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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 대항해’ 시작한 여수세계박람회

‘녹색기술’ 춤추는 ‘현대판 난장’ 준비 중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1000일 대항해’ 시작한 여수세계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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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를 주제로 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10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수엑스포는 인간, 연안, 바다가 조화를 이룬 녹색엑스포를 지향한다.
‘1000일 대항해’ 시작한 여수세계박람회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펼쳐질 174만5000㎡ 부지엔 각종 전시시설과 지원시설이 들어선다.

여름 볕이 내리쬐는 남도의 흙은 붉은빛이 매혹적이다. 흙 두덩을 따라 털커덕털커덕 기차가 달린다. 전북 익산을 떠난 전라선 열차는 해안을 만나면서 속도를 늦춘다. 열차가 마침내 쪽빛 바다 앞에 멈춰 선다. 기차의 종착역인 전남 여수는 바다의 도시다. 이름이 가진 뜻을 풀어 읽으면 ‘아름다운(麗) 물(水)’.

여수는 봄의 동백꽃, 여름의 갯장어가 유명하다. “소문난 보양식으로 한번 먹으면 1년은 너끈하다”는 게 횟집주인의 너스레. 갯장어는 그물이 아닌 주낙으로 잡는다. 김정호(57)씨가 만흥동 바닷가에서 낚시를 한다. 만흥동 해변의 모래는 한국에선 드문 검은색이다.

섬들의 안식처

“여수의 미래가 박람회에 걸렸습니다. 여수에 큰 선물을 주는 행사입니다. 이제 꼭 1000일 남았습니다. 시민들의 기대가 아주 커요.”

그는 침을 튀겨가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택시기사 김철수(52)씨도 똑같았다.

“중앙정부 지원이 시원찮을 거라는 얘기가 나돌아요. 정부가 화끈하게 도와줘야 합니다. 지방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오. 우리는 엑스포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둘러보소.”

여수는 동백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오동도, 흑비둘기가 사는 백도를 비롯해 317개의 섬을 품에 안고 있다. 육지는 바다를 만나면서 야트막한 산들을 남겨놓았다. 처녀의 가슴패기를 닮은 산은 여수의 또 다른 자랑이다.

만흥동에서 박람회장이 들어설 덕충동으로 가려면 암반이 울퉁불퉁하게 속살을 드러낸 왕복 1차선의 마래터널을 지나야 한다. 1926년 일제가 군사용으로 뚫은 이 터널엔 한(恨)이 서려 있다.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서 산을 뚫었습니다. 사람이 망치로 일일이 판 겁니다. 공사 중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해요.”

여수시청 공무원 박정령씨가 표정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주민을 이주시켜 박람회 부지를 조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광주에서 일하다 여수로 옮겨왔다고 한다.

“바다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산도 봉긋한 게 예쁘지요? 아이들은 광주로 돌아가겠다고 성화인데, 나는 삭막한 광주에선 이젠 못 삽니다.”

다도해는 육지가 침강한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으로 호수를 닮았다. 바다는 고요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해안선이 기가 막혀요. 점점이 박힌 섬은 아득하고요. 바다가 아니고 꼭 큰 호수 같습니다. 동해안, 서해안의 파도는 철썩하고 부서지는데 여수의 파도는 달라요. 새색시처럼 녹아버립니다. 조수간만의 차이도 느끼기 어렵고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게 박람회 입지로서 여수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강동석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위원장의 여수 예찬(禮讚)이다.

토끼산 중턱에 오르니 박람회장이 들어설 귀환정과 수정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탄을 만들던 공장은 문을 닫았고, 사람이 떠난 귀환정의 주택은 을씨년스럽다. 호수를 닮은 바다 건너엔 경남 남해가 손에 잡힐 듯 떠 있다.

귀환정은 일제강점기에 징용당하거나 일본군으로 참전했다 돌아온 이들이 정착한 곳이다. 이 마을의 103가구는 보상을 둘러싸고 한국토지공사와 갈등을 빚었다. 주민들은 일제에 끌려갔다 귀향한 이들의 2세다. 주민들은 결국 가구당 2000만원의 전세자금을 지원받고 여수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놓았다. 7월31일 귀환정에서 위령제가 열렸는데, 주민들은 여수엑스포가 탈 없이 치러지기를 소망했다. “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고 한 주민은 말했다.

철컹…쿵~! 철컹…쿵~!

올해 말 완공되는 KTX 여수역사 공사장에서 굉음을 내뿜는다. KTX역사는 박람회 부지의 중심에 서 있다. 국제크루즈선과 페리가 정박할 국제크루즈터미널 기반공사도 진행된다. 여수는 박람회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관제탑에도, 항만에도, 아파트에도 ‘2012여수엑스포’ 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1851년 런던박람회가 효시

“여수. 코리아 77표.”

2007년 11월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가 결정되자 여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여수는 2차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모로코 탕헤르에 신승을 거뒀다.

그로부터 1년 9개월이 흐른 8월12일로 여수박람회가 10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수엑스포는 2012년 5월12일부터 석 달간 열린다. D-1000일을 기점으로 여수엑스포는 출항 준비를 본격화했다.

근대적 의미의 첫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다. 영국은 이 박람회에서 자신들이 가진 첨단 기술을 뽐냈다.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진보, 번영을 자축하는 행사였다.

엑스포는 지금까지 105차례 개최됐다. 미국 30회, 영국 14회, 프랑스 12회, 벨기에 7회, 이탈리아·스페인 5회, 일본 4회, 스웨덴 3회 등 선진국에서 주로 열렸다. 선진국들이 앞 다퉈 엑스포를 개최한 까닭은 엑스포를 통해 ▲국가와 도시를 홍보하고 ▲생산 및 고용을 유발하면서 ▲저개발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한 데 있다.

엑스포는 세계 각국이 자국의 국력·기술·문화를 자랑하는 축제 마당이다. 프랑스는 1889년 파리엑스포 때 에펠탑을 세웠으며, 일본은 1970년 오사카박람회를 통해 기술 강국의 지위를 다졌다. 한국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고자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1993년 대전엑스포를 개최했다. 한국이 처음 참가한 박람회는 116년 전인 1893년 시카고엑스포로 기와집 형태의 전시관에서 관복 도자기 모시 부채 갑옷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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