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시대가 바뀌어도 이혼의 고통은 같다”

종영된 KBS 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작가가 바라본 ‘이혼 풍속도’

  • 하명희│방송작가 iamhmh@naver.com│

    입력2009-06-03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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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이혼은 없다. 하지만 현명한 이혼은 있을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을 쓰면서 많은 이혼을 봤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혼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 고통의 크기는 같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혼의 고통은 같다”
    “그 얘긴 패륜이 될 수 있겠는데요.” “너무 자극적인 얘기라 장사는 되겠지만, 이런 얘긴 지양하죠.”

    KBS 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아이템 회의시간에 오간 말이다. 회의는 구성작가 2명이 제보된 사연이나 이슈가 된 사건 15~20건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작가나 PD가 주변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한다. 많은 사연이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될 확률이 높다. 그만큼 현실은 픽션보다 강하고 독하다. 그래서 제작진은 소재 선정에 원칙을 두었다. 첫째, 시의성이 있는가. 둘째, 주변에서 있을 만한 이야기인가. 셋째,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소재가 정해지면 그 다음엔 일사천리다. 사연을 극화할 경우엔 이야기의 뼈대가 있어서 쓰기가 좀 편하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기에 마지막을 향해 가는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에피소드를 잘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연은 에피소드만 있고 뼈대가 없어서 뼈대를 만들기도 하다. 모두 드라마트루기(dramaturgy·드라마작법)에 맞춰 극을 만든다. ‘사랑과 전쟁’이 시청자에게 주목받은 이유는 시청자가‘사랑과 전쟁’을 리얼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드라마 형식이 아닌 다큐 형식이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픽션보다 강한 현실

    또한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시청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 이혼 찬반투표는 매 사안에 대해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제보된 사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보자도 자신의 제보가 채택되고 방영된 뒤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1999년 9월부터 2009년 4월까지 9년6개월간 KBS 2TV에서 방송된 스테디셀러 드라마로 시청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전체 479회 중 75%는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혼율이 30%를 육박하는 요즘, ‘사랑과 전쟁’을 쓰면서 현실 속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랑과 전쟁’은 보통 4명의 PD와 4명의 작가가 짝을 이뤄 제작한다. 그러니 보통 4주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온다. 그곳에서 필자는 햇수로 4년간 20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어떤 이혼도 쉬운 이혼은 없다. 모두 나름의 절박한 심정으로 이혼을 결정한다. ‘사랑과 전쟁’에서 극화한 이야기 중심으로 요즘 시대의 이혼을 얘기해보자.

    우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사연을 극화한 경우를 소개한다. ‘내겐 너무 무서운 그녀’(388화·2007년 6월 방영)에서 남편 승수는 대학친구 유부녀 은영과 ‘친구 사이’를 가장해 불륜을 저지른다. 아내 혜정은 승수를 추궁하지만, 되레 의처증으로 몰며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한다. 은영을 찾아가 자제해달라고 부탁해도, 남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은영의 충고만 듣고 들어온다. 마음 약한 혜정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둘의 관계를 지켜보기만 하다 두 사람이 도를 넘자, 은영의 남편을 찾아가 은영과 승수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은영의 남편은 연하로, 평소에 말로는 당할 수 없는 아내를 휘어잡기 위해 가끔 폭력을 쓴다.

    그런데 얼마 후 은영의 남편이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은영은 미망인이 된다. 그 사고에 은영이 관여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남편이 죽은 뒤 은영은 적극적으로 승수에게 달라붙는다. 승수는 은영에 대한 연민으로 집을 나가 은영과 함께 산다. 혜정을 속여 집을 처분한 돈을 갖고. 혜정은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하루아침에 집까지 잃는다. 그래도 친정에서 해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승수와 은영의 동거생활은 돈이 떨어지자 다시 순탄치 않게 되고, 은영이 승수를 떠난다. 혜정은 집으로 들어온 승수를 아이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받아들인다. 승수는 혜정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은영에게서 연락이 온다. 다시 시작하자는 은영. 승수가 싫다고 하자 혜정에게 물러나라며,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를 들먹이며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혜정은 은영의 협박이 현실적으로 느껴져 승수에게 이혼을 요구해 조정위원회에 오게 된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혼의 고통은 같다”

    외도만을 이유로 이혼까지 하진 않는다. 그동안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튀어나와 외도를 못 참게 되는 것이다.

    극성(劇性)이 강해서 선택한 실제 사연인데 이 드라마가 나가자 시청자 게시판이 들썩였다. 세상에 저런 일이 어디 있느냐, 작가가 사이코다, 제정신이 아니다, 하는 욕을 많이 먹었다. 이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 이혼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동안 너무 많이 용서해줬다. 진작 끝냈어야 했는데. 진작 끝냈다면, 좀 더 일찍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생활은 혼자만의 노력으론 유지되지 않는다. 한쪽의 노력만으로 버티는 관계는 언젠가 끝을 보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한쪽의 노력만으로 버티다 이혼하는 부부도 많다.

    어쩔 수 없는 운명

    사고로 인해 이혼에 이르는 부부도 있다. 이런 경우‘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종손실종사건’(473화·2009년 2월 방영)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여자가 아들을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된 이야기다. 혜란은 손이 귀한 집에 시집와 아들을 낳고, 시부모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혜란은 남자 동창을 만나러 가느라 아들 지후를 학원에 데려다주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 지후는 학원에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운전자는 겁이 나 지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지후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운전자 부부는 아이가 없던 차에 지후를 자식으로 키운다.

    지후를 찾기 위해 혜란 부부는 모든 걸 다 걸지만 허사다. 시부모와 남편의 원망을 받는 혜란. 그날 지후를 학원에 데려다 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거다. 남편은 지후를 찾겠다며 회사를 관두고,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남편은 폐인이 된다. 술 마시고 파출소에 드나들고, 혜란에게도 폭력을 행사한다. 예전의 다정한 남편이 아니다. 지후를 잃어버린 지 3년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리고 지후를 데려간 운전자가 또 교통사고를 내 감옥에 가게 된다. 운전자 아내는 지후를 키울 수 없자 혜란에게 돌려보낸다. 죽을 때까지 사죄하며 살겠다는 편지와 함께.

    예견된 이혼

    하지만 지후는 기억을 잃어버린 탓에 혜란 부부를 기억하지 못하고, 운전자 부부를 부모로 안다. 희망적인 일은 지후의 기억을 치료를 통해 조금씩 찾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의견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며 반항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편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사는 게 지옥인 혜란은 이혼을 결심한다.

    누가 보면 지어낸 거 같지만, 이 또한 실제로 있었던 사연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한순간의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겸양의 자세를 갖게 됐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이혼이 존재한다면, 결혼 시작부터 예견된 이혼도 존재한다.

    ‘아들 장사’(455화·2008년 10월 방영)는 결혼에 관한 가치관이 다른 집안이 결합하면서 이혼에 이르게 된 이야기다. 사랑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한 수경은 변호사 남자친구인 민우와 결혼하면서, 결혼준비 과정에서 ‘혼(婚)테크’를 하려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그렇지만 결혼만 하면 그 갈등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강행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리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자 예단으로 요구한 2억원 중 1억원만 갖고 온 수경에게 나머지 1억원을 갖고 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남편 민우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리라 여기고 시어머니에게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시어머니는 민우와 수경을 이간질한다. 이럴 경우 거의 ‘핏줄의 승리’다.

    수경은 임신을 하고 한풀 꺾여 시어머니에게 잘 지내볼 것을 제안하지만, 시어머니는 예단비를 못 채울 작정이면 아이를 지우고 이혼하라고 종용한다. 자신의 아들은 처녀장가갈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민우는 결혼해서 살아보니 자신의 엄마 말이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조건의 친구들이 좋은 조건의 여자와 결혼해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을 보면, 자신이 사랑만 보고 결혼한 것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그러면서 둘 사이는 멀어진다.

    이 얘기는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부모의 가치관은 자식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 결혼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 뒤엔 그들의 부모가 버티고 있다.

    ‘아들 장사’의 여자 버전도 있다. ‘왕자 찾기’(359화·2006년 11월 방영)는 오로지 돈만 아는 엄마가 결혼 상대자를 선택해주고 결혼생활까지 참견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선택한 딸의 결혼 상대자는 외제 차 타는 돈 많은 청년 사업가 진호. 능력 있는 남자는 미인을 차지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진호도 영주의 외모에 반해 결혼을 감행한다. 그러나 영주와 그녀의 엄마는 진호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상대였다. 쇼핑과 외식으로 한 달에 1000만원을 쓰고도 모자란다고 투덜댄다.

    결국 진호는 생각만큼 돈도 없고 사업이 어려우니 돈을 아껴 써야 한다며 생활비를 줄이고 카드도 뺏는다. 엄마는 그런 진호에게 돈이 없으면서 있다고 했다며, 영주와의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자며 결혼 한 달 만에 딸을 데리고 간다. 그러곤 혼인신고도 안 되어 있고, 결혼 전 남자 한두 번 안 만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초혼이라고 속이고 딸의 결혼상대를 알아본다. 다시 재력가를 찾아 결혼을 시키려 하지만 결국 결혼 사실과 결혼 의도가 들통 나 파탄에 이르게 된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혼의 고통은 같다”
    性的 차이

    조건과 조건의 결합은 그 결합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사라진다면, 결혼생활도 끝날 확률이 높다. 조건은 변할 수 있다, 사랑이 변할 수 있듯이. 사랑이 변하면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기억을 붙잡고 살아보려고 버틸 수 있지만, 조건이 변하면, 붙잡고 버텨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혼으로 가는 길도 좀 더 단순할 수 있다.

    결혼하면서 이혼하리라 생각하는 부부는 아무도 없다.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나름의 열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다’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하는 부부도 있다. 이런 부부는 소위 살아보고 결혼해야 한다고 외치는 부류다. 살아봐야 서로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는 거다. 잘 알면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알아도 갈등은 있다.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하다.

    이혼사유 중 가장 많은 게 바로 ‘성격 차이’다. 여러 이유를 하나로 만들기에 용이해 뚜렷한 이유를 댈 수 없으면 성격 차이라고 한다. 혹자는 성격(性格) 차이를 성적(性的) 차이라고 한다. 결혼생활에서 부부생활이 흔들리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 화이자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27개국 25∼74세 남자 6291명과 여자 6272명을 대상으로 2005년 10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성생활 만족도에 관해 조사해 발표한 ‘더 나은 섹스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성생활에 매우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한국 남자는 9%, 한국 여자는 7%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었다. 그런데다 “섹스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한국 남자는 91%, 한국 여자는 85%로 나타났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에 비해 만족도는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부간의 성생활이 논의되기보다는 “훔쳐 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외설만 판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아닌가 해서 부부간의 성을 공론화해보기로 했다.

    많은 사연이 제보됐는데, 우리를 충족시킬 만한 사연이 없었다. 남편이나 아내가 거절해서 불륜에 빠진 사람들. 불륜에 빠지지 않더라도 부부생활이 즐겁지 않다는, 불행하다는 사연이 대부분이다. 섹스가 없어지면서 정서적으로 이혼상태가 되는 부부가 많았다.

    적당한 사연이 없어서 섹스리스 부부 얘기를 만들었다. 아내가 섹스를 거부하는 부부와 남편이 섹스를 거부하는 부부. 반대의 상황을 가진 두 부부가 있다. 아내가 섹스를 거부하는 남자와 남편이 섹스를 거부하는 여자가 불륜관계를 갖는다. 두 사람 모두 의사로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선후배 사이다. 등장인물의 직업을 전문직으로 한 것은 섹스 얘기는 잘못하면 천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각방부부’(444회· 2008년 7월 방영)로 방송 후 이혼찬반 투표에서 69.6%가 이혼에 찬성했다.

    결혼생활에서 부부의 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다. 드러내놓고 말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보니, 골이 깊어간다. 부부의 성에 대해 상담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음으로 많이 꼽히는 이혼 사유로는 ‘외도’ ‘경제적 이유’ ‘직계 존속과의 갈등’이 있다. 요즘에 와서 달라진 추세는 여자들이 외도에 대해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복수를 준비해서 철저히 상대를 망가뜨린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도 복수라는 설정 때문이 아닐까.

    참고 살지 않는다

    ‘3개월만 살자’(363회·2006년 12월 방영)는 아내 은수에게 상간녀(相姦女·불륜녀)가 찾아와 남편 민호와 헤어져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실제 제보된 사연이다.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던 민호도 은수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은수는 배신감에 치를 떤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전략을 세운다. 은수는 그동안 맞벌이를 하며 아내 노릇을 제대로 못했지만, 좋은 아내로 기억되고 싶다며 딱 3개월만 상간녀를 만나지 말고 가정에 충실해달라고 부탁한다. 3개월 동안 살아주면 조용히 이혼해주겠다는 말에 민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은수는 민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민호가 평소에 원했던 모든 것을 해준다.

    은수의 달라진 모습에 서서히 마음이 바뀐 민호는 3개월을 참지 못하고 닦달하는 상간녀에게 짜증을 낸다. 민호는 3개월을 마치는 날 은수에게 이혼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 하지만 은수는 이혼서류와 함께 싸놓은 민호의 짐을 내민다. 은수는 3개월 동안 시부모로부터 유산을 받아 챙기고, 정기예금도 자신의 명의로 옮겨놓는다. 또 상간녀와 대화 내용을 녹취해서 간통의 증거를 잡아놓고, 상간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은수가 기한을 3개월로 잡은 건 법에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원인으로 한 이혼 청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외도 사실이 있은 날부터 2년 이내에 해야 되기 때문이다. 민호는 뒤늦게 이혼을 거부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은수는 3개월 동안 복수와 이혼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준비를 철저하게 해왔다. 성급하게 이혼하기보다는 실리를 챙기고 이혼하려는 여자가 늘고 있다.

    부부의 문제가 아닌 서로의 가족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의 부엌’(434회·2008년 5월 방영)은 홀아버지가 치매로 부양을 받아야 하자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가정의 달 특집으로 기획해서 만든 얘기로 PD가 아이템을 냈다. 요즘은 자녀가 한 명이거나 딸만 둘 둔 가정이 많다. 아들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가정들이다. 사실 요즘 추세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 쪽으로 점점 가고 있지만.

    윤정은 혼자 사는 친정아버지가 든든하다. 혼자 살아도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아주 잘하신다. 반찬을 해서 딸에게 가져다줄 정도다. 그러던 아버지가 동생을 시집보내고 나서부터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이기적인 동생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장녀인 윤정에게만 맡겨놓아 자주 친정에 가게 된다. 윤정의 시어머니는 친정에 드나드느라 애들과 남편에게 소홀한 윤정이 못마땅하다. 남편은 장인을 요양소에 보내라고 한다. 윤정은 지금껏 시어머니를 성심성의껏 모셔왔고, 남편과 애들에게도 충실히 했는데,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남편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장인은 가족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윤정은 이혼을 요구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나갔을 때, 시청자 게시판은 사위를 욕하는 글로 도배되었다. 시대가 변했다. 시청자 의견 중 61%가 이혼에 찬성한다며 사위도 자식 노릇해야 한다고 했다.

    즐거운 이혼은 없다

    ‘남편 양육비 청구 사건’(439회·2008년 6월 방영)도 부모로 인한 갈등으로 이혼에 이르는 이야기로 실제 제보된 사연이다. 시어머니가 두 아들을 가르치고 키운 내역서를 작성해 자식들에게 준다. 큰며느리인 경미는 황당해 한다. 설마하니 자식한테 키운 값을 계속 달라고 할까 싶은 경미는 첫 달 용돈만 챙겨드렸지만 두 달째 되는 날, 약속한 날짜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시어머니의 독촉전화를 받는다. 더 ‘뜨악한’ 것은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챙겨드린 돈으로 피부과 시술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은근슬쩍 화가 치밀어 오른 경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서와 함께 남편들의 월급이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빼곡하게 적은 지출내역서를 만들어 용돈 드리기가 얼마나 빠듯한지 보여드린다.

    하지만 며느리들보다 아들의 수입을 더 정확히 아는 시어머니는 아들의 수입을 속였다고 혼을 낸다. 결국 동서는 자식 돈 뜯는 게 부모냐며, 시모와 싸우고 나간 채 발길을 끊는다. 그러자 그 짐을 큰아들인 남편이 다 지게 된다. 마음 상한 어머니를 달랜다며 더욱 더 효자가 된 남편. 경미는 형편을 생각 못하고 시어머니의 요구를 거절 못하는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한다. 가정경제가 엉망이 돼 남편에게 시댁에 가는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그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경미를 몰아세워 이혼에 이른다.

    경제적인 이유와 시댁과의 갈등으로 이혼하는 사례다.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시어머니를 비난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제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챙겨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자식에게 노후에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욕먹는다.

    이혼에 이르는 사유는 정말 다채롭다. 한 가지로 내세울 수 있는 사유도, 사실은 많은 복합적인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단순히 외도만을 이유로 이혼까지 하진 않는다. 그동안 살면서 덮어두었던 수많은 문제가 튀어나와 외도를 못 참게 되는 것뿐이다. 그만큼 이혼이란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즐거운 이혼은 없다. 하지만 현명한 이혼은 있을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을 쓰면서 많은 이혼을 봤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혼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 고통의 크기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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