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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9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폭염의 새벽 3시, 공동조계 거리를 울린 세 발의 총성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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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 가혹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가난을 피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간 소녀는 아버지의 아편밀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팔았다. 다시 수년이 지나 상하이 최고의 무희(舞姬)가 되어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인은 엘리트 독일인의 아내가 되었지만, 비극의 운명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감미로운 재즈와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배경으로 1930년대 상하이 밤거리에서 벌어진 기괴한 사랑. 질투와 배신, 복수가 뒤엉킨 그 처참한 결말.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조선인 이상산을 중심으로 독일인 웨셀, 영국인 바톤의 삼각연애가 초래한 비극을 다룬 ‘동아일보’ 1934년 8월22일자. 배경은 ‘국제도시’로 불리던 당시의 상하이 전경.

1934년 8월13일 새벽 3시, 상하이 징안스루(靜安寺路·지금의 난징스루)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공동조계 중심지에 위치해 밤늦도록 북적이던 징안스루도 새벽녘이 가까워오자 인적이 뚝 끊겼다. 택시에서 내린 금발의 백인 청년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양식 주택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닫힌 철문을 살포시 밀자, 문은 맥없이 열렸다. 백인 청년은 집안으로 들어가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해서 문을 닫았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백인 청년은 익숙한 곳인 듯 단번에 계단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뒷문과는 달리 2층 침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백인 청년은 바지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방안에서 덥고 습한 공기가 밀려왔다. 침대 위에는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동양 여자와 파자마 바람의 백인 남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침실 한쪽 귀퉁이 조그마한 침대 위에는 소녀티를 갓 벗은 또 다른 동양 여자가 곤히 자고 있었다.

“빌어먹을!”

침착하게 행동하던 백인 청년은 한 침대에서 다정히 자고 있는 남녀를 목도하고 갑자기 흥분했다.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들고 침대 가까이 다가가서 남자의 가슴을 겨눴다.

“이런 개자식!”

백인 청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검지에 모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쥐 죽은 듯 고요한 만국조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알은 정확히 잠든 남자의 심장을 뚫었다. 남자 곁에서 자고 있던 동양 여자가 총성에 놀라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총구가 왼쪽 가슴을 눌렀다.

“다, 당신은….”

탕!

동양 여자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또 한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백인 청년은 권총을 쥔 채 동양 여자의 가슴에서 용솟음쳐 흐르는 선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반쯤 풀려 애절한 목소리로 뭐라고 주절댔다. 얼마쯤 지나자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침실 한쪽 귀퉁이 침대에서 자고 있던 동양 여자가 공포에 질려 홑이불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 소리였다. 백인 청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권총을 치켜들고 뒷걸음질쳤다.

탕!

세 번째 총성과 동시에 백인 청년이 피를 토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총구를 자기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살해당한 비극의 주인공은 함경북도 길주군 덕산면 출신 스물여섯 살의 젊은 조선 무희 이상산과 공동조계 공부국(工部局·공동조계의 도로건설과 치안을 담당하던 행정기관) 순사부장인 서른한 살의 영국 청년 바톤이었다. 두 사람을 살해하고 자살한 백인 청년은 독일계 대(大)제약회사의 동양선전부장인 서른다섯 살의 독일 청년 웨셀이었다. (‘국제 삼각애의 혈제(血祭)’, ‘개벽’ 1934년 12월호)


조선인 이상산, 독일인 웨셀, 영국인 바톤. 세 남녀의 국적을 초월한 삼각연애가 빚은 참극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활극에서 살아남은 동양 여자는 이상산의 여동생 이상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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