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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도 머리 숙인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주역 남이흥

“조선은 충의의 나라라더니 내 오늘 그 참모습을 보았다”

  • 남균우 교육학 박사

적장도 머리 숙인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주역 남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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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김시민, 권율. 흔히 임진왜란의 3대 장수로 일컫는 이들이다. 전 국민적 항전이 이어진 선조대의 왜란과 달리, 후금(後金)과 맞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의 전세는 파죽지세 일파만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수가 있었고, 눈물겨운 항전이 있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성(城)을 폭파해 옥쇄(玉碎)한 정묘호란 최초의 전투 안주성 싸움이 그것이다.
적장도 머리 숙인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주역  남이흥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에 있는 성벽. 서북지방의 방어요충지였던 이 성은 고구려 때 처음 쌓은 것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대대적인 수리를 거쳤다.

3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당쟁으로 국력이 약해져 임진왜란 같은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고 판단하고, 당쟁을 폐지해 황폐해진 나라를 복구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 병력을 확보해 국방을 강화하고 신흥강국인 후금과 명(明)제국의 공방전에서 중립을 지켜 조선의 입지를 마련하는 등 대내외적인 치적도 쌓았다.

그러나 대북파 정인홍 이이첨 등의 농간에 휘말려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형인 임해군과 14세의 아우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몰아 죽이는 등 패륜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 대북파의 탄압을 받아 몰락하게 된 서인 이규, 김류, 이괄 등은 무력으로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광해군의 조카인 능양군을 왕위에 옹립했다. 이름하여 ‘인조반정’이다.

반정에 참여한 이괄은 무신으로 용맹과 지략이 당대에 빛나는 존재였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그는 장수감으로 촉망 받는 인재였기에, 거사의 주모자들에게는 반드시 포섭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함길도 병사로 떠나려던 이괄에게 거사 계획을 털어놓고 가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괄 또한 간신들의 폭정에 의분을 품었던 터라 가담을 결심한다.

중견 장교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받아오던 이괄은 군관 20여 명을 포섭해 반정군 부대 편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근 고을의 병력을 끌어들인 것도 그의 공로였다. 그러나 막상 반정이 성공하고 나서 진행된 논공행상(論功行賞)은 뜻밖이었다. 1등 공신으로 책정되어야 마땅할 이괄에게 2등 공신이 주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후금국의 힘이 강대해지면서 관서지방을 염려한 조정에서는 이괄을 평안병사로 임명해 영변에 부임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불만이 누적된 이괄은 결국 특단의 결정을 내린다.

반란의 구름

영변에 주둔한 이괄 휘하에는 평안도 최정예 병사 1만2000명과 임진왜란 당시 귀순한 조총수 및 검객 130여 명이 배속돼 있었다. 막강한 군사력을 손에 쥔 이괄은 심복부하 이수백 기익헌 등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구성도호부사 한명련을 끌어들였다. 거사의 막이 오른 것이다.

관군과 맞닥뜨린 이괄은 관군의 장수들 중에서 남이흥, 유호걸, 박진영이 핵심을 이루는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이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남이흥의 부하 남두방이 마침 개인 자격으로 영변에 갔다가 이괄군에게 붙잡힌다. 이괄은 남이흥에게 전하라고 편지를 써주면서 그를 돌려보낸다. 편지를 받은 남이흥은 자신과 도원수 장만을 이간하려는 술책임을 간파하고 뜯어보지도 않고 평양에 주병하고 있던 장만에게 보고했다. 장만이 뜯어본 편지에는 ‘현명한 임금이 위에 계시는데 조정에는 흉악한 무리가 가득 찼으니 어찌 숙청하지 않으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남이흥에 대한 장만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장만은 병을 앓고 있어 남이흥을 중군으로 삼아 군사의 지휘권 등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다. 그 사이 반란군은 영변을 출발해 평양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관군의 군사력이 반란군보다 적음을 우려하는 장만에게 남이흥은 반란군 장수들에게 밀서를 보내 투항을 권유하라고 청한다.

장만은 마침 평양에 있던 이윤서의 종을 불러 편지를 주인에게 전하라고 이른다. 밀서를 받아본 이윤서는 귀순하기로 결심하고 유순무, 이신, 이각 등을 설득한다. 야음을 틈타 한꺼번에 진을 무너뜨리고 거느리던 군사 3000명을 데리고 귀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반군의 기세가 꺾이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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