미지가 공공기관에 가까워 각계각층과의 접촉이 빈번하고 국가 행사를 주도하는 사례가 많다

    시민단체가 만든 ‘세련된’ 단군

    한편 등록 제1호 단군 영정이 과연 솔거의 그림을 모사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단군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소설가이자 현정회 이사인 이동희 전 단국대 교수는 “단군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서민에게까지 존경을 받은 분이었다”며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여러 그림이나 부적 같은 쪽지에서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또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도 단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존경은 계속됐다. 지리산에 있는 삼성사(三聖祠)에서 오래된 단군 초상화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있자 당시 ‘동아일보’ 현진건 기자가 왜경의 감시를 피해 몰래 답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했다. 이렇듯 단군 그림은 산속이나 농촌에까지 민화 형태로 널리 퍼졌다.

    2002년엔 시민단체가 단군조각상을 제작해 일선 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홍익문화연대가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바로 알게 하자는 취지로 단군조각상을 제작해 여러 학교에 기증한 것. 최근에 만들어진 만큼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북한에도 단군상이 있다. 북한 단군릉을 돌아보고 온 민족문화연구가 이창구씨는 “1995년 안호상 박사가 방북할 당시 류미영 단군민족통일협의회장 겸 조선천도교 대표에게 한국의 여러 단군 영정 자료를 전달했다”며 “북한이 이후에 단군 영정을 제작한 것으로 보아 남한측에서 전달한 자료를 참고하지 않았겠냐”고 추측했다. 다른 인사들도 북한의 단군 영정과 남한의 단군 영정이 비슷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외에도 국내에는 언제 누가 그렸는지 불분명한 단군 초상화가 여럿 나돌고 있다. 그렇다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중엔 이당(以堂) 김은호가 그린 것도 있다. 물론 일정한 규모와 형식을 갖춘 조형물만을 놓고 하는 얘기다. 점술집 등에서 발견되는 그림까지 치면 단군 초상화는 훨씬 더 많아진다. 사단법인 현정회와 대종교총본사의 단군 영정은 보관 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길게 늘어진 귀, 날카로운 눈

    “단군의 진짜 얼굴을 찾습니다”
    필자는 현재 유통되는 단군 초상화와 영정, 조각상 중에서 6종을 골라 살펴보았다. 선정 기준은 ‘대중과의 접촉 빈도가 높으며, 회화적 바탕 위에 보편타당성을 지닌 정상적 인물상.’ 가령 산신령 풍의 그림이나 민화는 제외했다. 6종의 단군 초상을 편의상 가∼바로 분류했다.

    가 : 이 그림은 수염과 두발이 가발인 듯한 느낌을 준다. 젊어 보이는 얼굴과 무더기로 붙어 있는 강렬한 수염이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목구비가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과 차이가 있다. 오히려 인도 등 서아시아인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차분한 자세는 흐트러짐 없이 안정적이며, 선량하고 따뜻한 인상을 지닌 것도 장점이다. 언제 누가 그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몇몇 연구가는 “북한의 단군 영정과 흡사한 점이 많다”는 견해를 보였다.

    나 :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게재된 그림으로 현정회에 봉안된 영정이다.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에도 40% 정도 사용되고 있으며, 고등학교 교과서 일부에서도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데생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러나 길게 늘어진 귀는 규격에 어긋나고 혐오감을 줄 소지가 있다. 노래를 부르는 듯 입을 벌리고 있어 단정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흰 머플러 또한 현대적이라는 지적이다. 부드러운 인상이 친밀감을 주기는 하나 너무 젊어 보이는 게 흠이다.

    “단군의 진짜 얼굴을 찾습니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물 묘사가 단군 초상화들과 대조적이다.

    다 : 이 영정의 실물은 입체(조각)다. 현정회에 그림 ‘나’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형으로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푸근한 할아버지 상이다. 사람에 따라 약간 비만형이라고도 지적하나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만 귀가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진 것이 흠이다.

    라 : 속세를 떠나 산중 생활을 하는 인물 분위기다. 길게 풀어 내린 머리카락과 지팡이 등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문가들은 “삼성사의 단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얼굴은 이란, 이라크 등 서남아시아인의 생김새와 비슷하다. 냉철하고, 건강해 보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인자하고 후덕한 느낌은 부족하다. 누가 언제 그렸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마 : 최근에 등장한 입체물로, 한국인의 얼굴 비례에 근접하게 제작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홍익문화연대가 역사 바로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최근 전국의 여러 초등학교 교정에 설치됐다가 반대 여론으로 말미암아 일부 회수됐다. 중후한 인상을 지녔으나 입과 귀가 지나치게 길어 부담스럽다. 나뭇잎 의상은 꽉 끼는 듯 보여 지도자의 품위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냥 평범한 노인으로 보이는 게 단점이다.

    바 : 1949년 최초로 공인된 단군 영정. 대종교총본사에 봉안돼 있다. 국내에 통용된 기간이 가장 길어 60대 이상 노인층에게 비교적 익숙한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동자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력이 엿보인다”와 “무섭다”로 평가가 엇갈린다. 초등학생은 대부분 검은 얼굴과 매서운 눈동자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이 영정을 표본으로 한 입체상도 있다.

    “단군 할아버지 무서워요”

    유한대 강사 김은희씨가 1998년에 쓴 논문 ‘아동의 단군 이해와 정서추론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단군 초상화에 대한 정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의 30% 이상이 “무섭다” “징그럽다” “슬프다” “이상하게 생겼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인 반응의 단서로는 “귀신같이 못생겼다” “귀가 커서 징그럽다” “이상한 표정이 무섭다” “얼굴 수염과 귀와 머리칼이 이상하다” “단군이 다 다르게 생겨 괴상하다” 등을 꼽았다.

    성인의 경우 단군에 대한 50대 이하의 일반적인 의견은 “여러 갈래의 초상화가 나돈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초상화를 단일화해야 한다, 고전과 현대의 초상화를 각기 만들 만도 하다, 함부로 못 쓰도록 통제해야 한다” 등이고, 60대 이상은 “단군 숭모사업을 국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 개인이나 특정 종파의 단군 그림 사용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단일화한 초상화 외의 그림은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 등이었다.

    조선시대 초상화와 비교하면, 단군 초상화는 분명 친근감이 떨어진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를 두어 주요 인사들의 초상화를 국비로 그릴 정도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엔 윤두서 자화상이 유명하다. 이 초상화는 기법이 서양화의 그것을 압도한다. 붓끝으로 호흡을 멈춰가며 한 줄, 두 줄 그려 나간 리얼리티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은 실물묘사가 잘 됐기 때문이다. 단군 초상화의 경우 실물 묘사 과정이 생략됐으니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단군 초상화에는 존엄성이 담겨 있는데, 인물화에서 친근감과 존엄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

    초상화는 인물화에 포함된다. 특정 인물을 그리는 것인 만큼 반드시 특정인의 모습이 담겨야 한다. 실제 인물과 닮은 정도가 초상화의 생명력이고, 따라서 세밀한 관찰과 치밀한 묘사가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이다.

    역사적인 인물의 초상화 중에도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것이 많다. 눈동자가 닮지 않았다느니 입이 잘못 그려졌다느니 하는 평가 때문에 크고 작은 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다. 현충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초상화도 당초에는 청전(靑田) 이상범이 1960년대에 그렸으나, 복장과 투구 등의 고증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이당 김은호가 다시 그렸다. 그런데 그마저 얼굴이 지나치게 곱고 여성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돼 월전(月田) 장우성이 다시 그렸다. 월전의 충무공 초상화는 2~3회의 수정을 거친 끝에 1973년 10월30일에 충무공 표준영정으로 지정 공표됐다. 그전에 그려진 이당의 충무공 초상은 현재 한산도 영정각에 있다고 전해진다.

    단일화, 어렵지만 해야 할 일

    시급한 과제는 단군 영정 및 초상화(조각)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좀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영정과 입체상은 현정회와 대종교총본사에 각각 봉안·관리되고 있는 것들이다. 대한민국 표준영정인 대종교의 단군 영정도 훌륭하고, 현정회의 단군상도 훌륭하다. 그러나 학생들이 단군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지금으로서는 자라는 세대들이 가진 단군에 대한 혐오감을 씻어주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단군 영정에 호감을 느껴야 단군에 대한 존경심도 생겨나지 않겠는가.

    필자는 취재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에게 “과연 단군 영정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봄직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경희대 김용권 교수(민화미술학)는 “오랫동안 두 기관의 상징으로 간직되어왔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먼 장래를 생각하면 결국 단일화하지 않겠는가. 시대가 변하는데…” 하고 말했다. 명지대 강사 정향미씨(미술교육)는 “청소년이 단군을 혐오하는 지경에 이른 건 어른들의 잘못이다”며 “단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단군이 (후세로부터) 버림받고 영원히 잊힐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아마도 ‘징그러운 단군’을 ‘정이 가고 존경스러운 단군’으로 바꾸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단군 영정도 통합 대상에 포함해 단 하나의 단군 영정 및 초상이 만들어진다면 명실공히 한반도의 유일한 단군 모습이 탄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단군상을 봉안, 관리하고 있는 양대 기관이 나서서 단일화 작업을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 나름대로 고민해본 바를 조심스럽게 제안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앞에서 제시한 6개 그림(북한의 단군영정까지 포함하면 7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선택된 초상화를 모델로 해서 초상화를 새롭게 제작하는 방법이다.

    “단군의 진짜 얼굴을 찾습니다”
    김 정

    1940년 서울 출생

    경희대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독일에서 수학 및 연구, 개인전 14회, 그룹전 150회

    숭의여대 교수

    現 한독미술조형작가회 고문

    저서 : ‘세계의 미술교육’ ‘정선 아리랑’(시화집) 등


    오랜 기간 봐와 낯익은 단군을 하루아침에 새 모습으로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인식의 변화를 물리적으로 뒤집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익숙해진 이들 초상화 중에서 가장 보편타당하며 선호도가 높은 그림(조각)을 채택하고, 채택된 그림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 보완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초상화의 단일화가 이뤄진다 해도 단군에 대한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또한 최종적으로 확정된 단군 초상(조각) 외에 다른 단군 그림이나 조각은 사용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의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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