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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4

여걸 최송설당의 인생 역전

‘반역자의 피, 천한 관기(官妓), 탐관오리의 아내’ 뛰어넘은 마지막 승부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여걸 최송설당의 인생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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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대한 돈을 희사해 고향에 고등보통학교를 세운 여장부가 있었다. 모든 이가 그의 덕성을 기리지만, 정작 그가 어떤 경로로 거부(巨富)가 됐는지 아는 이가 드물었다. 남편이 있었는지, 최고의 생이었다는 소문은 어떻게 나왔는지, 왕실을 등에 업은 권세는 무슨 수로 손에 쥐게 됐는지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다. 반란과 망국의 격동기, 홍진(紅塵)의 저잣거리에서 평생을 승부사로 살아온 여인은, 인생 막판에 어떻게 모든 조선인의 존경을 받게 됐나.
여걸 최송설당의 인생 역전

최송설당의 당시 사진과 ‘신여성’ 1933년 2월호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왼쪽).

1935년 11월30일, 경상북도 김천고등보통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1931년 5월, 우여곡절 끝에 개교한 김천고보는 대구고보(현 경북고)에 이어 경상북도에서 두 번째, 사립으로는 최초로 설립된 중등학교였다. 당일 오전 10시30분에는 개교 기념식과 신축교사 낙성식, 설립자 동상 제막식 등 세 가지 행사가 차례로 거행될 예정이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하객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행사가 거행될 김천고보 운동장에는 교직원 37명, 전교생 250명, 하객 700여 명 등 1000여 명이 운집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오카자키(岡崎) 경상북도 도지사, 와타나베(渡邊) 학무국장, 동아일보 송진우 사장, 조선중앙일보 여운형 사장,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 이인 변호사 등 경향 각지의 저명인사가 총출동해 단 위에 앉았다. 단 가운데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든 노파가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다소곳이 앉아 밝은 얼굴로 하객을 맞았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여인’

행사는 1부 신축교사 낙성식과 개교 기념식, 2부 설립자 동상 제막식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정열모 교장의 개식사가 끝나자 오카자키 도지사와 와타나베 학무국장의 고사(告辭)가 이어졌다. 1부 행사가 끝나고 곧이어 본 행사에 해당하는 2부 설립자 동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산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당시에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우상이라고 동상 자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해 5월 시작된 김천고보 설립자 동상 건립 운동은 김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조만식, 방응모, 윤치호 같은 저명인사가 성금을 보내왔고, 신의주고보, 동래일신여학교, 대구계성학교 등 김천고보와 아무 상관없는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까지 성금을 모아 보내왔다. 만주에서 성금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설립자의 약력 보고와 사업 보고가 끝나자 각계 인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제일 먼저 조선중앙일보 여운형 사장이 단상에 올랐다.

“조선중앙일보를 경영하는 여운형이외다. 최송설당 부인 동상 제막식에 초청을 받아서 축사를 드리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경성을 떠나 남으로 내려오는 동안 쓸쓸하고 적막한 지방 상태가 눈에 띄는 것이 마치 저 광활한 사막을 밟는 듯한 감상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김천에 들어와서 우리의 생명탑이라 할 만한 이 고등보통학교가 뚜렷이 서 있음을 발견함에 오아시스를 만남과 같아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큰 사막 가운데 이러한 오아시스가 일개 부인의 피땀으로 말미암아 건설된 것이고 보니 동서고금의 역사를 들춰보더라도 그 유례가 극히 적은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을 위해서는 천금도 아끼지 않으면서 공익사업은 애써 외면하는 부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양심이 있다면 최송설당의 거룩한 동상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서 있는 김천고보 앞을 지날 때 반드시 머리가 숙여지고 무슨 감상이 일어날 것이외다.” (‘송설 60년사’)


송진우 사장, 방응모 사장, 이인 변호사도 차례로 단상에 올라 최송설당을 ‘사막의 오아시스’에 비긴 여운형 사장에 못지않은 찬사를 보냈다. 사회자는 추운 날씨에 하객들의 건강이 상할까 염려해 이인 변호사의 축사를 끝으로 “이만 축사를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스님 한 사람이 사회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단상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는 “나는 금강산 유점사에 있는 중인데, 최송설당 여사에게 축사를 한 마디 드리기 위해 일천사백리 길을 일부러 왔으니, 여러분 용서하시오” 하며 축사를 이어갔다.

1000여 명의 축하를 받으며 동상을 봉정받은 최송설당은 학급 증설을 위해 3만원을 추가로 기부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현재 가치로 30억원에 달하는 3만원은 동상 건립비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었다.

영하의 날씨 속에 오전 10시30분부터 장장 3시간에 걸쳐 치러진 행사였지만, 그 누구도 짜증내거나 한눈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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