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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 추적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newhis19@hanmail.com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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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자 양녕이 폐위되고 충녕이 그 자리를 잇는 장면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다. 양녕대군이 왕위에 올랐을 경우 폭군이 됐으리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글 창제 같은 위대한 공적을 세우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사람들은 충녕의 왕위계승을 다행한 일로 생각한다. 충녕의 왕위계승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실록은 ‘폐위’, 야사는 ‘양보’… 충녕 왕위계승의 진실은?

양녕이 폐위되고 충녕이 그 자리를 잇게 된 데 대해서는 양녕이 비행으로 폐위됐다는 설과 양녕이 스스로 양보했다는 설이 양립한다. 사진은 KBS 드라마 ‘대왕세종’의 한 장면.

양녕이 폐위되고 충녕이 그 자리를 잇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양립한다. 하나는 양녕이 비행을 저질러 폐위됐다는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찬 사서에 나오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세종에게 성덕이 있음을 알고 양녕이 왕위를 양보했다는 것인데, 이는 대부분 야사의 견해다.

‘정종실록’에 세종이 천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웃에 정사파라는 자가 사는데, 이름은 가야지(加也之)다. 그가 왔기에 부인(이방원의 부인 민씨)이 “새벽녘 꿈에, 내가 신교(新敎)의 옛집에 있다 보니, 태양이 공중에 있었는데, 아기 막동(莫同)이가 해 바퀴 가운데에 앉아 있었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라고 묻자 정사파가 판단하여, “공(公, 이방원)이 마땅히 왕이 되어 항상 이 아기를 안아줄 징조입니다”라고 말했다.(‘정종실록’ 2년 1월28일)

막동은 세종의 아이 때 이름인데, 모친 민씨의 꿈과 이웃 정사파의 해몽을 빌려 세종이 천명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정종실록’은 ‘태종실록’처럼 세종 때 편찬됐으니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야사는 양녕대군이 일부러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고 전한다. 영·정조 때에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자 미상의 ‘소대기년(昭代紀年)’도 그중 하나다. 1926년 강효석(姜斅錫)이 편찬한 ‘대동기문(大東奇聞)’도 ‘소대기년’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양녕대군 제(?)는 태종의 첫째아들로, 처음에 세자로 봉해졌는데 타고난 바탕이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젊어서부터 문장에 능했다. 그러나 세종에게 성인의 덕이 있는 것을 보고 거짓 미친 체하고 스스로 맘대로 행동하더니 18년 무술(戊戌, 1418)에 영상 유정현 등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제(?)가 덕을 잃었다 하며 합사(合辭)하여 세자를 폐하기를 청했다.(‘대동기문’)

‘세종이 성인의 덕이 있는 것을 보고 거짓 미친 체’해 양녕이 왕위를 양보했다는 것이다.

태종은 충녕을 세자로 삼고 드디어 제(?)를 폐해 광주(廣州)로 내보냈다. 이때부터 제는 그 행적을 숨기고 떨어진 옷을 걸친 채 발을 저는 나귀를 타고 산수(山水) 사이를 방랑하여 오랑캐 땅으로 가서 문신한 것과 같았으니 세상에서 일컫기를 태백(泰伯)의 지극한 덕(至德)이 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대동기문’)

양녕대군의 행위를 지극한 덕이란 뜻의 지덕(至德)이라고 극찬하는 대목이다. 지덕은 공자가 ‘논어’에서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장자 태백(泰伯)을 두고 “태백은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를 만하다. 세 번 천하를 양보했으나 백성들이 칭송함이 없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충녕이 나에게 속았다”

사마천의 ‘사기’ 주(周)본기에 따르면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장남 태백은 부왕의 뜻이 막내아들 계력(季歷)에게 있음을 알고 둘째 우중(虞仲)과 형만(荊蠻)으로 달아나서 문신을 하고 머리털을 짧게 잘라 왕위를 양보했다 한다. 양녕의 행위 역시 공자가 극찬한 태백의 지덕과 같다는 것이다.

조선 숙종 때에는 숭례문 밖 도저동에 양녕대군을 모시는 지덕사(至德祠)를 세워 그 덕을 기리기도 했다. 숙종 27년(1711) 양녕대군의 외후손 윤봉조(尹鳳朝)가 쓴 ‘행장(行狀)’도 양녕이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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