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모두 잘 하고 있습니까?”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입력2008-12-03 1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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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카섹스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잡지 칼럼을 복사해서 회사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다음 장은 ‘섹스 때문에 미치겠네’ ‘전희,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동상이몽’ ‘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첫 섹스의 비용’ 등등의 제목을 단 칼럼들로 이어져 있다. 그게 파리 잡는 끈끈이 혹은 쥐덫에 올려진 치즈가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백만 가지 잡동사니와 자료들이 쌓인 자리를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들이 해상도 떨어지는 흑백 복사본의 글씨는 100m 밖에서 알아봤다. 실제로 ‘섹’ ‘스’라는 문자와 ‘s’ ‘e’ ‘x’라는 알파벳은 언제 어디서나 눈에 확확 꽂힌다.

    “요즘 인기 있는 섹스칼럼니스트들이 쓴 칼럼을 출력했어요.”

    나의 대답에 누군가는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그렇군요. 도움은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섹스칼럼이란 섹스칼럼을 모조리 찾아내 차곡차곡 정리하고 숙독하는 것을 나의 취미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섹스 칼럼은 영화 칼럼이나 미술평과 다르다. 누구에게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신만의 경험을 갖고 있고, 칼럼니스트 못지않게 날카로운 기준도 갖고 있지만, 환한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이야기하거나 사무실 책상에 떡하니 올려놓을 만한 건 아닌 것이다.

    1920~30년대 낭만적 연애가 숭배되고, 놀랄 만큼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면면을 보였던 아주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섹스는 망측한 얘기거나 성희롱인지 의심해봐야 할 것, 기껏해야 ‘19금 성인문화’였던 것이다.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아레나 이기원, 에스콰이어 신동헌, ‘악녀클럽’ 김유정, GQ의 이우성 섹스칼럼니스트(왼쪽부터).

    우리나라에서 몸과 성이란 용어를 통해 섹스(이 말이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를 의미하든, 성교를 의미하든)가 시사지의 커버스토리가 되고, 미술관에 들어오고, 급기야 공중파 TV프로그램에도 등장한 건 1990년대 중반을 넘어였다. 그 이론적 기반 혹은 명분은 다양한 페미니즘 이론의 유행이었다.

    그리하여 1940년대에 미국인 1만8000명의 섹스 사례를 조사한 킨제이 리포트가 재발견되었다.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라는 1960년대의 그 유명한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의 주장에서부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과 성(性)정치학을 상징하는 ‘퀴어’까지 온갖 이론과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뒤섞인 가운데, 섹스를 둘러싼 금기들이 무너졌다. 클리토리스와 질, 오르가슴이란 단어들이 해금됐다. 학자들은 그리스의 유적지처럼 클리토리스와 G스폿의 위치를 설명했다.

    일단 시작하면 누가 더 세게 하나 경쟁하는 건 음담패설 오가는 술자리나, 대박이 필요한 매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터부의 벽은 저항 한 번 없이 허망하게 깎여나갔다. 간통죄가 엄존하면서 스와핑을 ‘트렌드’라고 말하는 성적 양극화 사회가 됐다.

    몸과 성에 대한 담론이 홍수를 이루면서 오해도 만발했지만, 변화는 분명했다. 섹스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제 누군가 ‘섹스’라고 말할 때 화들짝 놀라지 않게 됐고, 어느 시인이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해도 ‘포르노’라고 말하는 순진한 사람도, 이불 속에서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도록 들여다보는 남자도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된 섹스

    매일 잠자고 일어나 된장찌개를 숟가락으로 떠먹고 화장실에 가는 일상이 지루하듯 섹스도 다소 나른한 채 ‘그게 다 그 거인’ 어떤 것이 되었다.

    바로 그때 섹스칼럼니스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대개 여성 사이트나 남성 라이프스타일지에서 활동하면서, ‘부부 사이 대화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굳이 고민이 된다면 수술하시라’는 칼럼을 기고하는 비뇨기과 의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유의 글들을 선보였다. 요는, 글쓴이 자신의 경험담을 ‘리얼’하고 ‘프로이트적’으로 쓴다는 데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남성을 위한 섹스칼럼에 열혈 여성독자가 꽤 많다는 사실.

    여성인 모 패션 브랜드의 광고담당자는 “섹스칼럼을 보면 남자들끼리 모여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더라”며 “타깃 독자의 수준, 나이도 가늠할 수 있다. 섹스 칼럼의 인기도와 판매율이 비례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기야 어떤 남자 친구와 남편이 상대에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하니까 그다지 나쁘진 않네”(이우성, 남성지 GQ 에디터)라고 속삭일 수 있으며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난 현대 여성들이 남자에게 펠라치오를 해주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싶어하지 않는”(이기원, 아레나 에디터)거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 있을까.

    섹스 칼럼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섹스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를 떠올리면 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말이다. 자신의 경험은 물론이고, 친구들의 허랑방탕한 밤(때론 낮과 아침) 생활을 가감없이 신문에 써버린다. 그런데도 친구들로부터 ‘나쁜 년’이라고 욕 한 번 먹지 않는다. 섹스 파트너들조차 ‘은밀한’ 행위들을 까발려서 원고료 받는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뉴욕에서 캐리 브래드쇼 혹은 섹스칼럼니스트는 사회적 명사다. 섹스칼럼니스트가 하는 일이라곤 섹스와 그걸 글로 옮기는 일뿐인데 늘 1000달러가 넘는 럭셔리 하이힐을 쇼핑한다.

    섹스칼럼니스트들에게 수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섹스칼럼니스트들은 모든 단계의 ‘관계’(흔히 ‘릴레이션십’이라고 하는 것)에서 정말로 그처럼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구사하느냐는 것이다. 혹은, 정말 ‘잘’ 하기 때문에 비의(秘儀)의 오디션을 거쳐 섹스칼럼니스트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이우성 기자의 ‘소설’ 같은 GQ 칼럼.

    그들의 칼럼에 묘사된 카섹스와 풍차돌리기, 워터스포츠, 늘씬한 외국 여인들과의 원나잇스탠드, 아찔한 체취들, 옛날 남자, 여행지에서 만난 여자, 지금 여자 A, B, C, 친구의 남자친구, 결혼할 여자 등등이 현실의 삶에도 존재하는 걸까?

    만약 이 모든 아름답고도 음란한 섹스가 허구라면 왜 개인의 경험인 척하는 걸까. 반대로 그것이 진실하고 내밀한 ‘나’의 경험이라면 왜 공개하는 것일까. 새로 나온 차를 1박2일 타보고 쓰는 시승기 ‘자동차칼럼’과 ‘섹스칼럼’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섹스칼럼니스트라는 21세기 유망 신직종에 끌리는 사람이 어찌 하나뿐일까. 문학수첩문학상 수상작가인 김경순씨가 최근 펴낸 소설 ‘21’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섹스칼럼니스트다. 경험이 부족해 섹스 칼럼을 쓰기 어려울 것 같다고 고사하는 나에게 편집장은 누군 경험 가지고 쓰나? 그럼 뭐 조앤 롤링은 마법사라서 해리포터 썼나? 하고 타일렀다.’

    이 소설은 16회분의 섹스칼럼처럼 읽히는데, ‘산업과도시’(‘산업 앤 더 시티’인 것이다)라는 주간신문에 섹스칼럼을 기고하는 주인공은 ‘일천한 경험의 한계’ 때문에 표절 시비와 악플에 시달리며 사는 보통의 서른네 살 여성이다.

    아마도 ‘섹스 앤 더 시티’와 ‘21’의 사이 어딘가에 한국의 섹스칼럼니스트들이 있을 것이다. 수소문 끝에, 문제적 칼럼을 쓰고 있다고 알려진 1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 섹스칼럼니스트를 섭외했다. 그들과 대면하기 전, 칼럼을 찾아 읽으면서 ‘그들은 마초이즘에 중독돼 냉혈동물 같은 눈빛을 가졌으리라’ ‘그녀는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사랑 지상주의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의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전의’에 불붙여 화염병처럼 던지려고 했던 인사말을 잊고 말았다.

    사회(나) : 약속 장소를 신촌으로 제안했을 때 모든 참석자가 흔쾌히 동의해서 길을 잘 아는 줄 알았다. 심지어 좋아한다고도 생각했다. 모두들 헤매느라 고생하셨다. 이렇게 성품과 외모 모두 착한 남자들과 여자일 줄 몰랐다.

    에스콰이어 신동헌 기자(이하 에스콰이어) : 섹스 칼럼 전성시대인가 보다. 모 라이선스 여성지에서도 인터뷰를 원해 며칠 전 다녀왔다.

    사회 : 간단한 인사말과 각오를 부탁한다.

    악녀클럽 김유정(이하 악녀) : 난 즐거울 ‘락’자 붙인 밴드 악녀클럽의 멤버이고, 초등학생 아이의 엄마다. ‘악녀는 남자를 쇼핑한다’는 책을 냈고, 2001년 무렵부터 에스콰이어 등에 섹스칼럼을 쓰고 있다. 악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가수까지 하게 됐다.

    아레나 이기원 기자(이하 아레나) : 자랑할 만한 섹스 경험도 없고 칼럼을 원한 것도 아닌데, 결혼한 사람들에게 밀려서 하고 있다. 매체마다 섹스칼럼 스타일이 다른데 아레나는 발로 뛰고 쓴 칼럼을 원한다.

    악녀 : 발로 뛰는 섹스 칼럼이라니. 편집장이 재능을 알아본 거 아닌가?

    아레나 : 화제가 된 내한두 개의 섹스 칼럼 때문에 편집장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번 달 섹스는 별로지만 다음달엔 잘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거다.

    아레나 : 난 이전 직장인 스포츠신문에서 처음 섹스칼럼을 썼다. 르포도 쓰고.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졌을 때 전담팀장이었다. 남성지로 옮긴 뒤 자동차 기사를 전공하며 섹스 칼럼을 다시 맡았다. 자동차는 아무리 공들여 써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는데 섹스 칼럼은 인기순위 5위권 밖으로 밀리지 않는다. 특히 여성 독자가 많다. 난 기혼자다. 섹스 칼럼이 한국에선 결혼해야 쓸 수 있는 거 아니냐.

    GQ 이우성 기자(이하 지큐) : 기자들 중 유부남 빼고, 고정적으로 관계를 갖는 여자친구가 없는 남자들을 빼고 나니 내가 남은 거다. 얼마 전 새로 경력기자가 들어와 넘기려고 하는데 여의치 않다.

    사회 : GQ에서 이우성 기자의 ‘절필 선언’을 읽었다. ‘섹스 칼럼 쓰느라 속상하게 한 사람이 많고 에디터 자신도 그랬다’고 했다. 이게 속 많이 상하는 일인가?

    지큐 : 전에 좋아하던 여자의 엄마가 내 글을 보고 사귀지 말라고 했다더라. 그래서 헤어졌다. 날 비난하는 사람, 많다. 독자엽서도 오고 전화도 해서 여자들에게 나쁜 짓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으른다. 리플 중에 ‘이우성의 글을 보고 살인 충동을 느꼈다’는 것도 있다.

    아레나 : 뭐야, 여자를 묶었냐?(일본 스타일의 ‘본디지’)

    사회 : 이러다 통편집되는 수가 있다.

    지큐 : 그런 거 아니다. 복사집 직원이 마음에 들어 사귀었는데 두 번째 만난 날 잤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실제로 싫어졌다.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 이야기를 남자의 야비하고 비열한 측면을 아주 강조해서 쓴 거다. 나를 야비한 남성으로 쓰면 욕도 먹지만 엄청나게 화제도 된다.

    사회 : 지큐 이우성 기자의 글의 특징은 자신의 섹스를 ‘하드보일드’하게, 피도 눈물도 없이 객관적으로 쓴다는 거다. 스스로를 나쁜 남자, 재수 없는 마초로 묘사한다. ‘첫 섹스의 비용’이란 칼럼엔 여자에게 저녁 사주고 영화본 걸 계산하면서 “‘이거 먹고 모텔에 가자고 하겠네’라고 (여자가) 눈치 챘다면 밥값 정도는 알아서 내라”고 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진득한 토끼보단 확실히 안아줄 수 있는 마초를 더 좋아한다”고도 썼더라.

    아레나 : 마조히즘도 정상은 아니다.

    지큐 : 내가 글 속에서 마초가 되는 건 일종의 역할극이다. 도덕적 정당성 없이 섹스 칼럼을 쓸 수 있을까? 나에게 글 쓰는 책임감이란 이런 거다. 내가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남자나 나에게 마초라고 하는 남자들은 최소한 마초가 되지 않을 거 아닌가. 섹스에 대한 잡문을 쓰더라도 삶에 관한 진지한 사색을 담으려고 한다.

    사회 : ‘일’로 섹스한다면 다른 남자들이 부러워할 것 같은데?

    지큐 : 말로만 부러워하는 척한다. 진짜 ‘말로만’이다. 전에 특급호텔과 여관에서 하는 섹스의 차이에 대해 쓸 때 회사에서 호텔비를 지원해줬는데 아주 예외적이었고, 내가 쓰기 전의 일이었다.

    악녀 :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섹스를 이야기하려면 의학박사여야 한다. 아니면 화냥년 소리를 듣는다. 난 아이 때부터 섹스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엄마가 산부인과 의사라서 기어 다닐 때부터 도화지에 여자를 그리고 그 아래 빨갛게 피를 그리곤 했다. 학교 다닐 땐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또 성에 대해 쓰고 있는 거다. 2000년쯤 엄마 병원 홈페이지에 중학생들에게 콘돔을 주자는 내용의 글을 썼다가 학부모들이 병원 앞에서 데모하는 바람에 고생했다. 여중생들이 임신해서 병원에 오는 현실이 답답해 썼는데도 말이다.

    사회 : 사랑하는 여자를 대실요금 1만5000원짜리 모텔로 데려가는 남자와는 섹스하지 말라는 김유정 작가의 칼럼을 봤다. 젊은 연인들이 별 다섯 개 호텔 스위트룸에 갈 수도 없고, 그게 ‘현실’ 아닌가.

    악녀 : 젊은 남자 후배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쓴 거였다. 물론 나도 어려서 해본 일인데, 나이가 들수록 섹스에서 감정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난달에 ‘가을비는 남자의 그리움부터 적신다’라는 칼럼을 썼다. 남자의 감성을 쓴 건데 편집장이 ‘섹스 넣어’ 다시 써달라고 했다. 싫다고 했다. 반응이 엄청 좋았다. 그러니, 1만5000원짜리로 빨리 한번 하고 나오자, 이건 아닌 것 같은 거다.

    사회 : 남성 칼럼니스트들은 섹스의 ‘코스트’를 계산한다. 그게 대부분 남자의 심리인가?

    지큐 : 내가 해봤으니, 다른 사람들도 해봤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레나 : 그렇다. 계산한다. 여자도 섹스를 원하면서, 꼭 어느 단계까진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이게 하고, 매번 다음 단계까지 또 코스트를 높이는 거다. 짜증나는 일이다.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에스콰이어’ 신동헌 기자의 칼럼. 그는 자동차 기사도 쓰고 있다.

    지큐 : 보통의 남자라면 작업에 들어가는 여자가 한 명은 아니다. 다양한 생활을 즐기듯, 여러 여자를 사귀게 되니까, 경제적 지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악녀 : 여자들의 가장 흔한 환상 중 하나가 사랑하고, 차 마시고, 손잡으면서 섹스는 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갖는 거다. 그런 여자들에게 꿈 깨라고 말한다. 또 신사임당 콤플렉스도 있다. 온갖 거 다 하고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라며 섹스만 거부하는 거다.

    사회 : 섹스 칼럼을 쓰면서 직접 경험한 것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다. 나도 궁금했다.

    지큐 : 지큐 섹스칼럼은 기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체험을 근거로 해 쓰는 거다. 그래서 그마다의 차이를 기대한다. 나는 정서적인 데 초점을 두고 쓴다. 스토리가 있어서 경쾌하게 읽히는 짧은 콩트, 소설 같은 글이다.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아레나’ 이기원 기자가 꼽은 ‘나의 베스트 섹스 칼럼’

    사회 : 이런 글이 있다. ‘6년 전 헤어진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섹스 기사의 여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잠깐 만나 세 번 관계를 가진 여자한테도 전화를 받았다. 화창한 가을 하늘 오후 순대국을 먹다가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을 듣는 남자의 기분을 누가 알아줄까.’

    지큐 : 전에 사귄 여자들이 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체형, 장소, 작은 습관들, 말투를 사실적으로 쓰기 때문인데 그게 하나가 아니라 조각조각 콜라주로 들어가는 거다.

    아레나 : 그게 더 여자들을 화나게 만들었을 거다. 난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체험은 쓰지 않는다. 지큐가 그렇게 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것도 있다(하하). 예를 들면 이미지클럽에 다녀와서 체험기를 쓰는 거다.

    사회 : 결과적으로 그런 점 때문에 아레나 섹스칼럼에서 좀 센, 마초의 냄새가 난다. 예를 들면 아레나의 ‘특별법 언저리에서 사정하다’ 같은 칼럼이다. 안마시술소 등을 인터넷 채팅이라는 방법을 통해 간접 체험하게 하는 글 말이다.

    아레나 : 그건 내가 쓴 건 아니다. 성매매 같은 건 현재 남성 라이프스타일 지들이 다루지 않는 아이템이다. 그래서 어쩌다 편법이 나오긴 한다. 내가 섹스 칼럼 맡을 때 결심한 건 체험을 근거로 한 것만 쓰겠다는 거다. 허무맹랑한 내용이 워낙 많으니까. 하지만 체험은 에디터로서 하는 거다. 내 글에 내 과거를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현재의 여자친구가 고통스러워한다면, 그런 걸 회사에서 요구하면 사표 쓸 거다.

    아레나 : 신차 나오듯 계속 새로운 섹스가 나오는 건 아니어서, 딜도나 바이브레이터 체험기 같은 걸 쓰거나 포르노 배우와의 인터뷰 기사 같은 걸 쓰기도 한다. 지난번엔 자동차 화보를 찍는데 카섹스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고 나니 카섹스를 권장하는 거 같아서 카섹스를 하지 말자고 썼다. 차 안에서 끝까지 가는 건 추접스럽지 않나?

    악녀 : 나도 카섹스엔 반대다.

    아레나 : 나의 최고의 섹스 경험은 자동차에서였다.

    악녀 : 섹스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주관적이라는 거다.

    아레나 : 어떤 섹스 기사들을 보면 ‘정답’을 주려고 한다. 남자들이 신음소리를 좋아한다 아니다, 어디를 자극하면 좋아한다 아니다 이런 글들 말이다. 여자들이 남성지의 섹스칼럼을 읽으면 ‘답’을 알게 된다고 착각한다.

    지큐 : 여성들이 무척 대담한 섹스 기사를 쓴다.

    아레나 : 새로운 섹스 기사라는 건 무의미하다. 인터넷에 섹스를 다루는콘텐츠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누구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레나 : 예전의 섹스 칼럼, 즉 ‘야한 글’이 독자가 ‘하악하악’ 하기를 목적으로 했다면, 현재의 섹스 칼럼은 자동차나 인테리어, 맛집 칼럼과 똑같다. 요즘은 스리섬도 동영상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누가 글을 읽으며 성적 흥분을 느끼겠는가.

    사회 : 섹스가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건가?

    아레나 : 그렇다. 섹스가 라이프스타일의 한 측면이란 걸 섹스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거다. 새로운 레스토랑 기사를 보면 가서 먹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런데 아직도 정상위로 사정하면 끝인 남성이 너무나 많다. 그건 여성들 보면 안다. 뒤집으면 안 뒤집히려 하고, 오럴에 거부감 보이는 여성이 많다. 그녀가 섹스한 남자들이 그만큼 다양하지 않고 똑같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본디지나 바이브레이터나 딜도를 이용하면 재미있다는 거다.

    사회 : 패션 광고들이 일종의 환상인 것처럼, 섹스 칼럼도 환상을 주는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은 잘생기고 섹스에 대해 전지전능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고, 여자 주인공은 칠등신 글래머에 ‘호피무늬’ 속옷을 입고 다니는 거다.

    악녀 : 드라마에 재벌과 가난한 여자가 나와야 인기 있는 것과 똑같다.

    지큐 :내 경험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와 섹스하지 않으니까, 글 속에서 나와 섹스하는 여자는 다 예쁠 수밖에. 여자 많이 만나다 보면 호피나 얼룩말 무늬 속옷 입은 여자도 있다.

    아레나 : 남성지에 국산자동차가 드문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이 아니라 ‘이상’인 거다. 남성 라이프스타일지를 보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고, 뭘 타든 간에 ‘폼’이 필요한 거다. 이런 식의 섹스만 있지는 않을 텐데, 그런 고민이 없진 않다.

    악녀 : 예전엔 남녀가 서로를 선택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였다. 직업, 성격, 가족, 외모, 학벌.그런데 요즘 여자들은 ‘그 남자 돈 많니?’이고 남자들은 ‘그 여자 예뻐?’ 하나다. 전에 ‘압구정 여자와 섹스하는 법’이란 글을 썼다. 예쁜 여자와 섹스하고 싶다면 술 사먹을 돈 아껴서 외제차 사라고 썼다. 요지는 압구정 여자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섹스하려는 놈이 멍청하다는 건데,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네가 뭔데’와 ‘너의 에미애비’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만 쓴 편지도 받았다.

    사회 : 섹스 칼럼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섹스 이전과 이후가 없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없고, 감정적인 갈등이 없어서다.

    지큐 : 난 섹스의 한 단면을 쓰는 거다. 그래서 그때 왜 손을 잡지 않았지, 왜 안지 않았지, 이런 걸 돌아보는 거다. 그게 없다면 얼마나 소모적이겠나. 남자들이 서로의 관계를 곱씹게 해야 한다. 좀 촌스러울 수 있지만 남자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아레나 :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칼럼의 결론이 ‘착하게 살자’로 가기도 한다. 세상에 해서 안 되는 섹스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섹스 칼럼에도 금기가 있다. 바로 불륜, 성매매 같은 거다.

    아레나 : 요즘 남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섹스 유형은 독자가 원하지 않는다.

    아레나 : 간통죄나 특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남녀관계를 법정으로 가져가고,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불륜은 폼이 안 나는 섹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책 표지에 반라 여자사진이 실리면 판매량이 뚝 떨어진다. 조지 클루니나 브래드 피트가 슈트 입고 나오면 제일 잘 팔린다. 섹스도 ‘나’의 삶을 즐겁게 하는 한도에서만 읽고 싶어하는 게 요즘 남자들이다.

    사회 :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 처벌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냈다. 섹스칼럼니스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지큐 : 나와 관계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법으로 막을 일이냐는 정도다.

    아레나 : 사람들 의식 안에서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법이다. 위자료를 주고받기 위한 핑계 정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악녀 : 나도 결혼했지만 평생 한 남자와만 섹스하고 살 자신 있느냐고 물어보면 ‘노’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 있나?

    아레나 : 남성지 독자들에게 관심 없는 주제다. 어떤 남성지도 다루지 않았다.

    아레나 : 스포츠신문 시장이 사라지면서 남성지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는데, 그건 고급한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남자가 많아졌단 얘기다.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대개 40대가 넘었다. 돈 좀 있는 사람은 요트 타고. 남자들이 자기 꾸미고 즐기는 데 돈을 쓴다. 섹스칼럼니스트들이 난봉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섹스인데, 자기들은 숨기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내놓고 있는 거다. 라이프스타일이 변하고 있다는 것과 연결지어 이해하면 된다.

    사회 : 독자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도 이런 뜻을 아는지?

    지큐 : 내가 섹스 칼럼을 쓰는 걸 아는 여성들이 ‘저 자가 날 보고도 칼럼에 쓴 것처럼 별의별 생각을 다하겠지’라는 시선으로 날 볼 때가 있다는 건 안다.

    아레나 : 나도 칼럼에서 ‘첫사랑인 여자를 룸살롱에서 만났다’고 쓴 적이 있는데, 여직원이 또 다른 여직원에게 그 사람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칼럼에 쓸 수 있느냐고 욕하는 걸 들었다. 나도 그녀를 예전처럼 대하지 못한다.

    아레나 : 반대로 섹스 칼럼을 읽고 환상을 갖고 날 대하는 여성을 만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여성이 어느 날 내게 와서 ‘내 성생활을 들여다본 것 같은데 왜 내게 말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지큐 : 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섹스 칼럼을 쓰기 때문이야.’ 나와 아는 여성들이 이거 다음 칼럼에 쓸 거냐, 이렇게 하는 거 나오냐고 물어보는데, 그게 그런 의미일까.

    인기 섹스칼럼니스트 4인이 말하는 ‘사실과 거짓말’

    ‘악녀클럽’ 김유정 작가의 칼럼. ‘에스콰이어’ 게재.

    아레나 : 예전에 여성 칼럼니스트의 외고를 담당했을 때 그녀가 자신의 칼럼에 ‘거래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남자를 자빠뜨리고 말겠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남자가 바로 나였는데 외모 묘사가 상세해서 회사에서 난리가 났었다. 내가 그 대상이 되니까 무섭더라.

    악녀 : 여자가 대상을 정해놓으면 더 집요하다.

    아레나 : 1978, 79년 출생을 기준으로 섹스에 대해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진 세대가 탄생한 것 같다. 스물아홉이 안 된 세대인데, 섹스에 대해 아주 쿨하다. 그래서 사회에서 이들과 경쟁하는 34~35세들이 이들의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한다.

    아레나 : 나도 그런 차이를 느낀다. 운동권의 자장에서 자유로워졌달까, 정치에 청춘을 저당잡혔다가 되찾은 최초 세대란 생각이 들더라.

    (비슷한 ‘세대 성담론’이 김경순의 소설 ‘21’에도 나온다. ‘21세기 최첨단 진보 여성임을 자처하는 (친구) 수진조차…(중략) 80년대생들이 보상 없이 오로지 섹스 자체를 즐긴다는 풍문을 전해들을 때면 일찍 태어나 DNA 희석이 덜된 미개인인 것에 분노했다. 우리야말로 성에 있어서 낀 세대다. 성 아노미 세대다. 60년대생의 순응적인 스타일도 아니고 80년대생처럼 도전적이며 자유롭지도 않다. 70년대생은 마음은 자유롭지만 행동은 기존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80년대생들을 붙잡고 물어보니, 대학 때 IMF로 정치집회는 물론 학내외 활동이 사라져 도서실 칸막이에 제각각 들어가 취직 공부를 하는 개인주의적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성에서도 개인적인 취향이 가장 중요해진 세대다.)

    사회 : 섹스 칼럼에 아직도 검열이 있나?

    아레나 : 적나라한 표현을 쓰면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도 받고 벌금도 받는다. 경고 두 번 받았다.

    지큐 : 경고 두세 번 안 받고 섹스 칼럼니스트라 할 수 있나. 경고를 많이 받으니까 용어를 추상적으로 통일하는 건 있다. ‘오럴’ 같은 단어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빨았다’고 해야 쓰는 맛이 나는데 말이다. 영어로 쓰면 괜찮다는 게 이상하다.

    사회 : 다음달 주제는 뭔가?

    아레나 : 아무래도 연말이고 자선의 계절이라 ‘머시퍽’(merci f***)으로 정했다. 연말에 불쌍해서 한번 하는 섹스에 대해서 쓸 거다.

    사회 : 왜 나만 웃고 있나? 섹스 칼럼니스트가 12월호에 내는 가장 진부한 발제인가?

    아레나 : 사실 우리도 비슷한 거라서. 바로 이 자리를 소재로 쓸 수도 있겠다.

    지큐 : 또 다른 기자가 ‘냄새’에 대해 쓸 거다. 난 ‘섹스칼럼니스트들의 거짓말’을 쓸 건데, 일부 얘기가 이 자리에서 나왔다.

    악녀 : 대한민국에서 섹스 칼럼을 제일 잘 쓴다는 남자들이 어쩐지 의무적으로 억지로 섹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 이제 섹스 칼럼을 읽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느 만큼이 진심인지, 어느 부분이 편집장을 위한 립서비스인지 알겠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마초라면, 자신의 섹스에 대해,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하지도, 더구나 그걸 결코 글로 쓰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남성의 성기에서 사회적 권력이 나온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남성 섹스칼럼니스트는 마초적인 사회에서 가장 덜 마초적인 남성이란 생각마저 든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란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레나 : 섹스에 대해 감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섹스 칼럼을 쓸 수 있다. 어딘가 켕기고 음험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못 쓴다.

    사회 : 긴 시간 단어 가리고 고르며 이야기하느라 고생하셨다.

    (녹음을 끝내고 ‘오프더레코드’로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섹스트러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섹스가 개입된 ‘관계’들에 대한 것이었다. ‘섹스 때문에 미치겠네’란 칼럼 제목이 자꾸 생각났다.)

    며칠 뒤. 그들은 언제까지 섹스 칼럼을 쓸 수 있을까, 물어봤어야 했단 생각에 e메일을 보내 답을 받았다.

    악녀: 파파할머니가 되어서 젊은이들에게 성능 좋은 바이브레이터를 소개하고 싶어요.

    에스콰이어: 섹스할 수 있을 때까지 쓸 겁니다.

    아레나: 지금까지 나온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랍니다.

    지큐: 네, 이제 그만 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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