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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공부법

교육학자의 체험적 ‘공부 잘하기’ 조언

목적 찾기, 스승 품기, 오거서(五車書), 그리고 여행

  • 백순근 서울대 교수·교육학 dr100@snu.ac.kr

교육학자의 체험적 ‘공부 잘하기’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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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존경하는 스승을 품어라

교육학자의 체험적 ‘공부 잘하기’ 조언

스스로 문답을 기록한 나만의 노트는 훌륭한 참고서 구실을 한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다. 나를 이끌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슴속에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모시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인 김기만 선생님은 매우 좋은 분이셨다. 대구에서 출퇴근하던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이분은 시골 동네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가르치셨다. 저녁에는 중학교에 진학할 선배들을 위해 무료로 학습지도를 해주시곤 했다. 도회지 향기를 풍기던 그 선생님은 나에게 일종의 우상이자 꿈이었다.

어느날, 부반장이던 나는 반장과 함께 2학기 교과서를 나눠주시는 선생님을 돕고 있었다. 아이들은 노끈으로 묶어 구겨진 맨 위의 책과 맨 아래의 책을 갖지 않으려고 떼를 썼다. 결국 구겨진 교과서는 모두 반장과 부반장의 차지가 됐다.

나는 구겨진 책이라도 편평한 곳에 두고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으면 나중에 곧게 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교과서를 다 나눠준 뒤 선생님은 칠판에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지”라고 크게 쓰셨다.



그리고 학생들을 둘러보시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오늘 여러분이 싫어하는 구겨진 책을 반장과 부반장이 기꺼이 받아가는 태도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앞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고 하시면서 크게 칭찬하셨다.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에 기분도 좋았지만 존경하던 선생님의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다’라는 말은 내 삶의 지표가 됐다.

요즘에도 나는 자제력과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해 그 구절을 자주 읊조린다. 그리고 살면서 자제력과 각성이 필요할 때면 비슷한 의미의 구절들을 만들어 조용히 읊조렸다. ‘남자면 다 남자냐, 남자다운 남자가 남자지’ ‘학생이면 다 학생이냐, 학생다운 학생이 학생이지’ ‘군인이면 다 군인이냐, 군인다운 군인이 군인이지’ ‘박사면 다 박사냐, 박사다운 박사가 박사지’ ‘연구원이면 다 연구원이냐, 연구원다운 연구원이 연구원이지’ ‘교수면 다 교수냐, 교수다운 교수가 교수지’ ‘한국인이면 다 한국인이냐, 한국인다운 한국인이 한국인이지’….

고등학교 1학년 국어를 담당하신 강흥일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지나가는 말처럼 “다음 주 이 시간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모두 외워라. 숙제다”라고 하셨다. 아무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많은 시를 외우는 것도 힘든 일이거니와, 교과서의 시를 죄다 외우는 것이 특별히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곰곰이 생각했다. 처음에는 모든 시를 외우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필요 없는 일을 시킬 리 없다는 믿음에 필사적으로 시를 외웠다. 나를 위한 숙제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며칠 만에 수십 편의 시를 다 욀 수 있었다.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1주일이 지나 돌아온 국어 수업시간. 강 선생님은 숙제검사를 하겠다며 학생 하나하나에게 시를 외웠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아예 한 편도 못 외웠고, 잘 하면 겨우 한 편 정도 외우는 수준이었다. 내가 교과서에 나오는 수십 편의 시를 모두 외자,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 자신도 매우 놀라시는 듯했다.

강 선생님은 “다 외우는 학생이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외우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낸 숙제였다”고 하셨다. 아울러 오랜 교사생활을 하면서 같은 숙제를 내줬지만 실제로 시를 다 외운 학생은 처음이라며 흐뭇해하셨다.

그날 이후 국어에 대한 나의 흥미는 날로 커졌고, 스스로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요즘에도 나는 가끔 시를 읽는다. 그리고 그 시절에 외웠던 시 대부분을 지금도 외고 있다. 밤하늘에 조각구름들이 밝은 달을 비켜 지나갈 때면, 박목월 시인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읊조리고, 장마철에 어쩌다 파란 하늘이라도 보일 때면, 한용운 시인의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를 외며, 국화꽃 축제에 갈 때면 서정주 시인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를 읊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인들의 세계 속에서 함께 거닐고 있는 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넓은 시야 갖기

대학 시절 이영덕 선생님이 지도교수님이었다(훗날 김영삼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분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 개인 면담을 신청한 적이 있다. 캠퍼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군사정권 반대 데모가 일어났다.

그때 독일로 이민을 떠난 지인으로부터 독일 유학 제안을 받았다. 학비·생활비 등 경제적인 부담을 모두 책임지겠으니 와서 공부만 하라는, 당시로서는 환상적인 제안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겪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서 독일 유학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연구실로 찾아간 나는 그간의 상황을 설명한 뒤 선생님의 흔쾌한 허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오랜 침묵이 흐른 뒤 이 교수님은 “독일 유학은 매우 좋은 기회다. 하지만 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에 네가 원하면 유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때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사회적인 지도자가 되는 데 별문제가 없었지만, 너희 시대에는 우리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다음, 필요하다면 미국이나 유럽을 두루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인 유학이 돼야 한다는 것과,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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