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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거족 열풍

Let it be 그저 그들이 사랑하게 하라

  • 김신현경│이화여대 강사 todamo@hanmail.net│

쿠거족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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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라고 한다. 여성은 자신보다 나이 든 남성을, 남성은 자신보다 어린 여성을 이상적인 연애 및 결혼 상대로 찾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던 시대에 이제 어떤 변화가 오고 있는 모양이다.
쿠거족 열풍

16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이 된 데미 무어와 애쉬든 커처.

미디어는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명명도 모자란지 미국에서 유행하는 ‘쿠거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들여와 분석이 필요한 하나의 ‘현상’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애용하는 인터넷 ‘다 선생’과 ‘네 선생’에게 문의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연하의 남성과 결혼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에 대한 신상명세서부터 한국형 쿠거족에 대한 분석, ‘당신은 쿠거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의 설문조사 결과, 쿠거족이 나오는 드라마와 그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커플(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바람직한 커플’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가장 욕망함직한 커플이라면 또 몰라도)까지 내가 이 글에서 풀어내야 할 ‘쿠거족에 대한 모든 것’이 이미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 아닌가(그러니 ‘쿠거족’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은 ‘다 선생’과 ‘네 선생’께 우선 문의하시길).

깜박이는 커서를 몇십 분간 노려보며, 원고를 쓸 때마다 던지는 ‘내가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하다 미디어는 미디어고, 어디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지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주위에서 그나마 연애를 하고 있다는 친구들의 면면을 떠올리다보니… 그렇다, 그들은 모두 연하의 남성들과 목하 열애 중이 아니던가!

이 깨달음은 다소의 황망함을 동반했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거의 매일같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던 그녀들의 그 연애를 이른바 트렌드라는 ‘연상연하’ 연애라는 틀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로 내 친구들이 끝까지 먹잇감을 노리며 주위를 맴돈다는 고양이 친척 ‘쿠거’? 솔직히 말해서 나나 내 친구들처럼 트렌드에 무심한 인간도 흔치 않을 텐데, 거 참, 이렇게 되면 ‘연상연하’가 대세이긴 대세인가 보다.

연상연하 유행? 그냥 연애!

이쯤에 생각이 미치자 트렌드에는 한참 모자라고 특수하다고 여겼던 내 친구 집단의 문화와 사회적인 유행 현상이 겹치는 작금의 상황을 해명하는 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여겨져 급하게 SOS를 쳤다. 연상, 연하를 골고루 사귀어본 경험이 있는 A. 그녀에게 물었다. 연애할 때 연상의 남성과 연하의 남성이 차이가 있느냐고.

“차이? 글쎄, 사람마다 다르니까 뭐.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건 있지. 연상인 경우에는 아무리 동등하다, 평등하다 해도 결정적일 때는 ‘오빠 말 안 듣느냐’ 뭐 이런 식으로 권위적으로 굴고, 나도 뭔가 기대게 되고. 그런데 연하는 가끔 ‘자기도 남자’라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런 것도 귀엽게 보이고, 권위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현재 상당히 나이 차가 있는 연하의 남성과 사귀고 있는 그녀는 자신에 대한 존중, 아기자기한 배려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남자친구의 이런 성격은 그간 자주 들어오던 그녀의 연애 자랑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를 ‘연하의 남성’이 갖는 특성으로 틀지어 얘기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조금 앞질러 말하는 것이 되겠지만, 바야흐로 ‘연상연하 연애’는 특수한 몇몇 사람의 앞서가는 유행이 아니라 세상의 많고 많은 연애 양태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사실 알고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현재 70대에서 80대 노인 세대 중에는 ‘연상연하’ 커플이 상당히 많다. 요즘 새롭게 나타난 현상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이 세대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하는 요즈음과는 달리 높은 유아사망률과 출생, 사망 등록 등 근대적인 인구 등록제에 대한 낯섦으로 인해 태어난 지 몇 년 지나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상 나이가 다른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출생이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딸의 경우에는 아들보다 출생 신고를 더 늦게 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나이는 실제와 많이 다르다.

또한 이 세대가 태어난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강제 징용을 피하느라 아직 혼인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일찍 혼인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사를 지낼 아들을 낳는 것이 조상에 대한 의무로 여겨졌으므로, 아직 어린아이까지 일찌감치 혼인을 시켜 후손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몸의 성장을 비교적 분명히 알 수 있으므로, 2차 성징이 나타난 여자 아이와 그보다 다소 나이 어린 남자 아이의 혼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인 양상에 부작용이 없을 수 없었다. 1900년대 초반 고향에서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나이 많은 여성과 혼인한 남성들이 도시에 나와 신문물을 접하고, 근대식 교육을 받은 뒤 자신의 부인을 ‘나이 많은 구식 여성’으로 여기며 인연을 끊다시피 한 사례는 아주 많다. 그들은 당시만 해도 용인되었던 처첩제(妻妾制)에 따라 별 갈등 없이 도시의 신여성들과 연애하고 중혼(重婚)을 했는데, 이는 남성보다 구여성, 신여성 할 것 없이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흔히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을 유사 이래 으레 있어온 자연의 질서로 여긴다. 수많은 역사학자, 사회학자, 여성학자들의 작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을 틀지어온 양상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다.

나는 앞서 내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연상연하 커플링이 제국주의 지배와 ‘대잇기’라는 맥락에서 틀지어졌다고 볼 수 있음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연상연하’가 하나의 독특한 현상으로 이해되는 이유는 내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커플링 양태와 직접적으로 대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그들 세대에서 적지 않은 수의 ‘연상연하’ 짝짓기에 대해 발설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커플링이 일반적이고, 나아가 보편적인 짝짓기 양태로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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