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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러시아 학자들의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

“과대망상증 중국,‘문명 훔치기’ 자충수까지…”

  • 권재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onfetti@donga.com

남북한, 러시아 학자들의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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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학술문화재단과 러시아 극동국립대가 공동 주최하는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가 10월1일부터 3일까지 남북한 및 러시아 역사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다. 이 학술대회는 세 나라의 학자들이 연구한 고구려-발해 역사 교류를 통해 다시 한번 중국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학술적으로 입증하는 장이 됐다.
남북한, 러시아 학자들의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대회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심으로 학술토론을 하는 남북한·러시아 학자들.

“중국인들은 러시아가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을 때 ‘중국이 이미 1000년 전 송나라 때 개발한 것(화약으로 쏘는 불화살)을 러시아는 이제 겨우 개발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천하의 중심은 늘 중국이고 주변 국가는 아무리 큰 나라라도 작은 섬에 불과할 뿐입니다.”

러시아 고고학계의 원로인 70대의 다비드 브로디얀스키 극동대 교수의 말이다. 10월2일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회의 토론 현장에서였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가 모여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각국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을 펼치는 자리였다. 동북공정을 포함한 중국의 역사왜곡이 1981년 본격화한 다민족통일국가론의 영향 아래 치밀하게 전개된 패권논리의 산물이라는 서길수 서경대 교수의 발표에 대한 지지였다. 중국의 지독한 과대망상증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역사가 왜곡한다고 왜곡되나”

학술회의 말미 토론에서 가장 연장자가 이렇듯 적극적 발언을 쏟아내자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성토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서길수 교수는 “예부터 중국은 ‘천하=세계’가 아니라 ‘천하=중국’이었다”며 다른 민족의 역사를 잡아먹으면서 이를 자신들의 역사로 둔갑시켜온 중국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의 삼각 축 가운데 하나인 북한 학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니 속국이니 하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도 중국을 직접 거명해 비판하거나 ‘동북공정’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기자가 “서길수 교수의 발표에 대해 러시아 측의 의견은 들었는데 북한 측 의견도 듣고 싶다”고 질문을 던졌다. 잠깐 침묵이 흐르다가 7명의 북한학자 중 최연장자인 김유철(66) 김일성종합대 역사학부 교수가 벌떡 일어났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노학자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역사는 왜곡한다고 왜곡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진실은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객관적으로 밝혀지게 돼 있습니다.”

함축적 의미가 담긴 두 마디였다. 북한의 오랜 혈맹이자 주요 에너지원 공급처인 중국에 대해 직접적 비판을 가할 수 없지만 학자적 양심을 외면할 수 없다는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학문의 자유조차 정치에 종속된 북한의 서글픈 현실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러시아 극동국립대 한국학대학 설립 12주년을 기념해 그 설립기금을 지원한 한국의 고려학술문화재단과 러시아 극동국립대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선 모두 15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고려학술문화재단의 장치혁 회장이 이끈 남한 대표단에선 서울대의 노태돈·송기호 교수와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 연해주 발해유적 발굴전문가인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가 발표를 맡았다. 북한에서는 정치건 김일성종합대 역사학부장이 이끈 7명의 김일성종합대 교수 중 김유철, 남일룡, 전동철, 리광희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러시아에서는 브로디얀스키 극동국립대 교수와 에우게니아 겔만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연구원 등 7명이 발표했다.

김유철 교수는 ‘북위(北魏)와의 관계에서 본 고구려의 높은 대외적 지위’ 발표문에서 435~534년까지 고구려와 중국 북방의 패자였던 북위의 외교관계가 철저히 고구려 주도로 이뤄졌음을 규명했다.

동북아의 패자(覇者) 고구려

고구려는 386년 건국된 북위와 반세기 가까이 교류가 없다가 435년 6월 먼저 사신을 북위에 파견해 양국 관계의 가교를 놓기 시작한 이후 100여 년간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김 교수는 그 근거로 △북위의 라이벌이던 북연(北燕)이 멸망하자 북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수만 대군을 동원해 북연왕 풍흥의 고구려 망명을 관철시킨 점 △고구려 장수왕과 문자명왕이 사망했을 때 북위 황제들이 상복차림으로 직접 애도식을 거행한 점(다른 나라 왕의 사망에 대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고구려에 대해서가 유일) △반면 고구려는, 북위는 물론 중국의 어느 나라 왕에 대해서도 상복차림으로 애도식을 거행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 △510년에는 청주(산동성 광효현)에 고구려 건국시조를 제사지내는 ‘고려묘’라는 사당을 세운 점 △고구려에 대해서 한 번도 무력행사를 못한 점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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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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