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판 빠삐용’, 베트남전 포로 박정환의 격투 인생

‘실전 태권도’로 생지옥 포로생활 버티고 미국 무술계, 뒷골목 평정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한국판 빠삐용’, 베트남전 포로 박정환의 격투 인생

2/10
1부 - 베트남 정글에서

‘한국판 빠삐용’, 베트남전 포로 박정환의 격투 인생

1964년 ROTC 복무 시절의 박정환씨.

1966년 서울 이태원에 있는 육군본부 태권도 도장. 태권도 5단인 박정환 소위와 4단인 모 중위와의 겨루기(대련)가 시작됐다. 베트남에 파견할 태권도교관을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왼발을 앞으로 내놓은 중위가 뒷발로 돌려차기 공격을 시도했다. 박 소위는 가슴팍으로 날아오는 상대의 오른발을 왼팔로 가볍게 잡은 후 오른 다리로 상대의 왼 다리를 감아 당겨 메쳤다. 중위는 뒤로 벌렁 넘어졌다.

일어난 중위는 옆차기에 이어 또다시 돌려차기로 공격해왔다. 박 소위는 손으로 그의 오른 다리를 낚아 잡고는 오른 무릎으로 그의 복부를 강타한 후 안은 채 번쩍 들어 마룻바닥에 메쳤다. 넘어지면서 박 소위의 도복을 잡은 상대가 주먹으로 그의 왼쪽 눈두덩을 후려쳤다.

다시 마주 섰다. 박 소위는 앞발인 오른발로 밀어 옆차기 하는 척하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360도 회전 옆차기로 상대의 복부를 가격했다. 뒤로 넘어진 상대는 누운 채 마룻바닥에 주욱 미끄러지더니 벽에 머리를 부딪힌 후 널브러졌다.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사관석에서 ‘그만’ 하는 구령이 떨어졌다. 병사 2명이 중위를 일으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월남군 7사단에서 태권도 교관

실기시험은 3단계로 진행됐다. 1차는 형(型), 2차는 겨루기, 3차는 격파시험이었다. 1, 2단계를 월등한 기량으로 통과한 박 소위는 마지막 격파시험에서도 최고의 솜씨를 선보였다. 차돌보다도 더 단단하다는 붉은 벽돌을 참가자 중 유일하게 깨뜨린 것.

박 소위와 겨루기를 했던 중위는 이날 오후 구두시험 차례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박 소위의 발차기에 장기가 파열된 것이다. 중위는 수술을 받고 6개월간 입원했다. 물론 베트남행은 포기해야 했다.

1967년 10월15일 박 소위를 포함한 7명의 태권도 교관이 미군 수송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교관단은 주월사령부 직속이었다. 채명신 사령관은 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월남 여자 조심해라. 월남 여자한테 장가갈 생각은 아예 말라. 허락하지 않는다”고 농담을 건넸다. 박씨는 베트남에 왜 갔을까.

“전쟁에 대한 호기심에다 경제적 목적이 있었지요. 물론 애국심도 있었지만요. 조국의 명령에 따라 누군가는 가서 싸워야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공산주의를 무찌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용병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가장 용맹하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박 소위가 베트남에서 받은 전투수당은 하루 4달러. 일제 카메라가 70원 하던 시절이었다. 이 돈은 한국 정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미국이 주는 것이었다. 장교 전투수당을 월급으로 치면 한국에서 받던 급여의 15~20배에 달했다. 파월장병은 한국을 떠날 때 1년치 급여를 미리 받았다. 미군이 받는 전투수당은 한국군의 10배가 넘었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박씨는 6남매의 맏이였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부친이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소년가장 노릇을 했다.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후 1966년 학도군사훈련단(ROTC·학생군사교육단의 전신) 소위로 임관할 당시 가족 모두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독립유공자인 조부도 그해에 사망해 그가 집안에서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솔직히 베트남 갈 때 슬펐습니다. 내가 부자라면 참전할까 싶었죠. 당시 막내동생이 일곱 살이었는데, ‘형아, 텔레비전 꼭 사와’라고 부탁했어요. 막내가 손을 흔드는데 눈물이 날까 싶어 손도 안 흔들어줬습니다.”

박 소위의 근무지는 월남군 7사단 신병훈련소 내에 있는 태권도 교육장이었다. 7사단은 메콩강 유역의 미토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도 사이공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박 소위의 임무는 7사단 예하 부대에서 차출된 월남군 장병들에게 6개월간 태권도를 가르쳐 그들이 부대로 복귀해 태권도를 보급하게 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인근에 있는 미 9사단 장병에게도 태권도를 가르쳤다.

2/10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목록 닫기

‘한국판 빠삐용’, 베트남전 포로 박정환의 격투 인생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