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현장

“에이,‘타워’(타워팰리스) 사는데 기본(50만원)은 했어야지…”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7-08-08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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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 교육에 목숨 거는 허세, 자존심의 경연장
    • 월급쟁이가 주류인 ‘대전족’ (대치동 전세족)
    • “기죽기 싫어 해외유학 보낸다”
    • 교사 호출 받으면 봉투 준비
    • 학원 관련 정보는 공유 거부
    • 돈보다 자존심 때문에 고소사건 잦아
    • ‘학원 쇼핑족’ 자녀 성적 변변찮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현장
    SBS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드라마 제목치고는 ‘섹시’하다 못해 자극적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룬 이 드라마는 일단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드라마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사교육 실태와 공교육의 문제점 등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무대는 서울 ‘강남’ 중에서도 대한민국 ‘교육 특구’인 대치동이다.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일류대 보낸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어?”

    “강남아파트에선 돈 자랑하지 말고, ○○아파트에선 학벌 자랑 말고, ○○아파트에선 권력 자랑하지 말란 말이 있어.”

    드라마 대사 중 일부다. 드라마 속 이야기는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돈 자랑하지 말라는 강남엔 부자도 많지만, 오로지 자식 교육만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대치동에 전세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을 일명 ‘대전파’라 한다. ‘대치동 전세족’이라는 뜻이다. ‘대전파’에는 당연히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보다 월급쟁이가 많다는 것. 월수입의 50%에서 많게는 70~80%를 자녀 학원비에 쏟아 부으며 자녀교육에 다걸기 한다. 그러니 이들의 삶의 질은 크게 떨어진다.

    지난 2월 대치동에 둥지를 튼 김모(42)씨. 전업주부인 김씨는 요즘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아, 맞다. 맞아. 이 동네 아줌마랑 어울리지 못하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속상해하면서 살아가는 내 꼴하고 어쩜 저리 똑같을까.’ 지방의 한 광역시에서 이사 온 그는 자신이 어느 도시에서 이사왔는지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대치동 아줌마 중 누군가가 이 기사를 보고 ‘아, 누구 엄마!’ 하고 눈치챌까봐 두렵다는 것. 아줌마들 입에 오르내려 득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대치동에 ‘입성’하기 전까지 목에 힘깨나 주고 산 사람이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남매가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50평형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동네 아줌마들이 알게 모르게 김씨를 시샘했다.

    “나, 대치동으로 이사 가요”

    남편이 서울 강남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에 집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김씨는 자녀 교육을 생각해 대치동행을 결정했다. 동네 아줌마들에게 “나, 대치동으로 이사 가요” 하는 허세도 대치동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데 한몫했다.

    김씨가 너른 집을 팔고 손에 쥔 돈은 2억9300만원. 그런데 그 돈으로는 대치동에서 ‘쓸 만한’ 전셋집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3억1000만원을 들여 낡은 아파트 35평형을 얻었다. ‘뭐, 대치동이 별건가?’ 하고 생각했던 김씨는 요즘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녀의 성적 못지않게 아줌마들 모임에 끼지 못하는 소외감 탓이다. 전업주부인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라곤 고작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몇몇 전학생의 어머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아줌마들끼리 만나면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각자 발굴(?)한 학원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김씨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주부는 대치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삶의 질도 떨어지고 아이의 성적이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자 김씨는 대치동으로 이사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김씨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치동이 뭐 별건가요?” 지방 대도시(역시 지역명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김씨와 같은 이유에서다)에서 지난 1월 대치동으로 이사 온 이모(44)씨. 그는 ‘본류’ 대치동 엄마들보다 더 씩씩하고 당당하다. 앞서 언급한 김씨와는 달리 이씨를 끼워주겠다고 하는 학부모 모임이 많다. 그는 대치동에 첫발을 내디딘 여느 엄마들과는 달리 자신이 마음에 드는 모임을 골라잡을 수 있는 ‘선택권’도 갖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교사”

    이씨가 당당한 까닭과 대치동 아줌마들이 자신들의 ‘조직’에 이씨를 끼워주겠다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 큰아들이 유명 특목고(역시 학교명 공개를 원치 않았다)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대치동이 아닌 지방에서, 그것도 일반전형이 아닌 특별전형으로 특목고에 자녀를 보낸 이씨는 “대치동은 최상위권 학생이 공부하기 좋은 여건을 갖춘 곳”이라고 주장한다.

    “학원비요? 대치동에 이사 와서 훨씬 줄었어요. 학원비가 싸요. 지방에는 수준 높은 교사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작년 중3 때 아이가 특목고 전형을 준비하면서 수학학원 2곳(한 곳은 내신과 선행학습 대비용, 나머지는 특목고 준비용)을 다녔는데 월 70만~90만원씩 지출했어요. 대치동에 와보니 지방의 최상위 수준에 달하는 선생님이 학원마다 ‘널려’ 있어요. 교사의 질은 뛰어난데 학원비는 25만~30만원이더라고요.”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현장

    대림아크로빌과 타워팰리스 등 초고층 건물이 늘어선 서울 강남의 대치동 일대.

    사업가 남편을 둔 이씨는 지방에서 두 아이의 영어와 수학 학원비로 월 200여 만원씩 지출했는데 대치동에서는 100만~110만원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씨는 “고액과외가 판치고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교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곳 또한 대치동”이라고 말했다.

    자식이 공부 잘하는 만큼 부모, 특히 엄마가 시샘 혹은 대접을 받는 곳이 대치동이다. 자녀의 성적이 곧 가정의 행복과 직결된 곳이기도 하다. 중간·기말고사를 앞둔 2~3주 전 각 학원이 ‘내신성적 관리 시스템(평소 선행학습을 하다가 기출문제 등을 풀면서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는 기간)’으로 전환하면 온 동네가 조용해진다. 가족단위 외식이 현저히 줄고 정보교환 및 친목도모를 위한 학부모 모임도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대치동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원래 살던 사람이나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나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2월 서울 중랑구에서 대치동으로 옮겨온 강모(43)씨는 이 동네 아줌마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6억5000만원을 주고 40평대 전세 아파트를 구했다. 기죽지 않기 위해 일부러 큰 집을 선택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강씨의 시댁은 “아이 교육 한번 잘 시켜보겠다”는 강씨의 말에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강씨는 이사 오기 전 승용차를 대형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여윳돈이 없어 포기했다. 대치동에는 강씨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 큰 집으로 옮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꿇리지 않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강씨를 화나게 하는 것은 넓은 집에 사는데도 동네 아줌마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녀 유학 보낸 ‘개털족’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기 일보 직전에 처한 가정도 있다. 수도권 신도시에서 3년 전 이사 온 정모(45)씨는 “대치동으로 이사 가자”는 아내의 제의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자녀 교육을 빌미로 강남으로 이사를 가자고 한 아내가 잘사는 강남 아줌마들 틈에 끼게 된 이후 그들의 소비와 생활수준에 맞추기 위해 과다한 지출을 일삼기 때문이다.

    정씨의 둘째딸은 현재 캐나다에 유학 중이다. 홑벌이 직장인인 정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단기유학 보내자는 아내의 뜻을 꺾지 못하고 집(시가 8억원)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유학비로 3000만원을 선지급했다.

    그는 캐나다의 한국인 집에 머물고 있는 자녀의 생활비와 용돈으로 월 200만원을 송금한다. 정씨의 월급은 500여만원(세금 공제후). 직장인으로는 상위권에 속하는 소득 수준이지만 대치동에서는 ‘개털족’에 속한다. 캐나다에 송금하고 남는 돈 300만원 중 특목고(외고)를 목표로 공부 중인 중학교 3학년 큰딸의 영어(2곳)와 수학, 내신 대비용(과학과 사회) 학원비 등으로 월 180만원을 지출하면 120만원이 남는다. 4억5000만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는 정씨는 “1년여 만에 3000만원 한도인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을 보였다”면서 “아내가 딸을 어학연수 보낸 것은 자녀의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려는 목적도 있지만 함께 어울리는 아줌마들에게 기죽기 싫은 것도 한 이유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얘, 남편 팬티 색깔은 가르쳐줘도 학원강사 이름은 무덤까지 갖고 가는 게 이 동네 아줌마들이야.”

    드라마 속 ‘원조’ 강남 아줌마 윤수미(임성민 분)가 한 말이다.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학원 정보를 쉽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 대치동의 특징 중 하나다. 특히 자녀가 학원이 아닌 개인과외를 받을 경우 ‘교사’에 대한 정보를 숨기는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이번에 타워로 이사 가셨다면서요?”

    대치동에 사는 또 다른 김모(42)씨는 일명 ‘꼬리표(성적표)’가 나온 후 몇몇 아줌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어머, 축하드려요. 아드님이 이번에 성적이 좋았다면서요? 그런데 어느 학원에 보내세요?” 아줌마들은 김씨에게 비슷비슷한 질문을 던졌고, 그는 “영어와 수학 학원만 보낸다. 나머지 과목은 스스로 공부했다”고 답했다.

    얼마 후 김씨는 한 동네에 사는 절친한 선배에게서 “학원 정보를 가르쳐주기 싫어 거짓말을 한 아줌마라고 소문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김씨는 황당했지만 쓴웃음을 지었다. 대다수 아줌마가 학원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진 데서 빚어진 풍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촌지 시인’이자 중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서상원 교사(유준상 분). 반 대표의 어머니가 서 교사에게 건넨 봉투에는 10만원권 수표가 두둑이 들어 있다. 유심히 수표 숫자를 헤아려보니 10장, 즉 100만원이었다.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의 눈이 휙 돌아갔을지 모른다. ‘학교 선생님에게 촌지로 그렇게 많은 돈을?’ 하고 토끼눈을 뜨지 않았을까. 일부 교사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을지 모른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현장

    대치동에는 자녀 교육을 위해 빚을 내서 이사 온 사람이 많다. 사진은 대치동 부동산업소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0만원짜리 촌지가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간혹’ 그 정도의 촌지는 건넨다는 게 대치동 엄마들의 증언이다. 초·중·고등학교를 막론하고 대치동의 촌지 기본액수는 30만원. 좀 ‘신경을 쓴다’ 싶으면 50만원을 찔러준다. 그러나 드라마에서처럼 수표를 건네지는 않는다. 그것은 불문율이다. 받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 현금이나 백화점 상품권으로 준비하는 것이 촌지의 기본 예절이다.

    얼마 전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가 담임교사의 ‘호출’을 받았다. ‘자녀의 학교생활과 관련해 상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호출한 ‘뜻’을 알아차린 학부모는 봉투에 30만원을 준비했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건넨 첫인사는 “어머, 이번에 타워(팰리스)로 이사를 가셨다면서요? 축하해요”였다. 상담을 마친 학부모는 책상 위에 놓인 책 밑에 봉투를 찔러 넣었고, 이를 본 선생님은 슬쩍 다른 곳으로 눈을 피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또다시 담임교사의 호출을 받았다. 아이의 행실이나 성적이 썩 좋지 않은 편임을 잘 알고 있는 학부모는 상담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재차 부르나 싶어 같은 반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몇몇 엄마가 농담 속에 뼈가 담긴 말 한마디씩을 건넸다.

    “에이, 타워(팰리스)에 사는데 기본(50만원)은 했어야지. 선생님도 기대치가 있었을 거 아냐. (촌지 액수가) 적었나봐. 또 부른 걸 보니.”

    ‘절대 촌지 안 받는 선생님 리스트’

    지난 2월 초. 한 학부모는 생소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3월 중순 열린 학부모 총회에서 “절대 촌지를 받지 않는다”고 공언한 교사에게 1년 동안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백화점을 통해 ‘선물’을 보냈다. 통상 학기 중에 촌지나 선물을 받지 않는 교사라 하더라도 학기말에는 받는 게 관례다. 그런데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백화점 측으로부터 “상대방(교사)이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되돌려보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학기말에 건넨 선물까지 안 받다니. 대단하다!” 이 소문은 단숨에 학부모들 사이에 퍼졌고, 그 교사는 학부모들 정보망의 ‘절대 촌지 안 받는 선생님 리스트’에 등재됐다.

    ‘받는 교사’와 ‘절대 안 받는 교사’. 대치동 엄마들뿐만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대한민국 엄마들은 교사가 촌지를 밝히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촌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교사가 ‘호출’할 경우 ‘혹시 촌지 때문에 부른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촌지는 때로 교사 자신의 발등을 내리찍는 도끼로 변하기도 한다.

    초등학생 자녀가 담임교사로부터 부당하게 매를 맞았다고 판단, 최근 학교를 방문해 강력히 항의한 이모(39)씨는 교사가 잘못해 ‘걸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가 수집 중인 교사의 ‘잘못’은 촌지를 건넸다는 학부모의 증언이다. 벌써 촌지 액수와 건넨 장소 등을 파악해놓은 상태다. 만일 자신의 항의로 자식이 교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면 교육청에 ‘촌지 수수’를 신고할 생각이다.

    교사가 맘 편히 발 뻗고 잘 수 없는 곳 또한 대치동이다. 시험문제 출제에 따른 스트레스가 무척 심하다. 학생들이 워낙 선행학습과 깊이 있는 학습을 많이 하는 터라 적당한 수준의 문제를 냈다가는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실력 없는 선생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수업준비도 대충 했다가는 큰일 난다. 영어 교사는 자신보다 말하기, 듣기가 훨씬 뛰어난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고소·고발 사건이 가장 많은 학교일 겁니다.”

    대치동에서도 명문으로 통하는 한 중학교 교사의 하소연이다. 이 교사는 지난해 3월 학부모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비싼 가전제품은 등교할 때 갖고 오지 않도록 특별히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학교에서는 변호사와 판·검사 학부모가 많아서 그런지 사소한 사건으로도 고소가 빈번히 일어납니다. 전자사전 때문에 고소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한 아이가 전자사전을 펴놓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게 뭐야?’ 하고 전자사전에 손을 댔다가 그만 파손시킨 겁니다. 전자사전을 가진 학생의 부모는 망가뜨린 학생이 보상해줘야 한다고 주장했고 망가뜨린 학생의 부모는 ‘애들끼리 그런 건데 뭘 보상하느냐’고 맞서다 결국 고소에 이른 겁니다.”

    3년 전. 대치동 모 중학교의 한 학부모는 반 학생 전체를 고소했다. “내 아이를 왕따시켜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줬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건은 최근 무혐의 판결을 받아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에 가해자로 연루된 학생과 학부모가 3년 동안 당한 정신적 피해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저는 돈도, 합의금도 필요 없습니다. 이 아이가 처벌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를)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자녀 문제로 경찰을 찾는 부모의 경우 대부분 돈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고소를 한다고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남경찰서에 접수된 고소 사건의 90% 이상은 폭행에 따른 상해사건이다. 팔, 다리 또는 코뼈가 부러지거나 치아가 손상된 경우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찰서를 찾는다는 것.

    반 학생 전체 고소

    “일부는 합의금이 서로 맞지 않아 고소에 이른 경우지만, 대개는 가해자 부모가 사과는 시늉에 그친 채 돈으로 무마하려고 할 때 (피해자 부모가) 자존심이 상해 고소하는 경우입니다. ‘네가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어? 나도 그 정도는 있어!’ 하는 오기가 발동한 거죠.”

    “당신, 바람을 피우려면 들키지 말고 피워. 동네 아줌마들에게 소문나면 어쩌려고 그래.” 극중 ‘원조’ 강남 아줌마인 윤수미가 은행 PB센터 팀장인 남편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가 ‘애들 교육비를 대는 통장’ 정도로만 자신을 대접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더군다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에 더 화가 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드라마에서처럼 가만히 있을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대치동에서는 그런 사람을 적잖이 발견한다.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사네, 못 사네’ ‘이혼을 하네, 마네’ 하고 싸우지만 결국은 아내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대치동에 이사 온 지 4년째 접어든 40대 중반 주부의 말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이혼을 할 경우 지금 남편이 갖춘 조건이나 수입과 맞먹는 상황의 남자를 만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이혼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그러니 그냥 남편의 바람을 묵인하거나 용서하고 사는 거죠. 저처럼요. 남편에게 ‘바람을 피우려면 나에게 들키지 말고 몰래 피우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해요. 그게 진심이기도 하고요. 요즘 세상에 돈 잘 벌고 능력 있는 남자치고 애인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물론 가정과 자녀교육에 충실한 남자도 적지 않지만. 이 동네 엄마들은 우스갯소리로 ‘애하고 돈만 있으면 산다’는 이야기를 가끔 해요. 남편 사랑 없이는 살아도 돈과 아이 없으면 못산다는 거죠.”

    “학원을 자주 바꾸는 아이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 못 봤습니다.”

    대치동에서 15년째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한 학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학원만을 찾아 철새처럼 쫓아다니는 엄마 밑에서 자란 자녀의 성적이 결코 높지 않다”면서 “마치 엄마의 (학원에 대한) 정보력이 아이의 성적을 좌우하는 것처럼 소문이 났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상위권 학생은 한 학원에 오래 다녀”

    “엄마들의 90% 이상은 아이의 성적이 제대로 안 나오면 좋다고 소문난 학원으로 옮깁니다. 그런 엄마의 특징은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에서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거죠. 아이의 학습태도나 성취욕구 등이 학습부진의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마치 족집게처럼 콕 찍어 성적을 쑥 올려 줄 것 같은 학원을 찾아 순례하는 거죠.”

    대치동의 또 다른 수학학원 유명 강사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상담차 학원을 찾아온 엄마와 대화를 나눠보면 아이의 성적과 공부하는 방식이 어떨지 감이 온다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마치 명의(名醫)를 찾아 병원을 순례하듯 학원 쇼핑을 하는 엄마를 가장 싫어합니다. 자녀가 공부는 못하는데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마치 자신이 ‘학원 평가사’라도 되는 양 이것저것 물어보고 학원 수준을 파악하는데, 그런 아줌마들 아이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못 봤습니다. 상위권 학생들은 한 학원에서 진득하게 오랫동안 공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학생들은 자기 주도적인 학습 습관이 몸에 배어 학원에만 의존하지 않거든요. 혼자 공부하면 2~3시간에 걸쳐 터득할 것을 1시간여 만에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학원을 활용하는 거죠.”

    대치동이 도대체 어떻게 사교육을 시키고 자녀 교육에 열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드라마를 시청한다는 강북의 최모(39)씨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자녀 교육에 목숨 건 아줌마라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돈만 있다면, 경제적인 뒷받침만 된다면 나도 대치동 가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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