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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⑤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왜 내 밑에는 나 같은 놈 하나 없나”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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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점 바꾸기 능력은 네 살 때부터 생긴다고 한다. 문제는 네 살이 지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관점 바꾸기 능력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져 타인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삶은 재미있는가. 부하직원들과 대화하면서 관점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기는 한가. 아니면 매일같이 “왜 내 밑에는 나 같은 놈 하나 없나”만 중얼거리는가.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독일유학 시절에는 축구를 참 즐겨 봤다. 당시 차범근 감독이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었다. 요즘 박지성 선수가 각광받고 있지만 솔직히 당시의 차범근 선수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지금도 ‘차붐’ 하면 독일인들은 엄지를 치켜든다. 그리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슈넬(schnell)!” 빠르다는 이야기다. 진짜 빨랐다. 게다가 체격도 독일 선수에 비해 훨씬 커 보였다. 그가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은 마치 거인이 뛰는 것 같았다. 사이드라인에서 공을 몰고 달리면 쫓아오는 선수가 없었다. 다들 슬라이딩태클로 그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차범근 선수는 빨랐다.

그런데 너무 빨랐다. 그래서 몇 번이나 문제가 되는 경우를 봤다. 끝까지 너무 빨리 달려 그냥 골라인 아웃까지 해버리는 것이다. 좀 허무했다. 그러나 사이드라인을 지나 골라인을 지나도록 빠르게 달리는 차범근 선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유학생과 교민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아들인 차두리 선수도 자주 그런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분데스리가가 단지 차범근 선수 때문에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차범근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분데스리가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축구를 보여주는 방식이 달랐다. 동일한 상황을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로 찍어 보여줬기 때문이다.

남자가 축구를 좋아하는 건 그 안에 권력이 있기 때문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당시 차범근 선수는 정말이지 빨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일단 골인이 되면, 전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 높은 곳에서 찍은 장면으로 골 넣는 상황의 선수들 움직임을 자세하게 다시 보여준다. 그러면 전체 선수들의 움직임과 골 넣은 선수의 움직임이 비교되면서 내가 마치 신이 되어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는 다시 골대 뒤에서 골키퍼의 움직임과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선수의 움직임을 비춰준다. 골이 골대 안으로 들어오면 그물이 출렁거린다. 내 마음도 출렁거린다. 마치 내가 골을 놓친 골키퍼가 된 느낌이다. 그러고는 골을 넣은 선수가 기뻐하는 모습을 바퀴 달린 카메라로 쫓아가며 비춰준다. 어시스트한 선수와 함께 뒹구는 모습을 바로 위에서 비춰주기도 한다. 선수들은 이에 대비해 다양한 골 세리머니를 개발해 보여준다. 감독과 동료선수들이 기뻐하는 장면도 놓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관중의 반응도 빠지지 않는다. 골을 놓치면 아쉬워하고, 골을 넣으면 흥분하는 모습에 시청자는 실제 운동장에 있는 기분이 든다.

축구를 보는 남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패다. 그리고 누가 골을 넣는지도 관심사다. 그것만으로도 남자들은 충분히 흥분한다. 실제 남자들의 관심은 온통 권력관계에만 집중돼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도 서로 권력을 확인하는 행위다. 명함에 적힌 사회적 지위를 살피며 상호 권력관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슈퍼 주인도 사장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사장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젠 회장 명함이 없으면 제대로 대우받기 힘들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권력관계가 확인되면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구체적 행동원칙이 성립된다. 표정, 몸짓, 말투로 서로의 권력 서열에 따른 의례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랫사람이 이 원칙을 어길 경우, 이후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복이 뒤따르게 돼 있다.

명함으로 권력 서열이 확인되지 않으면 이 땅의 사내들은 잠시 당황스러워 한다. 권력관계가 없으면 관계도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서열은 정해지게 돼 있다. 대학학번, 고등학교 기수, 심지어는 군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며 얻게 되는 다양한 번호는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여자에 비해 남자가 훨씬 더 많은 각종 ‘서열 변인’을 가진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마지막에는 서로의 고향을 확인해가며 순서를 매기려고 한다. 남자에게 대부분의 중요한 관계는 권력관계다.

철없는 사내들이 마지막으로 권력 서열을 확인하는 장소는 술집이다. 들이켜는 폭탄주의 양에 따라 또 다른 서열이 정해진다. 권력이 아무리 높아도 이 폭탄주 잔에 따른 서열이 떨어지면 수컷의 서열에서 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와 마시는 폭탄주 잔의 양이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축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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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은 명함으로 권력 서열을 매긴다.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 권력 서열이 명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서열이 불공평하고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축구는 오직 실력에 의해 판가름 난다. 축구에서는 우연도 실력이다. 그래서 한국축구를 보여주는 방식은 오직 권력 서열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별다른 기교가 필요하지 않았다.

권력 서열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결정되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사회적 관계는 사뭇 다르다. 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서적 관계다.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마음이 통하는지가 여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 함께 깔깔거리며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한지가 권력의 유무보다 더 중요하다. 관계적 사고에 앞서는 여자들의 특성은 심리학에서도 자주 확인된다.

남녀의 세계관 차이는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남자는 길거리에서 웬만해선 남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다. 운전하다가 차를 세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다. 남자에게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권력관계에서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든 스스로 길을 찾아내려고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러한 남자의 행동을 이해 못한다. 단순히 길 물어보는 것이 뭐 그렇게 목숨 걸 일이냐는 거다.

이런 남자들이 열광하는 축구에 여자들이 무관심한 이유는 당연하다. 아이들처럼 공 하나 가지고 수십명이 몰려다니고, 고작 그물망에 차 넣는 놀이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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