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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8

벌교 백만장자 서도현 참살 사건

돈 앞에 무너진 인륜, 도대체 돈이 뭐길래?

벌교 백만장자 서도현 참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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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백만장자 서도현 참살 사건

순천 본전통. 집안에서 괴변이 잇따라 발생하자 김회산은 벌교를 떠나 순천으로 이주한다.

1915년 7월11일, 장마가 끝물에 접어든 후텁지근한 일요일 저녁. 서도현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에 자리 잡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 안방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전라도에서 손꼽히는 부호가 된 서도현은 쉰 살 되던 해인 1909년에 고향 인재 육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우신학교(지금의 벌교초등학교)를 설립해 명망을 얻었다. 시집간 둘째딸 서소아가 오랜만에 친정에 들러 저녁식사 분위기는 여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

착하기만 한 아내

환하게 웃으며 딸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내 김회산을 보노라니, 서도현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회산은 40여 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은 고마운 아내였다. 아내는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한결같이 서도현을 믿고 따라주었다. 사재를 털어 우신학교를 세울 때도, 흉년이 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나눠줄 때도 아내는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푼이라도 더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큰 부호가 되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서도현에게도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을 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아우 서도길의 큰아들 서장인을 양자로 들였지만, 허약한 서장인은 어려서 죽었다. 다시 서도길의 둘째아들 서용인을 양자로 데려왔지만, 서용인은 기질이 허랑방탕하고 철이 없어 부모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서도현은 양자 하나로는 안심이 안 돼 두 명의 첩을 들였다. 첫 번째 첩은 서병원을 낳았고, 두 번째 첩은 임신 중이었다.

김회산은 속만 썩이는 양자 서용인은 물론 첩의 자식 서병원까지 친아들처럼 살뜰히 보살폈다. 서도현은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아내가 한없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저녁 밥상 앞에서 딸과 함께 웃고 떠드는 김회산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며 서도현은 앞으로라도 아내에게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자 서도현은 오랜만에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늙은 아내는 부끄러워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혔다. 서도현 내외는 이부자리에 누워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세월을 오순도순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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