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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마지막회

살인마 정기현의 연쇄 살인극

너무 늦은 깨달음…참된 인간 되자마자 형장 이슬로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살인마 정기현의 연쇄 살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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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정기현은 19세 되던 해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가산을 정리해 평양으로 이주했다. 얼마 안 되는 집안의 전답은 노름과 술로 탕진하고, 호구지책으로 넝마주이를 시작했다. 스무 살에 장가든 이후로는 아내 사랑이 끔찍했다. 부부 금실도 좋아 5년 만에 세 아이를 얻었다. 고물을 모아 번 돈으로 아내와 세 아들, 다섯 식구가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정기현은 가난하나마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갔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바르게 살겠다는 결심은 지독한 가난 앞에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살인마 정기현의 연쇄 살인극

동아일보 1929년 8월25일자.사진은 체포 당시 정기현의 모습.

“이봐, 양씨! 술 한잔 어때? 내가 한 턱 낼게.”

1929년 8월19일 늦은 오후, 넝마주이 정기현이 평양 교구정에서 고물상을 경영하는 양인성에게 찾아와 말했다. 정기현은 스물아홉 살로 양인성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다.

“아니, 정씨가 웬일이우? 술값을 다 낸다하고. 오늘 가마솥이라도 하나 건지셨소?”

양인성은 평소 손버릇이 나쁜 정기현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공짜 술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 고물상 문을 닫아걸고 정기현을 따라나섰다. 고물상과 넝마주이를 하는 처지에 요리점이나 카페에 갈 형편은 못 되고 막걸리를 사들고 개천가에 나가 마셨다.

“돈 걱정일랑 말고 양껏 마시라고. 술이 모자라면 또 사오면 되니까.”

양인성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인 정기현이 돈 걱정 말라고 허세를 부리는 게 같잖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오랫동안 술에 주린 위장을 채웠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술판은 밤 10시가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겁지겁 술잔을 비우다보니 양인성은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질펀하게 취했다. 양인성이 인사불성이 되자 정기현은 돌연 낯빛을 바꾸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놈이 내가 자전거 도둑이라고 소문내고 다닌다지?”

양인성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술기운이 확 달아났지만, 알코올에 마비된 몸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얼마 전 정기현은 넝마주이를 다니다가 자전거를 훔쳐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당겨 쓴 적이 있었다. 전당포 주인은 그처럼 깨끗하고 훌륭한 자전거가 버린 물건일 리 없다며 정기현이 절도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전당포 주인은 정기현이 주어온 고물을 처리하는 고물상 주인 양인성에게 그 사실을 일러주었다. 양인성은 고물상에 드나드는 넝마주이들에게 버린 물건을 주어야지 정기현처럼 남의 물건을 훔쳐 욕심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정기현은 그 일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이봐, 정씨 오해하지 말라고. 내가 소문낸 게 아니라 나도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뿐…… 으악!”

양인성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예리한 금속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분노가 실린 정기현의 단도가 양인성의 온몸을 마구 난자했다. 생전 처음 사람 몸에 칼을 대다 보니 칼질이 서툴러 정기현도 손가락에 깊은 자상(刺傷)을 입었다. 양인성의 숨이 멎자 정기현은 시체를 그 자리에 내버려두고 피가 흥건히 묻은 단도는 개천에 던져버렸다. 옷자락을 찢어 다친 손을 동여맨 후 범행 현장을 빠져나왔다. 술김에 난생처음 살인까지 하고 보니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고물상 주인에 이어 순사까지

정기현은 1901년 평안남도 강서군 성암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살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서당에서 2년 동안 글을 읽은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성암공립보통학교 소사(小使·사환)를 시작으로, 성암면사무소와 성암주재소에서 소사로 일했다. 학교와 관청에서 소사로 일하다 보니 학력에 비해 일본어에 능숙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정기현은 가산을 정리해 평양으로 이주했다. 얼마 안 되는 집안의 전답은 노름과 술로 탕진하고, 호구지책으로 넝마주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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