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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4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나라 잃은 설움보다 경작권 뺏긴 아픔이 더 컸다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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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이상촌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 농민은 변두리로 내쫓고, 그들이 일궈온 비옥한 토지는 일본인 이주민에게 불하했다. 동척에 반항하는 소작인의 권리를 빼앗아 ‘척식청년단’이니 ‘소작인 향상회’니 하는 어용단체 회원에게 넘겼다. 정든 고향 땅은 죄다 일본인 아니면 일본인 앞잡이의 손으로 넘어갔다. 나석주는 동척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자신과 가족, 조선 농민을 사지로 내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손에 폭탄 하나만 쥐어주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동척을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다.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1926년 12월28일 오후 2시. 중국옷을 입은 30대 중반의 사내가 황금정(지금의 을지로) 2정목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사옥(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웃옷은 때가 꼬질꼬질 묻었고, 불뚝 튀어나온 양쪽 호주머니가 도드라졌다. 왼쪽 옆구리에는 신문지로 둘둘 말아 싼 뭔가를 끼고 있었다. 조선 농지의 3분의 1을 소유·관리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에 볼일이라곤 있어 보이지 않는 초라한 행색이었다.

“뭐요? 당신.”

수위가 제지하자, 사내는 서툰 조선어로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나…리이영요우…만나러…왔어”

“뭐라고?”

“리이영요우!”

사내는 ‘리이영요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지만, 수위는 무슨 뜻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사내는 하다못해 종이에다 ‘李永祐’라고 적어 보여주었다.

“아, 이영우! 근데 이영우가 누구야?”

“여기…일해…리이영요우.”

“이보쇼. 동척 직원이라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없소. 그런 사람 없으니 썩 나가시오. 여기가 어디라고.”

사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서서 사옥 밖으로 나갔다. 세모를 앞둔 도심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폭탄 3용사와 폭탄기념일

오후 2시5분. 동척에서 쫓겨난 사내는 전찻길 남쪽으로 돌아 남대문통 조선식산은행 본점(지금의 외환은행 본점 자리)으로 들어갔다. 연말인데다 연휴 끝까지 겹쳐 은행 창구는 대만원이었다. 12월25일 크리스마스는 원래 공휴일이 아니었지만 다이쇼(大正) 일왕이 사망하는 바람에 26일까지 임시공휴일이었고 27일은 일요일이었다. 은행원들은 한꺼번에 몰려든 고객에 치여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위가 어지럽게 뒤엉킨 고객들의 줄을 정돈하느라 자리를 비워 중국옷을 입은 사내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정문을 통과했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대부할인계 창구에는 김병조, 도시마(登島亮), 이토(伊藤貞澄) 세 명의 직원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퉁, 탁. 둔탁한 물건이 창구 철책을 넘어 날아와 대부할인계 뒤쪽 벽면 기둥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김병조는 고객과 상담하느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도시마와 이토 역시 뭐가 날아왔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봐요. 뭘 던진 게요!”

창구 앞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아사히(朝日)양조 점원 나카무라(中村)가 중국옷 입은 사내를 가리키며 외쳤다. 사내는 아무 대꾸 없이 쏜살같이 은행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카무라의 고함을 듣고 수위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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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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