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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6

愚夫의 탈 썼지만 진천 동지할 업적으로 천하통일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愚夫의 탈 썼지만 진천 동지할 업적으로 천하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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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전의 뉘 집 바람벽에 걸린 족자에서 ‘호질전’의 저본을 베끼고, 그 이튿날 아침(1780년 7월29일) 연암은 청나라의 황성인 북경을 향해 말고삐를 죄었다. 옥전에서 송가장을 지나 연교, 노하, 통주를 거쳐 북경까지는 300리 길.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중국을 통일하고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현장이 연암의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 2월과 5월에 이곳을 답사한 필자는 연암이 본 것과 다른 차원의 상전벽해를 확인했다.
愚夫의 탈 썼지만 진천 동지할 업적으로 천하통일

허세욱 교수가 뒤쫓는 연암의 연행도.

옥전(玉田)에서 송가장(宋家莊)을 지나고 어양(漁陽·지금의 계주(·#53626;州))을 거쳐 방균(邦均)을 지났으며 연교(燕郊)로부터 노하(潞河), 통주(通州)를 거쳐 북경까지 만 엿새 동안 122km를 달렸다. 여기 300리는 북경의 근교였다. 말하자면 황성으로 들어가는 말죽거리다. 그 번영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어양에 들자 벌써 거마 소리가 우레 같았고, 노하의 부둣가에는 만 척의 상선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통주로부터 북경까지 50리 길은 석판의 탄탄대로에 부딪는 쇠바퀴 소리가 귀를 찢었고, 영통교(永通橋)부터 조양문(朝陽門)에 이르는 그 직선의 운하로 작은 배들이 연락부절이라 했다.

연암의 눈이 마침내 휘둥그레졌다. 청나라 문명의 충격은 물론 처음이 아니다. 청국으로 들어오는 책문에서 그 번창하고 화려한 거리 풍경에 놀랐고, 성경에 산적한 상품과 오랜 역사의 골동에 감탄했으며, 다시 백기보로 이동할 때 수렁 길 200리에 먹줄을 친 듯 반듯하게 놓인 다리, 그리고 무령(撫寧) 거리에서 눈부신 금옥의 편액들을 보았을 때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문명적인 것들이었다.

8월1일 북경의 정양문 앞에 발을 디딘 연암은 높이 솟은 패루와 누런 기와가 파도치는 구중궁궐과 맞닥뜨렸다. 단순 건축물이 아니었다. 이 땅에 붉은 모자와 말굽 모양 소매를 걸친 청인들이 정권을 창출한 지 어언 4대, 건륭(乾隆)이란 배를 띄운 지 45년, 그들은 18세기를 뒤흔들어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했다. 아니 청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실재 정권이요, 세계에 그 영향을 촉발하는 실세다. 비록 만주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세운 정권이지만 중국의 21대 왕조 3000년의 역사에 당당히 몸을 꽂고, 그 유구한 역사공간을 계승하고 있다. 여기에는 필시 어떤 법술과 심법(心法)이 있을 것이라고 연암은 믿었다. 연암은 북경의 먼지 속을 다만 스치고 지나가는 한낱 과객이 아니었다.

惟精惟一의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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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한 유리창 골목.

연암은 조국의 조야하고 교조적인 성리학파들이 여태 고집하고 있는 복명(復明)의 실체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청나라의 실재와 실세에 대해 역사에 묻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연암은 그 심법으로 ‘유정유일(惟精惟一)’을 들었다. 사전적으로는 ‘하나로(專一) 정진(精進)하다’의 뜻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풀이하면 일관성·통일성·불변성의 의미를 내포한다. ‘서경’의 ‘대우모(大禹謨)’편에서는 ‘오직 하나로 정진함에는 성실하게 중용을 잡을지어다’라고 했다.

일관과 통일, 불변의 원칙 운용에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그 전제로 삼은 것도 주의할 만하다. 연암은 ‘유정유일’의 심법을 성인의 역사에서 찾았다. 곧 요·순으로부터 홍수를 다스린 하우, 정전(井田)제도를 세운 주공, 학문을 편찬 정리한 공자, 이재(理財)를 밝힌 관중의 업적이 유정유일의 선례라 했다. 연암의 눈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 이전의 전설, 즉 무명의 성인이나 역사에서 왜곡되거나 역사의 비판을 받은 그 모든 실재의 역사와 심지어 모방된 역사까지 일관된 역사, 통일된 역사로 간주했다. 매우 섬뜩한 실학자의 사안(史眼)이다.

연암은 문자가 창조되기 전에 중국 역사의 기초를 다지고 수정한 무명의 성인들의 심력과 총기를 기억하길 바랐다. 그뿐만 아니다. 심술(心術)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달라서 우인(愚人)으로 지목된 이가 있다. 연암은 그들이 음탕한 마음과 영리한 기교로 재앙의 두목이 되고 우부(愚夫)의 탈을 썼지만 천지를 뒤흔들 만한 업적으로 천하를 통일했음을 환기시켰다. 바로 옥과 구슬로 궁궐을 지은 걸, 주를 비롯 만리장성을 쌓은 몽염, 천하에 곧은 길을 닦은 진시황, 천하의 법과 제도를 통일시킨 상앙 등을 그 예로 들었다.

또 한 가지 있다. 역사의 모사력(模寫力)이다. 춘추 때 육국(六國)은 걸과 주를 욕하면서도 그들의 경궁요대(瓊宮瑤臺)를 모방하다 장화대(章華臺)와 황금대를 지었고, 진시황의 아방궁은 장화대와 황금대의 윤곽을 모사했다. 그리고 한(漢)나라의 미앙궁(未央宮)은 아방궁의 재판이다. 그것들이 어느 날 잿더미가 되건만 계속 되풀이했고, 공사할 때는 짐짓 모르는 척하다가 뒷날에야 고래고래 꾸짖는 버릇마저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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