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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7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유서도 시신도 없는 선상(船上) 행방불명,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존설의 진실은?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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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대표하는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동반 실종. 남은 것은 ‘짐을 부탁한다’는 가명의 쪽지 한 장 뿐이었다. 언론과 호사가들은 단번에 정사(情死)로 몰아갔고 윤심덕이 죽기 직전 취입한 노래 ‘사(死)의 찬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빈틈은 너무나 많았다. 실종 4년 뒤 “두 사람이 음반회사의 선불 3만원을 받아 신분을 속인 채 이탈리아 로마에서 숨어 살고 있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경성 바닥을 떠돌자 마침내 유족은 총독부에 수색원을 제출하는데….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정사(情死)’ 미스터리

윤심덕과 김우진의 생존설을 제기한 ‘삼천리’ 1931년 1월호 ‘불생불사의 악단 여왕 윤심덕’ 기사.

1926년 8월3일 밤 11시 시모노세키 항.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가 요란한 기적을 울리며 부산항을 향해 출발했다. 그믐을 사흘 앞둔 여름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한 시간이 지나 날이 바뀌자 아스라이 보이던 항구의 불빛마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증막 같은 객실에서 사람에 부대끼며 비지땀을 흘리던 삼등실 승객들도 피로에 지쳐 차례로 골아 떨어졌다.

새벽 4시 도쿠주마루가 쓰시마섬 앞바다를 통과할 때, 갑판을 순찰하던 급사가 일등실 객실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전등으로 안을 비춰보니 승객은 오간 데 없고 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꼭두새벽에 문을 열어놓고 도대체 어디 간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갑판 위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급사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객실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여행가방 위에 ‘보이에게’로 시작되는 메모지 한 장과 팁 5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안하지만 짐을 집으로 보내주시오.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 경성부 서대문정 윤수선.’

급사는 메모지를 움켜쥐고 황급히 조타실을 향해 내달렸다. 얼마 후 밤새도록 승객들의 숙면을 방해하던 둔탁한 엔진 소음이 멈췄고, 도쿠주마루의 모든 객실에는 불이 들어왔다. 사라진 일등실 승객 두 명을 찾기 위해 승조원들과 승객들은 배 안 구석구석을 뒤졌고, 선장은 뱃머리를 돌려 항로 주변을 수색했다.

도쿠주마루는 예정시간보다 반나절이나 늦게 부산항에 입항했다. 부산항에서 하선한 승객은 시모노세키 항에서 탑승한 승객보다 두 명이 적었다.

의문의 情死

이튿날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는 물론 ‘도쿄아사히심분’까지 현해탄에 몸을 던져 정사한 청춘 남녀의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3일 밤 11시에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가 4일 오전 4시경 쓰시마섬 옆을 지날 즈음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부근을 수색했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승객명부에 남자는 전남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30세), 여자는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273번지 윤수선(30세)이라고 씌어 있지만 본명이 아니고,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으로 밝혀졌다. 관부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동아일보’ 1926년 8월5일자)


기사는 김우진과 윤심덕이 ‘서로 껴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고 전했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자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승객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에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으므로 그들이 언제 어느 지점에서 투신했는지, 과연 투신한 것이 맞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윤심덕의 유류품에는 현금 140원과 장신구, 김우진의 유류품에는 현금 20원과 금시계가 있을 뿐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윤심덕은 최고의 소프라노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음악가였고, 김우진은 목포 백만장자 김성규의 장남으로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극작가였다. 목격자도 없고 유서도 남기지 않아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동반 자살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었지만, 언론은 정사라 단정하고 앞 다투어 추측기사를 쏟아냈다.

도쿠주마루에 몸을 실은 수백 명의 승객들은 제각기 그리운 고향을 꿈꾸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갑판 위에는 다만 두 사람의 젊은 남녀가 서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사납게 출렁거리는 물결을 굽어보며 가끔 길게 한숨을 내쉬어 무엇인지 비상히 한탄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멀리 남실거리는 수평선 저쪽을 바라보며 애조(哀調)에 넘치는 애련(哀戀)한 목소리로 ‘사의 찬미’를 불렀으니 그의 오장에서 끓어 나오는 처량한 노랫소리는 다만 으르렁거리는 모진 파돗소리와 함께 수평선 저쪽으로 멀리멀리 사라져 버릴 뿐이었다. 그 순간 그들은 푸른 바닷물 속에 몸을 날렸다. (‘윤심덕 김우진 정사사건 전말’, ‘신민’ 1926년 9월호)


사고 발생 사흘 후인 8월7일 밤, 김우진의 동생 김철진은 목포 자택으로 찾아온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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