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상당히 억울하다. 내가 잘못되면 친구인 대통령도 모양이 좋은 건 아니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9-06-08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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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연차, 내게 세무조사 무마 요청했다”
    • “‘박연차 조사에 관계 말라’ 조언받았다”
    • “이 대통령과 5박6일 함께 휴가 보냈다”
    • “박연차 7개 회사, 내 법인에 투자했다”
    • “5월에 다 끝난다, 6월에 와인 한잔 하자”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천신일(千信一·66)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현 정권의 핵심들과 두루두루 막역한 사이이고 그 자신이 막후 실세로 통한다. 또한 정·관·재계의 마당발이며 떠오르는 고려대교우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가 경영하는 세중나모는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는 그룹의 형태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을 이 나비넥타이의 신사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밀리고 밀려 지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여권도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다. ‘천신일 뒤’에는 더 이상 방어막이 없다. ‘정권 그 자체’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연차 게이트는 두 줄기 흐름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하나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600만달러, 40만달러, 명품시계 등 뇌물을 제공한 의혹이다. 거의 일단락되어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박 전 회장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천 회장을 통해 현 정권에 로비를 한 의혹이다. 천 회장은 ‘전(前) 정권 패밀리’ 박 전 회장의 ‘의형제’이자 ‘멘토’이기도 하다. 언론에선 두 사람과 관련된 의혹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천 회장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계좌추적,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천신일-박연차 29년 스토리

    천 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신동아’에 전화를 걸어와 꽤 긴 시간 인터뷰했다. 그는 국민적 이슈의 중심인물이지만 언론과의 본격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8~29년 전 박 전 회장과의 만남에서부터 세중나모 주식 거래에 이르기까지 박연차 게이트의 서른 가지도 넘는 쟁점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육성은 때로는 확신에 넘쳤다. “세무조사와 관련해 10원도 받은 적 없다”면서 박연차 게이트와 무관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가 다소 규명됐다.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우선 천 회장은 박 전 회장이 자신에게 세무조사 무마 요청을 여러 차례 간곡하게 했다고 밝혔다. 천 회장이 실제로 권력기관을 상대로 로비에 나섰는지 가 관건인데, 그는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 손 떼라’는 경고를 받았느냐”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관계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박연차 세무조사’를 주도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대학원 동기 모임에서 만난 적 있다고 했다. 박 전 회장의 7개 회사가 천 회장의 법인에 투자한 사실도 나타났다. 또한 천 회장이 이 대통령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는 점도 구체적 일정(2008년 7월26일부터 30일까지 5박6일)으로 확인됐다. 박 전 회장의 천 회장 측 회사 주식매매를 통한 우회적 금품지원 의혹이 검찰 수사대상이 되고 있는 가운데 천 회장은 박 전 회장이 세중나모 주식에 투자했다 손해 봤다고 인정했다.

    천 회장의 입장에선 이런 점들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요인이다. 오해인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흔적인지는 이제 검찰이 규명해야 할 몫이다. 인터뷰 막바지 그는 “상당히 억울하다. 내가 잘못되면 친구인 대통령도 모양이 좋은 건 아니다”라고 했다.

    A4 6장 분량의 서신

    검찰수사는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은 ‘기계적 균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와 타당한 결론으로 입증되는 ‘품질 높은 수사’가 요구되는 이유다.

    천 회장과의 인터뷰는 ‘신동아’가 그에게 A4지 6장 분량의 e메일 서신 겸 질의서를 보내면서 비롯됐다. 그간 독자적으로 취재한 내용과 주관적 소감을 적은 글이었다.

    하루 뒤 천 회장에게서 응답이 왔다. 이성적 전략 차원이라기보다는 글에 이끌린 정서적 동기에 의해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소설 쓰지 마세요”라며 그간의 언론보도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신동아’와 인터뷰한 뒤 “오늘 얘기한 그대로 쓰세요”라고 특별히 주문했다. 검찰조사를 앞두고 표현이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거의 미세한 차이도 없이 활자화했음을 밝혀둔다. 천 회장은 회장님, 박 전 회장은 박연차 회장으로 호칭했다.

    1부 의형제:문일이 대신 동생 하겠습니다

    ▼ 회장님께선 박연차 회장과 어떻게 알게 되었고, 두 분의 친분은 어느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까? 이 부분부터 설명해주시죠.

    “우리는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었는데 28~29년 전쯤 내 동생 문일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동생 장례를 치른 장지에서 (동생 친구인) 박 회장을 오랜만에 만났죠. 박 회장이 장지에서 내게 ‘형님 슬퍼하지 마십시오. 제가 문일이 대신 동생 역할하겠습니다’ 뭐 이런 얘기였죠.”

    천 회장은 평소 스타일인지 긴장한 탓인지 말을 끝낼 때 마지막 발음을 지그시 누르며 끌고 갔다. ‘얘기였죠’는 ‘얘기였오~’로 말한다. ‘성대모사’ 대상이 되기에 딱 좋은 이런 점은 대화 내용의 엄청난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약간 탈(脫)권위적으로, 유머러스하게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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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신일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 그를 만나기 위해 기자 등이 기다리는 경우가 잦다.

    ▼ 두 분은 동생 장례식을 계기로 가까워진 거군요.

    “박 회장이 가내수공업을 할 때부터 내 동생과 친했고, 장지에서 나와 만날 때는 임대공장 정도는 하고 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자답고 그런 점을 느꼈죠”

    ▼ 가내수공업은….

    “그건 우리가 편의를 좀 봐줬어요. 박 회장이 우리 집 담을 벽 삼아서 임시로 건물을 지어 가내공업을 했습니다.”

    ▼ 박 회장이 대신 동생 하겠다고 할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남자답고 그런 점을 느꼈죠. 네. 네.”

    ▼ 최근 회장님에 대해 검찰에서 출국금지, 계좌추적,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곧 회장님을 소환해 조사한다고 하는데 심경이 어떠신가요?

    “이건 내가 검찰 출두하기 전이니까, 내가 심경을 얘기하면 검찰이 기분 나쁠 수도 있고 하니까 이 대목은 그냥 넘어가죠.”

    ▼ 최근 기자들이 회장님을 만나기 위해 자주 성북동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요?

    “주말에는 지방에 가서 쉬고 올라오고 주중에는 집에 만날 들어갔습니다.”

    천 회장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해외여행은 천 회장이 운영하는 세중나모여행이 주로 맡고 있다. 이 전 회장은 1992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자 천 회장을 국제담당 이사로 추천했고, 이 전 회장이 1996년 IOC 위원이 되자 천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이어받았다. 그러자 박연차 전 회장은 협회 부회장이 되어 천 회장을 도왔다.

    ▼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님이 천 회장님을 매우 신뢰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네. 사실이 아닙니다.”

    “그 관계는 뺍시다”

    ▼ 고 이병철 회장님을 통해서 이건희 전 회장님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힘주어) 이병철 회장님이나 이건희 회장님과의 관계는 뺍시다.”

    이 대목은 좀 재미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빼자”고 하면 “그렇다”는 게 된다. 천 회장은 살짝 비껴가거나 하는,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뤄본 솜씨는 아닌 듯 보였다. 질문에 일일이 다 답을 한다.

    천 회장의 한 지인은 기자에게 “1990년 2월 마약사건 수사 때로 기억하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부산검찰청 모 간부 사무실에 들렀다가 그 자리에 천 회장이 있는 걸 봤다. 그래서 천 회장과 인사를 나눴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검찰청 간부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법조인은 “천 회장과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천 회장은 내가 부산에서 근무하던 시절 찾아온 적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 1990년 2월 부산지검의 마약사건 수사 때 박연차 회장이 마약복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자 회장님께선 박연차 회장의 인생 멘토로서, 걱정하는 차원에서, 당시 학교 선배인 부산의 검찰 간부 OOO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그때 그분이 부산에 있었나? 아닌 것 같은데 내 지금 느낌에는?”

    2부 구조요청:형님 도와주십시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박연차 전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다. 박연차 전 회장은 천신일 회장,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포함해 여권 여러 곳에 구명 로비를 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는 국세청이 박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검찰수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11일 대검 중수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조세포탈,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박 전 회장을 구속했다.

    주된 관심 대상은 △박 전 회장이 천신일 회장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는지 △천 회장은 그런 청탁을 듣고 실제로 권력기관을 상대로 로비에 나섰는지 △박 전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청탁의 대가로 천 회장에게 돈을 주었는지 △박 전 회장의 돈이 천 회장을 거쳐 현 정권에 흘러들었는지가 된다. 천 회장은 인터뷰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 언제 박연차 회장이 부탁하던가요?

    “8월 초로 기억합니다.”

    ▼ 어떻게 말하던가요?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 그랬죠.”

    ▼ ‘도와달라’라는 말은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마도 되는지, 이런 부분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거죠?

    “그렇겠지.”

    ▼ 그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가 가만히 분위기를 보니까 내가 관계할 문제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자, 알아보자’‘알아보자’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여튼, 내 생각에는, 내 생각으로 이야기해서, 빨리빨리 협조해서, 내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박연차 회장에게 싫은 소리를 했어요. ‘그동안 세금 안 낸 것 있으면 수정신고 해서 세금 내라’ ‘휴캠스는 인수하지 마라’ 이런 얘기를 내가 박 회장에게 여러 차례 했어요. 그렇게 되리라고 나는 예상을 했어요.”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5월7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관들이 서울 중구 태평로 S빌딩 19층 세중나모여행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 세무조사 전에 박 회장에게 그런 일 겪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라고 하셨다는 거죠?

    “그렇죠. 세금 안 낸 것 있으면 내고 휴캠스는 나중에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많으니까 인수하지 마라, 이렇게.”

    휴캠스, 불운의 씨앗

    ▼ 휴캠스를 인수하지 말라고 하셔놓고 박연차 회장이 휴캠스를 인수한 후 회장님이 휴캠스 사외이사가 되셨는데?

    “그러니까, 인수를 했으니까 인수하고 나서는 내게 ‘사외이사를 맡아달라’고 해서, ‘회사가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회사를 맡는 게 좋겠다’고 해서 맡았죠.”

    박연차 전 회장은 2006년 6월 농협으로부터 약정 인수금액보다 322억원 저렴하게 알짜 흑자기업 휴캠스를 인수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대근 당시 농협회장이 노무현 정권과 가까운 점을 내세워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노무현 측근 박연차’가 수면으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휴캠스는 ‘이명박 정권과 박연차의 연결고리 천신일’을 표상하는 효과를 냈다. 이 대통령 친구로서 천 회장이 유명세를 타게 되자 박연차 전 회장이 천 회장을 휴캠스 사외이사로 임명한 사실이 뒤늦게 주목을 받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휴캠스는 두 사람에게는 불운의 씨앗이 됐다.

    3부 로비:여름휴가와 대책회의의 진실

    ‘동생’ 박연차 전 회장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천신일 회장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실제로 자신의 ‘어마어마한 연줄’을 이용해 박연차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했을까.

    민주당은 천 회장이 지난해 7월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휴가를 함께 갔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휴가일정이 박연차 전 회장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착수 시점과 비슷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일반 기업인이 며칠간 대통령과 함께 있었다는 건 사실이라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천 회장의 파워를 상징한다.

    “가방들 꾸려 올라올 때니까”

    ▼ 지난해 대통령과 휴가를 함께 가셨죠, 그렇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대통령이 개인적인 휴가 간 것은.”

    ▼ 아니, 이 문제는 중요하니까 좀 설명을 해주시죠?

    “그런데 내가 함께 휴가를 간 사실은 진실이고, 이것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 제 질문에 간단히 답해주시면 되는데요. 다른 서너 쌍의 친구들 일행과 함께 갔나요?

    “아, 그것도 빼고. 하여튼. 나는 분명히 갔습니다.”

    ▼ 회장님이 대통령께 박연차 회장 문제를 얘기하시거나 그러신 적 없습니까?

    “전혀 없는 것이, 휴가 기간이 2008년 7월26일부터 8월30일까지입니다. 아참, 7월30일까지입니다. 그런데 박연차 조사가 그전에 일어난 게 아니고 7월30일 일어난 것 같아요. 조사 시작이. 그러니까 이때는 올라올 때까지는 전혀 몰랐죠.”

    세무조사 착수란 세무조사 개시를 해당 기업에 통지한 시점으로 알려져 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경우 7월30일 태광실업 측에 통지됐다고 한다. 천 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천 회장이 이 대통령과 함께 있었던 기간의 끝자락과 박연차 세무조사 착수 시점이 같은 날(7월30일)로 겹치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천 회장은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다.

    “내 얘기 들으면 납득이 가실 겁니다. 7월26일부터 30일까지. 7월30일 아침에 가방들 다 꾸려가지고 올라올 때니까. 서울 도착이 오후 2시쯤 된 걸로 기억하는데, 조사는 7월30일부터 시작된 거니까 전혀 (이 대통령에게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를) 얘기한 적이 없죠.”

    여러 언론은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천신일 회장이 현 정부의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박연차 세무조사 대책회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신동아’가 접촉한 여권 인사는 “‘대책회의’라는 과장된 표현을 쓰면 안 된다. 그러나 천신일 회장이 이종찬 전 수석에게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를 거론했고, 그 직후 천 회장은 ‘박연차 세무조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천 회장과 이 전 수석은 고려대 동문으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말했다. 천 회장 본인의 입장은 어떤지 들어봤다.

    ▼ 회장님께선 이종찬 전 수석에게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박연차 세무조사의 착수시점) 7월30일엔 이종찬 수석이 이미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변호사 할 때고. 그래도 이종찬이하고 같이 만난 적은 없고, 김정복(박연차 전 회장의 사돈·전 중부지방국세청장)씨 하고는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종찬 전 수석은 지난해 6월20일 민정수석에서 물러났다.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5월28일 숙소인 조어대에서 조찬 간담회에 앞서 천신일 세중나모관광 회장 등 수행 경제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 이종찬 전 수석에게는 박연차 회장 문제를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네. 네. 네.”

    천신일 회장이 이종찬 전 수석에게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를 거론했는지 여부는 향후 수사 등을 통해 명확히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천 회장의 설명도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천 회장이 이 대통령과의 휴가 부분에 이어 이종찬 전 수석 부분에서도 7월30일이라는 ‘세무조사 착수시점’을 자기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천 회장 본인에게도 그리 유리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기업은 세무조사를 받는지 여부를 세무조사 착수시점 이전에 미리 알기도 한다. 또한 ‘박연차 세무조사’의 경우 공식 착수시점은 지난해 7월30일이지만 이미 지난해 5월경 박연차 전 회장이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음은 언론보도(‘동아일보’ 2008년 5월21일자, ‘한국일보’ 2008년 5월21일자)를 통해 알려진 공지의 사안이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세무조사는 기업과 사주의 사활이 걸린 사안인 만큼 해당기업으로서는 이때부터 전력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태로 판단할 수 있다.

    천신일 회장이 현 정권의 ‘고위 공직자’에게 실제로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를 거론했는지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천 회장은 “청와대나 공직에 계신 분에게 박연차 회장 세무조사 문제를 얘기하신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직접 들은 건 없고, ‘관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은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재차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엔 개입하지 말라. 손을 떼라’는 정부 측의 경고를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아.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직접 내게 얘기한 것은 없고,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와 가까운 사람이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는 관계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느냐’라는 조언을 내게 해주었습니다”라고 했다.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천신일 회장(왼쪽)은 “고대, 연대 등에 63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등에 따르면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에게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문제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박연차 회장 세무조사 문제를 이상득 의원님께 얘기하신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한상률, 모임에서 만났다”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를 주도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이번 박연차 게이트의 또 다른 쟁점 인물이다. 그는 3월 추부길 전 비서관이 체포되기 직전 미국으로 출국했다. 검찰은 천 회장과 한 전 청장이 통화한 내역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이 한 전 청장에게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했는지 여부도 검찰 조사대상으로 알려졌다.

    ▼ 세무조사와 관련해 국세청 측에 알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과는 대학원 동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학원 다닐 때는 세무조사하기 전이었어요.”

    ▼ 그때 인맥이 맺어졌으니까 혹시 이 문제로 한 청장께 얘기하셨는지.

    “전혀 없습니다.”

    ▼ 한 청장을 만나신 적은 있습니까?

    “대학원 모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만나고 그랬죠.”

    4부 돈 거래:전부, 전부 오보입니다. 오보

    천신일 회장은 세무조사와 관련해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다들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세무조사와 관계해 돈을 주고받을 그럴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 돈을 주겠다고 할 그런 사이도 아닙니다”라는 것이다. 개인 명의의 거래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천 회장 측 회사와 박 전 회장 측 회사 간에 여러 차례 투자가 있었던 점이 확인됐다. 천 회장은 이런 거래의 성격과 관련해 세무조사와는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 이 부분은 좀 길게 설명해주시죠. 회장님과 박연차 회장은 검찰이 주목하는 기간, 즉 2007년 2008년을 포함해서 돈거래가 빈번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내가 세중게임박스라는 회사를 했을 때에, 이게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국 총대리점입니다. 소니는 PS2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입니다. 2002년에 여러 법인이 투자 많이 했어요. 그 법인 투자 중 박연차가 투자했을 뿐입니다.”

    “하나, 둘, 셋…일곱 개가 투자”

    ▼ 박연차 회장이 세중게임박스를 인수한 것 아닌가요?

    “태광하고 태진하고 뭐 하여튼 3개 회사가 투자를 했는데 그중에서 태광과 태진이 합병을 했어요. 합병을 하니까 자산가치로 따져보니까 태진이 10억원을 투자했는데 그때 가치로 따져보니까 합병할 때는 회계법인이 다 주도하지 않습니까, 영업권은 손실이 있으면 손실을 털고 플러스가 있으면 그것대로, 이게 회계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것대로 한 것이지 주식 변동은 없었습니다.”

    ▼ 그 외 박연차 회장과 계좌이체로 거래한 게 있습니까?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 그러면 박연차 회장과는 금전적 거래가….

    “네. 전혀 없습니다.”

    ‘태풍의 핵’ 천신일, 검찰소환                        직전 전격 인터뷰

    5월7일 오전 서울 중구 세중나모여행 본사. 직원들이 사진을 찍지 못하게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이고 있다.

    ▼ 빌려주거나 빌린….

    “그런 것 없습니다.”

    ▼ 그러면 왜 일부 언론에서 회장님과 박 회장 간 10억원, 수억원 거래가 있었다, 현금으로 줬다는 보도가 나오는 거죠?

    “전부, 전부 오보입니다. 오보.”

    ▼ 출처가 ‘검찰 관계자’로 되어 있는 보도를 통해 회장님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오는 건 어떤 이유에서죠?

    “저, 추측 보도 아닌가 싶어요.”

    회사 대 회사 간 거래에서는 박연차 전 회장의 태광 계열 7개 회사가 천 회장 측 법인에 투자한 점이 확인됐다. 천 회장은 투자 시기 방법 액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 현금, 수표로 주고받으신 것도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태광 계열 법인에서 내가 하는 법인으로 투자한 회사가 (속으로 하나하나 세어보는 듯 뜸을 들이며) 하나, 둘…셋, 넷…다섯, 여섯…일곱. 일곱 개가 투자를 했는데 그중에서 한 부분이었을 뿐입니다. 상장 법인이 3개는 똑같은 금액으로 투자했습니다.”

    ▼ 얼마씩이요?

    “그건 얘기하기가 좀 그런데…. 법인이 투자하고, 투자를 받고, 그 다음에 자기들이 합병 필요에 의해서 영업권 상각을 했을 뿐이고 주식 수의 변동은 하나도 없습니다.”

    ▼ 영업권 상각은 언제 이뤄졌는데요?

    “그건 우리가 관계할 일이 아니죠. 그쪽 회사에서 자기들 합병에 의해서 영업권 상실로 건 거니까. 이건 세무회계를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정확하게 내용을 알 겁니다.”

    ▼ 저희가 취재한 여권 인사의 말에 의하면 회장님과 박 회장은 부동산에 공동 투자했다고 하는데요?

    “한 건도, 한 평도 없습니다. 내가 얘기하는 게 다 진실입니다.”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의혹에 대해, 천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자격으로 베이징올림픽 당시 협회 부회장인 박 전 회장에게서 선수 격려금 조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동 선수 출신의 부회장이나 이사들은 운동관계를 하고, 기업하는 사람들이 회장이나 부회장을 하면 돈을 내어 격려한다”고 한다.

    ▼ 받으신 액수는 얼마입니까?

    “10여만위안인 것 같았어요. 대충 당시 환율이 150원이니까 2000만원 내외 아니냐는 거죠.”

    ▼ 현금으로 받으셨나요?

    “네. 네.”

    ▼ 받아서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레슬링협회 부회장, 사무국장 불러 돈을 주면서 ‘박 회장이 이 돈을 가져왔으니 적절하게 쓰라’고 했습니다.”

    ▼ 지난해 8월 베이징에서 박연차 회장이 ‘국내에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해 ‘그래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까?

    “그런 질문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 당시는 세무조사가 진행되던 때여서, 박 회장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회장님께 한두 마디는 했을 것 같은데요?

    “‘형님 걱정됩니다.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해서 ‘알아보자’ 그런 정도였습니다.”

    ▼ 박연차 회장이 회장님께 여권과 연결시켜달라는….

    “10원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명백히.”

    ▼ 여권과 연결시켜달라는 그런 얘기는?

    “그런 얘기도 없었습니다.”

    검찰은 천 회장에 대해 기업 활동과 관련된 탈세 문제도 조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나는, 내 생각에는 내가 고의로 탈세한 적이 없다고 보는데, 혹시 해석상의 문제로 세금을 잘못 낸 게 있다면 당연히 세금을 내겠다”고 했다.

    “탈세 있으면 처벌받겠다”

    ▼ 그 부분은 처벌을 받을 의향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잘못됐으면 처벌받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 기억이 없으시고요.

    “네. 고의로 탈세한 적이 없으니까요.”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천신일 회장 측 회사의 주식매매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천신일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도움으로 변칙 주식거래를 통해 거액을 아들에게 증여하고 세금까지 포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검찰이 수사 중”(연합뉴스 5월11일자 보도)이라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검찰 등에 따르면 천 회장과 가족은 2007년 4월 100만주, 5월 92만7000여 주, 11월 135만주의 세중나모 주식을 팔았다. 당시 천 회장 아들은 52만9000여 주를 55억1000여만원에 팔았다. 주가는 6000~1만3000원으로 알려졌다. 1년여 뒤 천 회장 아들은 40만5000여 주를 15억3000여만원에 사들여 실질적으로 4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는데 이때는 주가가 2000~5000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부탁으로 박 전 회장의 지인들이 이 주식매매 과정에 관여했는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자금 거래인 15명 중 박 전 회장의 측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천 회장이 아들에게 직접 주식을 넘기지 않고 박 전 회장 측에게 비싸게 사도록 한 뒤 다시 아들에게 싼값에 되팔게 한 것 아니냐”고 검찰 측이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이에 대해 천 회장은 인터뷰에서 주식거래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이었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신과 가족의 주식거래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러나 설명과정에서 천 회장은 박 전 회장이 문제의 회사 주식에 투자했다 손해 봤다는 점을 인정했다.

    ▼ 박연차 회장의 지인이 주식거래에 개입해 회장님 측이 차익을 많이 남겼다는….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명백히 얘기하는데 박 회장은 주식 잘하는 친구입니다. 예를 들어 세종증권 해서 2백 몇십억 플러스 했고 삼성전자니 해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평소 주식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내 거 해서는 실패했어요. 하하.”

    ▼ 박연차 회장이 실패했으니 회장님 측이 이익을 많이 얻은 것 아닌가요,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는 목소리로) 아니아니 그건 아니구요. 주식이 전부 다 주식 숫자가 많은데 그것 가지고 돈을 벌고 잃고는 별로 없구요. 박연차도 무슨 돈을 잃었으니 어떻게 그런 게 전혀 아니구요. 평소 주식을 많이 하니 어떤 건 잃기도 하고 어떤 건 따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 천 회장님과 가족들이 2007년 4월 100만주, 5월 92만7000여주, 11월 135만주의 세중나모 주식을 내다 팔았는데.

    “맞는데, 그러면 내가 6천 몇백원에서 팔 때, 7천 몇백원에 팔 때, 그 다음에 주가가 쭉 올라가서 1만4000원 할 때 블록으로 1만2700원에 팔았거든요. 나는 그러면 처음 100만주 팔 때 손해를 얼마나 봤습니까. 딱 반값 아닙니까. 그렇죠? 왜 그런가 하면 내가 증권회사에 ‘왜 주식이 오르지 않느냐, 자꾸 빠지느냐’고 물어보니 ‘유통물량이 없다’는 거예요. ‘시장에다 유통물량을 좀 손해를 보고라도 풀면 주가가 좀 올라갈 것이다’라고 해요. 그래서 6천 몇백원대에 100만주 팔고 또 7천 몇백원대에 90몇만주 팔고 이런 거죠.”

    ▼ 그런데 박연차 회장의 지인이 주식을 사주거나 개입을 했나요?

    “그건 전혀.”

    “내가 주식 관계는 깨끗합니다”

    ▼ 이OO씨나 이런 분들이?

    “아니 전혀 관계없는 일이구요. 이OO이도 전혀 아니구요, 그거는.”

    ▼ 김OO씨나 김△△씨는 어떻습니까?

    “그 사람들은 사장이니까 옛날에. 합병해서 주식 준 것일 뿐이고,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주식 관계는 깨끗합니다.”

    ▼ 그러면 지금 언론 보도는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서 나오는 건데, 박 회장의 지인이 회장님 회사 주식 매입과정에 개입해 비싸게 사고….

    “전혀 아니고. 나는 1, 2, 3차 다 기관에 팔았으니까.”

    ▼ 기관이라면 어디?

    “증권회사죠.”

    ▼ 아드님이나 가족 분들도 다 기관에 팔았나요?

    “물론이죠. 몽땅 다. 블록세일이라는 것이 블록으로 묶어서 판다는 것이. 그게 시간 내 안 팔고 시간 외로 기관에 파는 거죠. 몽땅 다 기관에 팔았습니다.”

    ▼ 박 회장 지인이 주식에 관여했다는 건….

    “전혀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 검찰이 압수수색한 15명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과 아는 분들인가요?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죠.”

    ▼ 그중에 박 회장과 아는 분도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5부 대통령의 친구:해피 엔딩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이재명 민주당 부대변인은 4월28일 기자회견에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4월4일, 5월25일, 11월8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천신일씨와 가족 등 특수 관계인들이 주식을 판 금액이 306억여 원”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 중 30억원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에 특별당비로 전해졌다”면서 주식 현금화 과정과 그 사용처에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특별당비 30억원은 천 회장이 빌려준 것이 아니라 대납한 것으로 의심한다. 민주당은 이처럼 박연차 전 회장이 관여한 돈이 천 회장을 거쳐 여권에 흘려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특별검사법을 발의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측은 “법 가지고 장난하지 마십시오”라는 논평을 내는 한편, 민주당 지도부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특히 “특별당비 30억원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여권 유입설’에 대한 검찰수사가 천 회장에게는 오해를 씻는 ‘해피 엔딩’이 될지, 아니면 천 회장은 물론 여권을 의혹의 수렁에 빠뜨리는 ‘또 다른 게이트의 시작’이 될지 주목된다.

    “5개월 뒤 갚은 점 해명된다”

    가장 큰 쟁점 사안 중 하나는 천 회장이 2007년 12월3일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이명박 후보에게 빌려준 특별당비 30억원이다. 대선 당시인 2007년 12월6일자 ‘한겨레’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언론에 “이명박 후보가 은행에서 30억원을 대출받아 특별당비를 냈다”고 설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천신일 회장이 빌려준 돈’이라는 부분이 빠져 있다. “의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요지만 설명한 것이어서 문제가 안 된다”는 평가도 많다. ‘신동아’는 특별당비 30억원 문제를 천 회장에게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 야당 측은 300억원대 자산가인 이명박 후보 측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 특별당비를 납부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이명박 후보 측으로부터 특별당비 낼 돈 30억원을 빌려달라는 요청은 언제 받았습니까?

    “2007년 11월 하순으로 기억하는데, 선거대책본부의 누군가가 ‘1금융권에서 빌리려고 하니 은행법상 못 빌려주게 되어있다’고 해요. ‘2금융권은 괜찮은데 부동산 담보를 하려고 하니 시간이 좀 걸린다. 감정도 해야 하고 설정도 복잡하다. 혹시 예금한 것이 있으면 좀 담보로 빌려 달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건물을 근저당해주겠다’고 해서 (내 정기예금을 담보로) 빌려준 것뿐입니다. 그 이자 5330만원도 내가 다 받아왔습니다. 내가 내 계좌에서 HK상호저축은행으로 보냈고, 만기됐을 때 30억원과 5330만원 내가 다 찾아왔고요.”

    ▼ 정기예금 개설 일자와 근저당 설정일자가 2007년 11월30일로 같은 날이어서, 특별당비를 빌려주기 위한 목적에서 정기예금을 개설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인제, 내가 도와주기로 마음을 굳혔고.”

    ▼ 빌려주기 위해 정기예금을 개설하신 거죠?

    “그렇지. 제1금융권에 있는 것을 제2금융권으로 옮긴 거죠. 제2금융권은 괜찮으니까.”

    ▼ 그건 주식 판 돈이었고요?

    “물론이죠.”

    ▼ 회장님께서는 이명박 후보와 절친한 사이로 두 분 간의 신뢰관계가 확실하고 이 후보의 편의를 일시적으로 봐주는 차원에서 잠시 동안 빌려주신 것인데, 왜 1500만원 상당의 비용이 드는 근저당을 굳이 설정한 건가요?

    “그래도 금전거래는 명확한 것이 좋지 않습니까?”

    ▼ 야당은 실제로는 대납한 것이고 근거를 남겨두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전혀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내 계좌에서 나갔고 내 계좌로 들어왔고, 거기에 대한 사용처도 다 나왔고.”

    ▼ 이 대통령은 왜 5개월이나 뒤인 2008년 4월 하순에, 이렇게 멀찌감치 갚은 건가요?

    “그러니까 인제 자기도 나중에 건물을 팔든지 어떻게 하든지 여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때는 2007년 11월 말이니까 그 정도면 넉넉하겠다 싶어서 뜻 없이 그렇게. 대통령 취임이 2월25일이고 그로부터 돈 준비하려면 두어 달 걸리겠다 싶어서 5개월 뒤로 한 거죠.”

    ▼ 정기예금 개설할 당시에 미리 5개월 뒤로 설정해둔 건가요?

    “물론이죠. 네.”

    “친구면 친구지, 자꾸 부탁하면…”

    정치권에선 천신일 회장은 고려대교우회장으로서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재정적 후원을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천 회장은 “전혀 그런 거 없다. 그때는 고대교우회 100주년이니까, 100주년 사업을 하기 위해서 내가 공식적으로 협조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 회장님께서는 기수별로 후원금을 모금해…(천 회장은 질문의 의도가 대략 파악되었다 싶으면 질문 도중 답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거 없습니다. 자기들이 후원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 천 회장님께서는 고려대교우회에도 상당액을 기부하셨다고 하는데요.

    “30억원을 약정하고 지금 그 반, 15억원을 주어야 하는데 18억원쯤 갔을 겁니다.”

    ▼ 실례지만 그건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주식을 판 돈 가지고.”

    ▼ 주식 매각자금으로요?

    “내가 2006년 11월 고대, 연대, 포항공대(포스텍), 레슬링협회, 국립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에 110만주를 기부 약정했고 그중 50만주를 팔아 50억원만 기부하면 되는데 63억원이 되더군요. 그걸 약정한 데에다 다 주었습니다. 언론은 이런 걸 좀 크게 써주지, 이런 건 하나도 안 써주고 말이야.”

    ▼ 총선 앞두고 고려대 동문들 한나라당 공천받는 데 물심양면 챙기셨습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 교우회장으로서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교우회장으로서 친구면 친구지 그런 얘기를 자꾸 부탁을 하고 하면 친구 사이가 멀어지는 겁니다, 대통령께는. 친구가 대통령 되는 걸로 만족하고 어떤 부탁도 한 적 없습니다.”

    천 회장은 대선 직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수위원회에서 고대 출신이 적자, 고대 동문들 사이에서 역차별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라 경영을 위해서 오히려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 의혹 제기 도 지나치다?

    천신일 회장 측은 지난해 5월16일 설립한 지 한 달 된 ‘이너블루’를 인수(지분 40.1%)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어 5월27~30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경제수행단 일원으로 동행했다. 이너블루는 한 달 뒤인 6월26일 중국 칭하이성과 연간 4억8000만 달러 규모 규석 채굴 보충계약을 맺었다. 이어 지난 2월 이너블루의 규석 채굴 자본유치 주관사로 한국맥쿼리그룹이 선정됐다. 맥쿼리그룹은 이 대통령의 호주 방문 기간 한국 정부와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펀드 조성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회사다. 이너블루는 지난 3월 규석 채굴허가권을 얻었다.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5월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천 회장의 채굴권 확보에 이 대통령의 특혜가 없었는지, 포괄적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찰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신동아’가 접촉한 여권 인사는 “계약만 하면 특혜인가. 우리 정부가 중국 칭하이성에 혜택을 준 것이 없고 그쪽 관리들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나. 민주당 측이 ‘포괄적 뇌물’이라고 까지 운운하며 언론에 발표하는 건 정말 도가 지나치고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천 회장은 “규석광산과 관련해선 대통령에게 입도 벙긋한 적 없고 그런 사업 논의 얘기한 적이 없다. 그리고 채굴계약을 한 회사는 내가 대표이사로 있는 곳이 아니고 광산 계약을 한 회사에 우리 법인이 40% 출자를 했을 뿐이다. 경영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천 회장은 곧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임을 의식해서인지 검찰에 대한 발언은 되도록 자제했다. 그러나 인터뷰 막바지에서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 지금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언론은 회장님께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세무조사 문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계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곧 검찰에 소환되실 예정인데, 이 부분에 대해 억울하시다면 그런 심경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검찰에 가기 전에 민감한 부분은…. 여하튼 (내가 박연차 회장의 돈 10억원을 받았다고 보도한) 모 방송사를 상대로 언론조정신청서를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검찰에 가게 되면, 갔다 와서 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정정을 요청하는 서류를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앞으로요. 너무 틀리는 보도를 했기 때문에 지금 준비를 해놓고 있습니다.”

    “죄 지었으면 구속되어야죠”

    ▼ 그렇다면 세무조사 관여, 금품 수수, 이런 부분에 대해 회장님으로서는 사실무근임에도 실명으로 계속 나가고 있는 것이니까, 심경은?

    “상당히 억울합니다.”

    ▼ 정치적인 부분에 의해, 가령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수사 형평성 때문에 회장님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런 얘기는 검찰에 갔다 온 후에.”

    ▼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얘기는 갔다 와서. 내가 죄를 지었으면 죄를 달게 받을 것이고 죄를 안 지었으면 무혐의가 되는 것이니까 검찰이 판단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검찰 주변에서는 회장님께서 구속되실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

    “내가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구속이 되어야죠.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습니까. 이 얘기는, 송전탑 얘기(‘신동아’ 2009년 5월호의 “천신일 땅‘150억’ 피하려고 송전탑 선로변경 특혜의혹” 보도)는 왜 안합니까?”

    ▼ 네, 말씀하시죠.

    “이게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 대통령과는 언제 마지막으로 대화하셨나요?

    “어, 꽤 오래됐습니다. 난 요새 송구스러워 전화도 못 하고 있죠.”

    ▼ 그런데 이 부분이 이 대통령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잘못되면 친구가 잘못된 죄를 지었으니까, 친구인 대통령도 모양이 좋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천 회장은 ‘신동아’ 5월호의 ‘송전탑’ 기사에 대해 “총신대 측이 언론중재위에 제출한 반론기사문을 게재해달라”고 ‘신동아’에 요청했다. 그러나 총신대 측에 확인한 결과, 총신대 측은 언론중재위에 반론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천 회장 부지 내 송전선로 변경 경위에 대한 한국전력공사 측의 설명은 ‘신동아’ 6월호의 ‘알립니다’에 수록돼 있다.

    “변호사가 펄펄 뜁니다”

    천신일 회장은 첫 번째 전화 인터뷰 후 두 차례 더 ‘신동아’에 전화를 걸어와 인터뷰 기사의 게재를 한 달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전화에서도 천 회장은 주식거래 등에 대해 묻자 추가적으로 상세히 해명하기도 했다. 천 회장은 연기를 요청하는 것은 검찰을 의식해서라고 했다. 다음은 천 회장의 설명이다.

    “나는 검찰에 곧 소환되는 줄 알고 ‘신동아’와 인터뷰를 했어요. ‘신동아’ 발행일이 17, 18일경이니까 내가 검찰에서 조사받고 난 뒤에 책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하고 나서 언론보도를 보니 검찰 소환이 18일 이후로 늦춰질 거라고 하네요. 내가 검찰에 나가기 전 ‘신동아’가 나와버리면 내 입장이 난처할 것 같아요. 검찰이 할 걸 다 해명하고 들어오니까. 5월로 끝날 테니 그때 편안하게 만나서 와인 한잔 마시며 다 얘기해드릴 테니까, 이번에는 연기해 주십시오. 변호사와 오늘 의논했더니, 나는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펄펄 뜁니다.” 천 회장은 재차 “하여튼 5월 내 끝나니 6월에 만나서 다 설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나는 세무조사와 관련해 돈 받은 것 없으니 괜찮다”는 낙관론의 연장으로 들렸다.

    국민적 관심대상인 유명 실세가 인터뷰에 응했다 검찰소환이 미뤄지자 기사 게재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해오는 건 언론으로서도 잘 접해보지 못한 경우다. 심사숙고 끝에 게재하기로 했다. 우선 천 회장의 ‘신동아’ 인터뷰에 강요는 없었으며 본인의 필요에 의해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공인(公人)이라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을 프라이버시는 있다. 그러나 기사화를 전제로 스스로 인터뷰에 나서 말하는 순간, 그 내용의 보도 여부는 언론사가 결정하는 영역에 귀속된다.

    전·현직 정권이 모두 얽혀들어 있는 권력비리의혹 스캔들이라는 이 사건의 중대성, 공공성에 비춰봤을 때 사실 사건 당사자인 천 회장의 직접 설명은 국민에게 충분히 제공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 천 회장이 사건의 쟁점과 관련해 ‘신동아’에 세세하게 밝히는 내용은 검찰의 소환수사와는 별개로 공공에 알려져야 할 필요성이 높은 사안으로 판단된다. 검찰 수사만이 진실을 독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언론사가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해 본인의 주의 주장이 여론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보도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유리한 일이다. 천 회장도 이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찰의 사법적 판단은 조사대상자에 대한 선입관이 아닌, 오직 증거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다만 천 회장의 게재 연기 요청은 변호인의 법률적 대응 전략 차원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천 회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찰의 신용을 저해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방해할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천 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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