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재능 나누며 꿈을 이룹니다”

케냐 어린이에게 교육 지원하는 젊은이들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06-03 1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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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9일 토요일 오후 7시. 꿀맛 같은 주말의 휴식을 뒤로한 채 직장인들이 하나둘 대학 강의실로 들어왔다. 밝은 형광등 빛 때문인지, 빛나는 청춘 때문인지 공간은 봄 햇살처럼 반짝였다. 팀별로 그간의 진행상황을 발표하는 그들에게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전체회의를 끝낸 ‘프로’들의 쿵쿵 뛰는 심장소리를 듣다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졌다.
    “재능 나누며 꿈을 이룹니다”
    케냐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단순히 먹을 것만 주기보다는 ‘살아갈 힘’을 줘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학교 재정이 어려워 교육기반이 흔들리는 곳이 많았어요. 교육은 아이들의 성장 발판이자 미래인데 말입니다. 교육이 없는 어린이지원사업은 무의미합니다.”

    7년 동안 법전만 보며 고시공부를 하던 고시생이 드디어 꿈을 찾았다. 2년 전, 시민단체 인턴으로 케냐에서 어린이개발사업을 하던 중 “살아갈 터전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체득한 박자연(30)씨. 그는 현재 이화여대 행정계약직원으로 근무하며 HoE(Hope is Education)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프로젝트를 지원할 교사와 대학생 리크루팅(recruiting)을 진행했고, 5월16일에는 8월에 있을 케냐 파견사업을 위한 모금행사를 열 예정이다.

    HoE가 지원할 케냐 코어(Korr) 지역은 박씨가 활동한 곳으로, 6.6%의 어린이만이 초등교육을 받고 있다. 그곳의 유일한 학교인 티림초등학교(전교생 300여명, 정식교사 3명, 보조교사 12명)는 2008년 라이사미스주 초등학교 졸업시험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편이지만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

    HoE 사업제안서에 따르면 ‘HoE 프로젝트의 1차 목표는 코어의 아이들이 누리는 작은 교육의 기회가 유지되도록 티림초등학교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 설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지어진 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HoE는 재정지원에 앞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8월8일부터 16일까지 이화여대 사범대 성효현 교수 지도로 현직 교사 5명을 파견해 ‘교사연수프로그램’과 ‘어린이캠프’를 진행한다.



    “아프리카 현지 교과서를 분석해 개선점을 찾고, 교사연수를 받지 못한 케냐 교사들에게 연수 내용을 전해주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갑니다.”(박에스더·28·교사)

    A4 두 장에 거는 기대

    “뭔가 해야지, 해야지 하다 지난해 11월 제 꿈을 담은 제안서를 A4용지 두 장에 적었습니다.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는데 그 종이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3주 만에 16명이 모였어요. 직업에 따라 Strategy, Biz, Finance, PR, Design, Edu, Legal Affairs 팀 7개를 구성한 뒤부터는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박씨의 어린 시절 친구, 대학친구, 대학친구의 동료, 동생의 선후배, 동네친구의 친구, 직장 동료 등이 모인 HoE의 직업군은 실로 다양하다. 민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 해외 부동산 개발 담당 회계사, 세계적 금융회사 애널리스트, 교육지원업체 마케팅팀장, 중국진출기업 컨설턴트, 자영업자, 방송사 PD, 교사, 디자이너, 전시기획자, IT업계 관계자….

    구성원 모두가 선뜻 나선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박씨는 “대단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다. HoE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성장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누군가를 도와주며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금행사 때 판매할 티셔츠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싶습니다.”(박미진·31·일러스트레이터)

    “사회초년생인 제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HoE 조직구성원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뭔가를 만들어낼 때마다, 저도 뭔가 이룰 수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유정·29·PD)

    직장생활이 고달픈 것은 내 안의 꿈을 놓치고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HoE 구성원들은 퇴근 후 인터넷으로 원격회의를 하고, 만나서 토론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꿈꿀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꿈이라는 원종호(28·광고인)씨, 자신의 예능적인 재능을 살리는 게 꿈이라는 이모(29·금융회사 애널리스트)씨 얘기만이 아니다.

    “재능 나누며 꿈을 이룹니다”

    HoE 팀원들은 ‘교육이 없는 어린이 지원사업은 무의미하다’며 저마다의 재능으로 케냐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출퇴근의 연속인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제가 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자기계발이 열풍이라 저도 열심히 따라 했지만, 정작 배운 걸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HoE에서 일하며 ‘어린이 돕기’라는 꿈을 찾았어요.”(박양선·27·회사원)

    “2년간 탄자니아에서 건축 실습지도 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곳으로 돌아가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 그곳에 갈 수는 없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발판을 마련하려고 해요.”(정소향·30·자영업자)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배워서 남도 주자”는 것. 성민모(36·IT업계 종사자)씨가 팀원 간의 인터넷 소통을 돕는 것도 그래서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포부도 컸다.

    “변호사로 일한 경력이 얼마 되진 않지만 단체 리스크 관리를 맡을 예정입니다. 상품을 만들어 팔 때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사람들을 현지 파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죠. 그럴 때마다 법률적인 지원을 해야지요.” (최은정·30·변호사)

    “아프리카 교육사업을 위해서는 기부와 펀딩이 필요한데, 이럴 경우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과제겠지요. 행정비를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지원하는 회계사가 되겠습니다.”(김태훈·30·회계사)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후배

    봉사는 윈윈게임이라고 한다. 봉사하는 사람은 기쁨을 얻고, 봉사받는 사람은 지원을 얻어서다. 그러나 HoE 프로젝트 참여자들만큼은 기쁨 외에 경력관리도 덤으로 얻고 있다.

    비영리단체에서 마케팅업무를 하고 싶다는 정구연(28·경영학전공 대학원생)씨는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전사적 재원관리를 위해 교육컨설팅을 하는 장재혁(29)씨는 “효과적인 교육방법에 대해 배우고 있어 좋다”고 했다. 6년차 교사인 안은경(29)씨는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주요 국가의 투자처가 될 아프리카’에 관한 학습기회를 얻었다는 팀원도 있었다.

    어렵게 사는 한국 아이도 많은데 왜 굳이 케냐에 있는 아이들을 돕느냐는 물음에 HoE 기획팀장인 오혜정(30·교육지원업체 마케팅팀장)씨의 답은 이랬다.

    “한비야씨가 그러더군요. 우리는 코리안 시티즌이 아니라 글로벌 시티즌이라고요. 지금 당장은 도움이 절실한 케냐의 코어 어린이들에게 집중할 예정이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지역의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후배이고 동생이니까요.”

    이처럼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은 구성원 중 다수가 해외봉사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팀의 리더인 박씨는 1년간 케냐에서 어린이개발사업을 했고, 오혜정씨와 성민모씨도 1년간 몽골 후레대학교에서 각각 경제학과 전자공학을 가르쳤다. PD인 김유정씨와 김빛나(24)씨는 대만, 일본, 모스크바 등 해외지역 전도 여행을 다녀왔고 디자이너인 김은경(30)씨는 1년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컴퓨터교사로 활동했다. 해외체류 경험자도 많아 장재혁씨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이모(29)씨는 미국 대학을 나와 뉴욕에서 M&A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꿈의 기획안을 만든 박자연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같이 말했다.

    “구성원들이 성장하는 만큼 HoE도 성장하겠지요. 우리가 스타트를 잘 해서 재능나눔 운동이 널리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아닌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며 전문가로 성장하다 보면 사회도 발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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