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처음엔 같았다, 우릴 갈라 세운 건 조직과 ‘야마 뻥튀기’…”

  • 이혜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8-08-10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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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뉴월 초여름, 장마 속에서도 세 달간 계속된 촛불집회. 그 와중에 민심은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언론도 두 갈래로 갈라섰다. ‘동아’ ‘조선’ ‘중앙’으로 대변되는 보수언론과 ‘MBC’ ‘한겨레’ ‘경향’으로 대표되는 진보언론이 그들이다.
    • 과연 각각의 언론에 속한 기자들은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보수’와 ‘진보’의 멍에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자가 기자에게 물었다.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여러 사람이 똑같은 피사체를 놓고 각각 사진을 찍을 경우 그 사진은 모두 똑같은 느낌을 전달할까? 천양지차가 난다고 한다. 찍는 사람마다 앵글과 프레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찍어도 찍는 위치에 따라 피사체가 주는 느낌은 180도로 바뀐다. 어느 단면을 찍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이 되기도 한다.

    오뉴월 두 달 동안 광화문 일대를 달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촛불집회를 두고 한쪽은 시위대의 과격 폭력시위를, 다른 한쪽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부각시켰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서로의 보도 태도는 큰 차이를 보였다. 촛불 집회의 주요 동력이자 참가자였던 진보적 네티즌들은 전자에 속하는 신문을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이하 동·조·중)로 지목하고 이들에게 ‘보수언론’이란 낙인을 찍었다. 그리곤 불매운동과 광고중단 운동까지 벌였다.

    반면 그들은 후자에 속한 ‘MBC’,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이하 M·한·경)에 대해선 ‘진보언론’으로 추켜세우며 그들이야말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전하는 ‘참 언론’이라고 했다. 진보세력에 맞선 보수단체들은 정반대의 논리로 진보언론을 비난했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어느덧 시민세력의 ‘진보 대 보수’ 대결 양상은 언론에 그대로 이식됐다. ‘동·조·중’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과 ‘M·한·경’을 필두로 한 진보 언론은 서로 보도 태도나 논조가 상충되는데 그치지 않고, 사설이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동원해 서로를 공격했다.

    “위에서 인터뷰하지 말라 한다”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기자는 기사의 ‘야마’(핵심내용)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6월26일 시위대와 경찰이 심하게 충돌한 다음날 조간신문의 1면 톱 제목은 이들 언론사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보수 언론은 “공권력이 짓밟히고 있다.”(중앙), “비폭력으로 얻을 게 없다, 촛불 변질, 시위대 동아-조선 사옥 잇단 공격”(동아), “광화문은 한달 넘게 밤마다 무법천지, ‘폭력의 해방구’”(조선)라며 시위대를 비판한 반면, 진보 언론은 “국민 저항 확산”(경향), “고시 후폭풍 정부-촛불 충돌 확산”(한겨레)이라고 시위대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평면적인 보도를 했다.



    1면 사진도 차이가 많았다. 보수언론은 전경이 폭행당하는 모습, 새총을 든 시위대 등 공권력이 유린당하는 현장을 앵글에 많이 담았다. 반면 진보언론은 물대포를 맞는 시민과 비폭력적인 시위대의 행진 모습을 담았다. 진보 성향의 방송사 미디어 비판 프로그램은 이날 새벽의 시위 도중 손가락이 절단된 시민에 대한 보도를 한 곳은 진보언론 뿐이었다며 보수언론을 질타했다.

    여기서 이들 독자와 시청자는 큰 의문에 맞닥뜨린다. 한 신문사나 방송사에 소속된 기자만 수백 명, 촛불집회 현장 취재기자만 해도 적게 잡아도 20~30명이 넘는 상황에서, 어떻게 ‘동·조·중’와 ‘M·한·경’의 전체 기사가 이토록 무 자르듯 두 동강으로 갈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그들은 소속사가 같으면 논조도 통일하기로 ‘동맹’이라도 맺은 것일까? 그들은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 따라 ‘보수적’ 또는 ‘진보적’ 기자로 규정되는 현실에 불만은 없을까? 그들의 ‘실존적 고민’은 무엇일까.

    이러저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촛불집회 취재의 최전선에 나선 양측 진영 언론사 기자들을 찾아가 얘기를 들었다. 입사 5년차 안팎의 사회부 소속인 이들은 평소와 달리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는 건 쉽지 않았다. 기자들은 “위에서 타사 기자의 취재에 응하지 말라고 했다” “신동아도 동아일보 자매지인데 기사가 왜곡될지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서로 간에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언론의 대결 구도는 심각했다.

    물론 진보언론이나 언론사 노동조합 소속 기자가 사적으로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나 블로그에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적은 있었다. 5~6건 정도였는데 대부분 자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KBS 소속의 두 기자가 올린 아고라 게시판 글은 각각 1만2000건, 17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내용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KBS를 지키겠다고 모인데 대해 너무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진보 언론의 기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 기자는 “기자가 개인 자격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객관성이 흔들릴 수 있어 나 같으면 안 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쨌든 이런 기자들의 취재 거부 와중에도 어렵사리 입을 열어 준 기자가 10여 명 있었다. 모두 자신과 소속 회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동·조·중’을 비롯한 보수 언론(촛불집회 참가 네티즌의 시각을 기준으로) 소속 기자들은 ‘보수 언론’으로, ‘M·한·경’을 포함한 인터넷신문 등 진보성 언론 소속기자는 ‘진보 언론’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촛불집회에는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민이 대다수였지만 그렇지 않은 시민도 있었다.

    “동·조·중을 폐간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회사 기자들이 하나같이 소속사의 논조와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언론사의 보도 논조와 소속 기자 성향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모두 같은 논조의 기사를 생산하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대부분의 기자들이 동의하겠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 사이에도 의견차가 있게 마련인데, ‘말 많고’ ‘똑똑한’ 기자들 사이의 ‘논조 동맹’은 처음부터 불성립 명제다. ‘동·조·중’ 세 회사의 기자가 동맹을 맺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실제 촛불집회에서 이 세 회사가 내놓은 기사를 분석하면 큰 맥락의 스탠스는 비슷하지만 세부적 논조에는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의도적으로 이 세 언론을 하나로 묶으려고 한다. 공격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동·조·중 기자들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동·조·중 기자들을 폭행한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보도 내용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해주는 MBC,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을 선호한다. ‘동·조·중’에 대비해 ‘M·한·경’이란 신조어가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큰 틀에서 보면 ‘동·조·중’ 소속이건 ‘M·한·경’ 소속이건 취재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이긴 매 한가지다. 자신이 보고 듣고 확인한 것을 그대로 쓴다는 보도 원칙도 같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양대 매체의 논조가 갈리는 것일까. 혹, 일부 독자들은 양측 기자들은 입사할 때부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다. 보수매체의 한 기자는 “내 정치적 지향은 오히려 진보적이지만, 보수매체에 왔다. 취업 자체가 어려운데 뽑아준 데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되물은 뒤 “회사와 입장이 다른 기자도 많다. 그래서 ‘이건 아니지 않나’하면서 혼자서 고민하는 기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진보매체 기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K기자는 “기자가 개인 신념에 따라 선택하기에는 언론사 입사 환경이 좋지 않다. 초년 기자들끼리는 ‘운 좋으면 거기 가고, 아니면 다른 데 갈 수도 있고’라는 말이 우스개처럼 돌아다닌다”고 했다.

    또 다른 보수매체 P기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꼭 여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이 10%나 될까 싶다. 기자는 조직원이기 이전에 개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 조직에 들어가면서도 희망을 갖는다. 어찌됐든 자기 이름을 걸고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기자이니까.”

    한국언론재단 교육팀의 한 관계자는“언론사에 들어가기가 힘들어 현실적으로 자신의 성향에 맞춰가기 힘든 게 사실이다”고 했다. 진보매체의 한 기자는 “예전에는 특정 언론사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하고는 했는데, 요즘은 입사시험 합격한 곳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거기 안 가면 다른 곳 간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특정 언론사만 고집하는 경우는 극소수”라고 했다. 그는 “재수, 삼수할 때에는 언론사 가리지 않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김승수 교수도 “조선에 극우파가 합격하고, 한겨레에 학생운동가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자들은 시험 쳐서 걸리는 곳에 간다. 단지 걸리는 곳에 가서 변할 뿐이다”고 했다.

    “너 참 많이 변했다”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보수 매체는 시위대에게 폭행당하는 경찰을 강조했다.

    대학 때 시국 관련 집회에 많이 참석했던 보수매체의 K기자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촛불집회 얘기를 하다 다툴 뻔했다. 친구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해 무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는데 그 혼자만 재협상이 아닌 검역 강화와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이 대학원생, 고시생들이고 나는 직장인이라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며 “(보수매체) 기자이기에 앞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찾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보수매체의 N기자는 대학 때 한겨레신문를 읽었고, 스스로도 자신을 진보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기자가 된 뒤 일부러 자극적인 말과 팩트를 즐겨 쓰는 언론의 제작과정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만이 옳은 건 아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변절자로 취급했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기자들은 진보, 보수에 관계없이 “생각이 변했다는 이유로 변절자로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한 진보매체의 기자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사회인으로 생활하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보수매체 D기자는 오히려 “촛불정국 와중에 자신이 보수매체 기자라는 정체성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기자라는 정체성이 있었을 뿐이었죠. 정치, 경제 관련 기사나 사설이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더라도 내 기사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몇몇 정치적 사회단체가 적대적이었지만 자신의 진정성을 내세우면 문제없었습니다. 그러다 촛불집회 과정에 경찰의 폭행으로 피해를 본 학생을 취재하기 위해 몇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기고 어렵사리 통화가 성사됐는데 이야기도 하지 않고 ‘00일보는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신문사 논조에서 공권력을 비판하는 게 쉽지 않지만, 저는 이런 기사를 실어 우리 논조를 정화시키고 싶습니다’라고까지 하며 진심으로 호소했는데 답은 같았습니다. ‘그래도 00일보는 안 되겠습니다.’…”

    진보매체의 Y 기자는 이런 촛불 민심에 대해 두려움까지 느꼈다고 한다.

    “촛불집회 관련 취재를 할 때 우리는(진보 언론 기자들) 항상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녔죠. 기자증을 까 보이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항상 만나면 어디 기자인가를 묻고는 기자증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기자증을 보이면 뒤집어 보고, 위조한 게 아니냐고 묻고 명함도 달라고 해요. 기자증을 확인할 때면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고, 동·조·중 기자가 아니면 가버렸습니다. 기자증을 요구하는 건 시민의 정당한 권리죠. 저도 예전에 취재당하는 입장이었을 땐 기자의 소속이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궁금증 해소 차원이 아니라 낙인찍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매체 ‘낙인찍기’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의 동·조·중 취재 거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책회의는 기자회견장에 동·조·중 기자의 출입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취재거부 성명서도 냈다. 동·조·중 기자들은 대책회의에 대해 누구나 비판적이었다.

    “대책위 주축이 참여연대인데, 보수 언론들과도 다양한 활동을 했으면서 이번에 인터뷰 거부라는 액션을 취해 치졸해 보였습니다. (대책회의가) 잘한 선택은 아니죠. 취재원이 선을 그으면 그 선은 더 명확해지기 쉽거든요. 취재 자유 보장을 제1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기자단이 몇몇 다른 기자들이 소외되는 데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기자증 검사에 순순히 응하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습니다.”(보수매체 K,P,L기자)

    진보매체의 한 기자는 “애초부터 악의적으로 보도한 언론사의 책임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진보매체 기자는 “현장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게 되는데 (대책회의가 취재 거부를 하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은 거나 다름없다”며 “대책회의가 현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양측 매체의 기자들은 대부분 같은 언론사 기자들이 모두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쏟아 내는 이유를 보도기사 생산의 매커니즘에서 찾기도 했다. 우선 데스크의 현장 분위기 확대 또는 축소 해석이나 판단 오류의 가능성, 팩트의 취사 선택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위대와 경찰의 폭력성, 또는 ‘배후설’ 확대 보도였다. 진보매체 기자들은 경찰의 폭력성과 함께 일부 시위대의 폭력성을 지적하지 못한 점을 께름칙해 했고, 보수매체 기자는 ‘배후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나는 시위대 중에 개념 없이 구는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시위대의 인권을 알리는 것이 (데스크의 판단 상) 더 급선무였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습니다.”(진보매체 L기자)

    “촛불시위 초반에 매일 나갔는데 집회의 ‘배후’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좀 꺼림칙했습니다. 배후론을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본다면 어디까지나 의혹제기이니까 배후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도 있죠. 그러나 언론이 선동하는 단어로 쓴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다함께’ 뭐 이런 단체에서 유인물 나눠주면 시위대들이 ‘우린 정치세력이 아니니 이런 거 돌리지 말아 달라’고 했거든요.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데스크들은 현장 분위기에 감이 떨어지니까….”

    기자도 조직인인 이상 회사의 철학과 사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양대 매체 진영 모두 일선 기자들이 데스크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문제작 방식은 일선 기자들이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 계획안을 올리면(‘발제’하면), 이를 토대로 데스크들이 토론을 하고 그날 내보낼 기사를 결정한다.

    데스크는 지면계획이 확정되면 다시 현장 기자에게 보강 취재를 지시하거나 별도 취재 지시를 내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자들의 취재 내용은 자연스레 회사의 논조와 조율된다. 언론사 소속 기자 개개인의 생각은 제각각이지만, 해당 언론 기사가 통일성이 있는 건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조선스럽다’, ‘한겨레스럽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 기자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소속사 논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기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보수매체의 K기자는 “발제한 내용이 60% 정도라면 데스크에서 떨어진 내용은 40%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보수매체 기자는 “발제기사와 지시 기사 비율을 딱히 나누기는 어렵다”며 “자신이 발제한 내용 중에 데스크들이 어떤 점을 부각시켜 쓰라고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자신이 발제한 것과 하달 받는 것이 융합된 구조”라고 했다.

    데스크와 현장기자 간에 의견 교환이 이뤄지는 과정에 견해차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이번 촛불정국 취재 과정에서 실제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데스크와의 마찰로 부서를 이동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조직원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통용되는 논리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보수매체의 한 기자는 “외부에서 우리 언론사에 보수적이라는 굴레를 씌우니까 오히려 그에 부합한 기사를 쓴 측면이 있다”고 고백했다.

    ‘조직 동화’ ‘사회화’ ‘야마 뻥튀기’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시위대에게 폭행당한 기자(위) 사진 : 오마이뉴스, 전경에게 폭행당한 MBC카메라 기자(하) 사진: 한겨레21

    이런 보도 매커니즘에 더해 조직 문화도 논조 통일에 한몫을 한다. 매일 얼굴 맞대고 생활하다보면 그 조직의 가치를 내면화한 선배들에게 동화된다는 얘기다. 보수매체의 K기자는 “무의식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매일 저녁 (술 한 잔하며) 선배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 논리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사를 발제할 때 ‘이런 건 발제해도 선택이 안 되니까’ 하면서 스스로 검열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보수매체의 S기자는 “회사 가치관을 아니까 기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런 (자기검열한) 측면이 있다”고 공감했다. 그는 “진보든 보수든 기자 교육과정 등을 통해 사회화되면서 조직 원리에 순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소신’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보수매체 Z기자는 “나름대로 좀더 합리적인 기사를 쓰고 싶기 때문에 발제가 먹히지 않아도 재보완해서 계속 발제한다”고 했다.

    이런 ‘조직동화’와 ‘사회화’에 기자들의 ‘야마 뻥튀기(핵심 주제 확대 해석)’는 양대 매체 논조의 골을 키우는 공신 노릇을 한다. 특히 사건기자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인 것보다 특이한 사례와 소재를 찾아 확대해석(뻥튀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 진보매체의 P기자는 “기사 야마(핵심내용)와 맞지 않는 멘트는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보수매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K기자의 경우는 상황이 심각하다.

    “언론사에 들어와 보니 뉴스의 생성 과정을 알겠더라고요. 입맛에 맞는 사례가 환영받고, 그것들이 모여 여론이 되고…. 이러다 보면 사회의 간극이 벌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보수매체 C기자는 “왜곡보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언론에나 있다. 관점에 따라 보도를 할 뿐이다. 기사 전체를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도, 제목이 그렇게 자극적으로 뽑히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제목을 세게 뽑는 것은 언론의 속성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비난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수습을 갓 뗀 진보매체 C기자는 “만들어놓은 프레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한계를 느낀다”고까지 했다. 보수매체의 기자도 “기자가 된 이후 늘 프레임대로 취재해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진보매체 기자들은 이명박 시장 ‘검증’에 매달려 1면 톱을 썼어요. 개인적으로 우리 회사도 사람을 좀 더 투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회사는 전력투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지난해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과정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이름 도용 문제가 제기됐을 때는 달랐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배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데, 보수매체들은 총력전을 폈지요. 어떤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의 단서를 찾기 위해 취재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자들은 서로 다른 쪽 매체에 대해서도 ‘과도한 해석’, ‘뻥튀기’, ‘몰아가기’ 관행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보수매체 A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회사와 입장을 달리하지만 그렇다고 진보매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시위대 조지면 그들은 경찰 조지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프레임에 맞춰 보도방향을 잡아나가는언론과 그 언론의 속성을 아는 기자들. 이 때문에 기자들 중에는 자신의 조직을 비판하는 기자도 적지 않다. 보수매체 R기자의 말이다.

    “뉴라이트에서 나온 문건(촛불 배후설 제기 문건)을 그렇게 크게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요? 시위대가 북한의 사주를 받아서 움직인다는 내용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보고서가 그 전에 다른 상황 때 나왔던 것이어요. 재인용된 것을 크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보수매체 K기자는 “배후설이 있다고 의혹 제기를 할 수는 있다. 어디까지나 설이니까. 그러나 그 배후설을 위해 진보-보수 대결구도로 끌고 나가다 그들의 의중, 심정, 그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너무 진보-보수 대결로 나간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진보매체 기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언론이 관심 두지 않는 부분에 대해 우리가 기사를 쓴 점은 의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낡았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분명 우리 신문은 권위적인 정권에 대항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민주화 열망을 담아 조직됐습니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 익숙한 나머지 지금도 권위주의와 싸우듯 흥분해서 지면을 할애할 땐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이것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촛불집회 기사 외에) 다른 사안도 잘 챙기며 묵묵히 갔어야 하는데 정보가 너무 치우친 감이 있죠. 마치 촛불이 전부인 양 썼습니다.”(K기자)

    진보매체 기자 가운데 상당수는 “동·조·중이나 진보언론이나 (양 극단을 쓰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했다.

    “서로 너무 양극단을 쓰기 때문에 그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게 아닙니까?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가 하면, 촛불에 기대 지나치게 과대 해석하는 경우가 있고….”

    결국 이런 양측 매체의 극심한 대립은 촛불집회 과정의 폭력 양상으로 나타났다.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현장을 지키던 기자들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동아일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상자기사 참조)가 시위대에 폭행당하는 상황을 목격한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는 “특정신문사 기자라는 이유로 이런 수모를 당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보수는 매 맞고, 진보는 밥 얻어먹고

    진보매체 L기자는 “기자는 지켜보는 존재다. 유령과 같은 존재다. 끌려가거나 맞거나 하면 안 된다. 지켜보는 사람일 뿐인데 그 안에 개입된 것처럼 취급하면 언론의 기능이 약해지거나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거리로 나선 이들이 ‘보수매체 보도의 논조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행사한 폭력은 그 어떤 논리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라는 것.

    시위대의 보수매체 기자에 대한 폭행이 이어지면서 보수매체 기자들은 취재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폭행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취재원에게 소속사를 밝힐 수도 없었다. 결국 기자증이나 명함도 내밀지 않고, 기자가 아닌 척하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인 양 묻는 식으로 현장을 취재해야 했다.

    보수매체의 D기자는 “시위 초반에는 시민들의 코멘트를 듣는 것이 중요했지만, 나중에는 구호나 피켓으로 표출돼서 크게 들리는 구호 중심으로 스케치를 했다”고 고백했다.

    보수매체 기자들이 취재를 거부당하고 시위대와 경찰에 뭇매를 맞고 있을 즈음, 진보매체의 기자들은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자부심’을 키웠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있다.

    “다른 언론사가 접근 못하는데 우리는 할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금 자부심이 생겼지요.김밥을 주는 사람도 있고 ‘힘내세요’라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어서 고마웠지만 책임감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신뢰 받을 만한 언론인가, 이만큼의 신뢰를 받을만한가 반성도 됐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들었습니다.”

    “발언권이라도 줬더라면…”

    촛불시위대에 폭행당한 동아일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


    ‘동·조·중’ 기자들 VS ‘M·한·경’ 기자들
    촛불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격렬했던 6월26일 밤. 동아일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는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는 새문안교회 앞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를 취재하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동아일보 로고를 붙이지 않았다. 동·조·중 보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시위대가 취재 거부 차원을 넘어 취재를 방해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새벽 동아일보 사옥 앞에 오물을 버린 한 시민이 그를 알아봤다. “동아일보 기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변 기자가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여기 동아일보 기자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사람들이 “죽여라”고 외치며 발로 밟고 주먹질을 했다. 변 기자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눈에서 살기를 느꼈다. 몇 사람은 생수를 입에 넣은 뒤 그의 얼굴에 뱉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무리를 빠져나온 변 기자는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회사를 향해 달렸다. 그렇지만 시민 3명이 계속해서 따라와 끝까지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아 땅에 내동댕이쳤다. 결국 카메라는 박살이 났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는 “단순 폭행이 아니었다. 침을 뱉고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 사람을 질질 끌고. 나도 기자인데, 이거 아니다 싶어 말렸다. 기절한 상태인데도 ‘쇼하고 있네’라고 야유하면서 물 뿌리고.”

    결국 회사 앞에서 실신한 변 기자는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다시 회사에 복귀한 그에게 소감을 묻자 “뭐 하는 짓인가 싶다”며 “동아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를 동일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지금과 같은 ‘인민재판’은 위험하다”고 했다.

    변 기자는 그날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남자 서너 명만 모이면 덜덜 떨려 촛불집회 취재는 가능한 다른 기자에게 미루고 있다.

    “100명 중 95명이 평화시위자라면 5명 가량은 폭력시위자에요. 문제의 핵심은 ‘선동’입니다. 사람들이 선동에 의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누군가를 제압하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큰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도 “선동했던 그 시민이 일대일로 문제제기를 했더라면 자신의 의중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 시민이 일말의 발언권이라도 줬더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말한다.

    “시위 현장에 직접 서 있는 사람은 시위대와 경찰, 그리고 기자뿐입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와 이미지를 통해 현장을 간접 경험합니다. 그래서 모든 기자는 현장에서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자들을 폭력으로 내쫓기 시작하면 사건 현장은 한쪽 면만 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통제가 심한 북한과 중국도 여러 번 취재해봤지만, 카메라를 압수당하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당하고 보니 몸보다 마음이 훨씬 더 아픕니다”

    보수매체 기자라는 이유로 시위대에게 폭행당한 기자는 변 기자 외에도 조선일보 사진부 채승우 기자, 조선일보 이광회 인터넷뉴스 부장 등이 있다. 한편 경찰에 맞은 기자도 진보·보수매체에 관계없이 수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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