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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5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달리는 열차, 철통 보안 뚫고 벌어진 희대의 ‘완전범죄’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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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산은행 경성 본점에서 평북 선천지점으로 보내는 거금 2만원이 달리는 열차 위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두 명의 경비원이 화물차에 동승했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금고 안의 많은 소하물 가운데 표시도 없는 현금주머니 하나만을 콕 집어 꺼내간 범인의 완벽한 솜씨는 식민지 조선의 경찰력을 철저하게 농락했다. 그리고 7년 뒤, 세월의 흐름에 묻혔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지만 그 결과는 뜻하지 않은 곳을 향해 치닫는데….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신여성’ 1934년 4월호에 실린 ‘미궁의 열차도난 2만원 사건’ 기사와 당시의 경성역 전경.

1930년 10월7일, 추석 이튿날의 경성역은 온종일 북적거렸다. 일본의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お盆)은 양력 8월15일 전후여서, 조선의 추석은 공식적으로 명절도 휴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제합방 20년이 지났어도 조선인에게 추석은 설날과 함께 여전히 최대의 명절이었다. 경성역은 명절을 쇠고 돌아온 귀경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업무차 경성역에 나온 식산은행 본점 직원 정창섭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귀경객들과 마주하자 자신의 처지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관청에서 설날과 추석을 쇠지 말라고 아무리 강요해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도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 쉬면서 명절을 쇠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조선의 세시풍속을 억제하는 총독부 정책 탓에 명절날만큼은 월차조차 낼 수 없었다. 은행원으로 일한 10년 동안 온전히 명절을 쇤 적은 일요일이던 1929년 설날 단 한 차례뿐이었다. 명절이 반공일(半空日, 토요일)이던 다섯 차례를 제외하면, 명절날 새벽 부랴부랴 차례를 지낸 후 서둘러 출근해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봐야 했다.

명절 기분에 젖을 겨를도 없이, 정창섭은 주위를 경계하며 서둘러 소하물계로 들어갔다. 역이 붐빌수록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컸다. 정창섭은 경성역 소하물 담당 역무원 마쓰시타에게 다가가 지니고 온 가방을 풀었다. 가방 속에는 식산은행 본점에서 평안북도 선천지점으로 보내는 빳빳한 10원짜리 지폐 2000매가 들어 있었다. 당시 돈 2만원은 경성시내 고급주택 두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마쓰시타가 현금 확인을 끝내자 정창섭은 돈다발을 창호지로 한 겹 싸고 두꺼운 장지(壯紙)로 또 한 겹 싸고 기름종이로 감싼 후 헝겊주머니에 넣어 단단히 동여맸다. 겉면에는 수취인 주소와 중량만 표시된 ‘귀중품’ 딱지를 붙였다. 귀중품 딱지에 내용물이 무엇인지 표기하지 않았으므로 정창섭과 마쓰시타 외에는 헝겊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쓰시타는 정창섭에게 영수증을 끊어준 후 돈주머니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런 부담스러운 소하물은 접수하는 즉시 처리해야지, 꾸물거리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괜한 일로 신세를 망치는 수가 있었다. 지난해에도 원산에서 함흥으로 보내는 현금 3만5000원을 도난당해 관계자 전원이 해고되는 일이 있었다.

10원짜리 지폐 2000매는 의외로 가벼웠다. 보통 크기의 책 서너 권 무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내 월급이 50원이니, 30년 넘게 안 쓰고 모아야 이만한 돈이 생기는군.”

2만원이 든 돈주머니가 그처럼 가벼운 것을 알고 보니 박봉의 월급쟁이 생활이 새삼 허망해졌다. 마쓰시타는 플랫폼에 정차 중인 ‘부산발 펑톈(奉千)행 제7호 특급열차’의 귀중품 화차(貨車)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차 화물책임자 오키모토 전무차장에게 돈주머니를 맡기고 확인증을 받아 사무실로 돌아갔다.

오키모토는 마쓰시타가 건네준 헝겊주머니를 귀중품 금고에 넣고 열쇠로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귀중품 금고에는 방금 넣은 헝겊주머니 외에도 박스나 헝겊주머니로 포장된 귀금속, 유가증권, 현금 등 값비싼 소하물 수십 건이 들어 있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귀중품 화차에는 전담 승무원 홍인상이 항상 대기했다.

승객 탑승과 화물 적재가 모두 끝난 오후 7시20분, 제7호 특급열차는 요란한 기적을 울리며 경성역을 출발해 석양을 가르며 탁 트인 경의선 철로를 힘차게 내달렸다.

감쪽같이 사라지다

열차가 신촌, 수색, 능곡을 거쳐 일산을 지났을 때, 차창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열차는 철로의 이음새를 넘을 때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덜컹거렸다. 특급열차는 경성역에서 개성역까지 무정차로 운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 운행에서는 화물 하역을 위해 금촌역에 잠깐 정차할 예정이었다.

“이봐 홍군, 일반 화물칸에 잠깐 다녀올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지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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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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