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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11

“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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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밀운(密雲)시를 관통하는 백하. 여기서부터 백하는 하류로 접어든다.

연암은 속이 헝클어져 있었다. 그때 조선과 청나라 사이는 풀리지 않는 실타래나 망가진 용수철 같았다. 한쪽에서 누르는데 눌리지 않고, 다른 한쪽에서 풀려고 해도 남은 한쪽이 아기똥거렸다. 서로 구조가 다르고 이용이 달랐다. ‘곡정필담’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연암은 우선 두 나라의 말과 글이 다르고 그래서 제작의 방법과 사고의 방법이 다름을 지적했다. 입안에서 옹알대던 말을 시문으로 쓸 때 벌써 그 정곡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라고. 마치 방언을 쓰던 사람이 그 뜻을 번역해서 전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했다. 당시 조선은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일이 통일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중국 사람은, 그 말이 곧 문장이어서 말이 곧 경전이고 학설이고 문집이 되더라는 것이다. 이는 물론 한자(漢字) 저작 활동을 뜻했다.

“마시는 게 아니라 붓는 것”

연암은 ‘곡정필담’에서 두 나라의 문화와 습속의 차이를 시저(匙箸)로 설명했다. 중국 사람은 젓가락을 쓰고 숟가락을 쓰지 않았다. 숟가락 대신 구기로 국을 떠먹긴 해도 밥을 먹을 땐 좀처럼 사용하진 않았다. 반면 조선 사람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함께 사용하되 그 쓰임이 달랐다. 숟가락은 작은 잎사귀 같지만 그 길이가 길어서 수북이 밥을 떠서 단숨에 배를 불릴 수 있다. 중국 사람을 술을 마실 때 작은 잔으로 권하되 자주 마시지만, 조선의 술잔은 큼직해서 얼른 취할 수 있다. 한 나라는 젓가락 전용에 작은 술잔, 또 한 나라는 시저 따로따로에 큰 술잔, 그러니까 큰 나라 사람은 씀씀이가 잘고, 작은 나라 사람의 씀씀이가 오히려 굵직했다.

연암은 제 얼굴에 눈이 멀지 않았다. 8월20일자 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연암이 북경을 떠난 지 보름이 넘어 다시 북경으로 귀환한 날이다. 헤어지기 싫어 울며불며 몸부림쳤던 장복이와 재회하는 날이다. 연암이 그의 손을 맞잡고 맨 먼저 들어간 곳은 길가의 술집이었다. 그것도 수양버들 우거진 다락, 거기에는 고금의 명필 명화 명시 명품들이 즐비했다. 이런 곳을 중국에서는 청루라 했고 명사와 고관이 들락거렸던 모양이다. 비록 반가에서는 그 자제의 청루 출입을 한사코 훈계했지만.



술집은 한껏 분위기를 잡았다. 청루 앞에는 푸른 깃발이 펄럭였다. 거기에 시 한 구절 적게 마련이다. 탁자나 기명 중에 골동도 있었다. 문갑 위에는 먹이며 종이, 벼루, 붓, 문방사우를 갖추었으니 일견 선비의 사랑방을 방불케 했다.

연암은 어디서 들은 동냥인지 양무구(揚無咎)가 청루에서 놀던 비화 한 가지와 장일인(張逸人)이 청루의 술잔에 새긴 시 이야기를 삽화로 곁들였다. 양무구가 이 집에 ‘절지매(折枝梅)’란 그림 한 폭을 기증하고, 장일인이 쓴 시 한 편 때문에 청루 문전이 장관을 이루었다는 얘기다. 필자가 알아본 바, 양무구(1097~1169)는 남송 때 유명했던 수묵화가요, 장일인은 당시 도사였다. 저들의 고사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연암은 대조적으로 조선의 술집과 주벽을 시원스레 털어놓았다. 소위 술집은 소각문에 새끼발을 늘이고 쳇바퀴로 등을 달만큼 작고 허술했지만 주량만큼은 호들갑스럽다고 자랑했다. 큰 사발에 그득 부어서 이마를 찡그리며 꿀떡꿀떡 마시는 호기를 부린다고. 연암은 그런 주법을 이렇게 표현했다.

此灌也, 非飮也 要飽也, 非要趣也 故必一飮則醉, 醉則輒?, ?則輒致鬪·#54211;, 酒家之瓦盆陶·#54247;, 盡爲?碎.(이것은 붓는 것이지 마시는 것이 아니다. 배를 불리는 것이지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 마셨다 하면 반드시 곤드레했고, 곤드레하면 주정을 부렸고, 주정을 부렸다 하면 술집의 옹기와 질그릇이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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