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마흔 살 아저씨 팬이 그룹 ‘소녀시대’에게 보내는 편지

“남들이 뭐라 해도 오빠는 너희가 너무 좋다. 아흑!”

  • 이승재│동아일보 기자 sjda@donga.com │

    입력2009-09-09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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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Girl) 그룹 전성시대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2NE1’ ‘브라운 아이드 걸스’ ‘카라’ ‘포미닛’ 등으로 대표되는 걸 그룹들이 최근 가요차트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걸 그룹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아저씨’ 팬층이 전면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소녀시대’의 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룬 ‘소시당’(‘소녀시대 당’의 줄임말)은 아저씨 팬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일 정도. ‘삼촌팬’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아저씨 팬들은 멤버들의 생일을 챙기거나 사인회에 떼를 지어 출몰하기도 한다. 30~40대가 주축인 이들은 1980년대 마이클 잭슨과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면서 서울 강남역 일대 디스코텍을 드나들던 대중문화의 적극적인 향유층이기도 하다. 아저씨 팬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9인조 소녀그룹 ‘소녀시대’에게 마흔 살 아저씨 팬이 보내는 가슴 절절한 편지를 싣는다.
    마흔 살 아저씨 팬이 그룹 ‘소녀시대’에게 보내는 편지
    유리=오빠, 정말 내일 밤에도 시간이 안 난단 말씀이세요?나=으음, 미안해. 갑자기 회사에 야근이 잡혀서 말이야.

    유리=거짓말, 거짓말. 화요일 저녁엔 꼭 저를 만나주신다고 했잖아요. ‘국가대표’(영화) 함께 보러가기로 약속해놓고…. 허니 팝콘이랑 버터구이 오징어 먹으면서 손잡고 영화 보기로 했잖아요.

    나=나도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 하지만 진정한 사나이라면 일을 거부해선 안 되는 거야.

    유리=오빠 이러는 거 다 ‘티파니’ 때문이죠? 사실은 내일 티파니 만날 거죠? 걘 내숭쟁이란 말이에요. 오빠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사람은 저예요, 유리.

    나=아유, 내 마음속엔 유리뿐이야. ‘윤아’도 만나봤고, ‘태연’이도 만나봤고, 얼마 전까진 ‘제시카’와도 짬을 내어 만나봤지만, 역시 내겐 유리였어. 너의 새까만 머릿결이 오빠를 사로잡아버렸다고.



    유리=(감격한 표정으로) 아, 오빠! 감사해요. 전 머릿결이라면 자신 있어요. 오빠를 위해서라면 전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어요. 오빠가 유부남이란 사실은 저에겐 어떤 의미도 제약도 될 수 없어요.

    나=으음, 그렇진 않아. 난 아내를 사랑해. 난 유리와는 꼭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을 생각이야.

    유리=아, 너무 멋져! 그런 건 어떠해도 상관없어요. 만약 오빠가 저를 버리시면, 그냥 콱 죽어버릴 거예요.

    나=(능글맞은 표정으로) 으흐흐, 유리, 이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소녀시대’ 멤버들아. 이 오빠가 바로 어젯밤에 꾼 꿈이란다. 오빠가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음악선생님(미혼의 미녀였음)과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꾼 이후로 가장 짜릿한 꿈이었지.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꿈이 실현되지 않을지라도, 오빠는 너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너희가 고맙다. ‘아저씨’로만 불리던 이 마흔 살 남자의 심장에 다시 뜨거운 피가 돌도록 만들어준 게 바로 너희였으니까. 너희를 좋아하는 한,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다.

    “‘소녀시대’ 멤버들아, 요즘 너희를 보면 내가 미친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고등어구이에다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혼합주)을 몇 잔 했는데, 순 너희들 얘기뿐이더라. 늘 교실 난롯가에 앉아 1교시만 끝나도 점심도시락을 다 까먹었던 한 동창친구는 자기가 너희 팬클럽인 ‘소시당’ 회원이라고 자랑하더라. 그러면서 우린 ‘소녀시대’ 멤버인 ‘티파니’가 멤버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풍문이 정말 사실인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단다. 또 다른 멤버인 ‘제시카’가 얼마 전 한 TV 가요프로그램 리허설 자리에서 자기 앞을 우연히 가로막은 막내 멤버 ‘서현’에게 험담 비슷한 걸 내뱉는 모습을 한 팬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단다. 한 친구는 “제시카의 입 모양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상스러운 욕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소시당’ 회원인 친구는 “제시카가 직접 밝힌 바와 같이 ‘이 바보야’라고 말한 게 맞다”고 끝까지 반박하더라. 다만, 우리는 ‘소녀시대’의 리더인 ‘태연’이가 평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더라면, ‘소녀시대’가 이토록 구설에 올라 마음고생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함께했어.

    마흔 살 아저씨 팬이 그룹 ‘소녀시대’에게 보내는 편지

    ‘소녀시대’의 청순한 미소와 섹시한 다리는 아저씨 팬들에게 죄스러운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소녀시대’ 멤버들아. 요즘 너희를 보면 내가 미친다. 난 사실 너희들이 2007년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갖고 나왔을 때만 해도 그냥 ‘귀여운 애들’ 정도로만 생각했단다. 이후 지난해까지 ‘소녀시대’(가수 이승철의 동명 곡을 리메이크), ‘Kissing You’ ‘Baby Baby’ 같은 노래가 연이어 히트했을 때도 이토록 가슴이 뛰진 않았어. 나를 너희의 ‘포로’로 만든 건, 바로 올해 너희들이 들고 나온 불멸의 히트곡 ‘Gee’였단다.

    너희 아홉 명이 레깅스를 방불케 하는, 몸에 심하게 달라붙는 청바지(스키니 진)를 입고 나와선 “너무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숨을 못 쉬겠어. 떨리는 걸(girl). Gee Gee Gee Gee,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하고 노래 부르며 깜찍한 얼굴로 일제히 엉덩이를 흔들어댈 땐, 이 마흔 살 아저씨의 마음이 참 혼란스러워졌단다. 그걸 ‘소시지룩’이라고들 하던데…. ‘소시’(소녀시대)가 ‘지(Gee)’라는 노래를 부를 때 갖추고 나오는 ‘룩(Look·외모)’의 약자. 아유, 왠지 야해. 특히 너희가 머리를 좌우로 순진무구하게 흔들면서 일명 ‘게다리 춤’(게가 옆으로 걷는 것처럼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옆으로 움직이는 춤)을 출 땐, 아저씨 가슴이 터져버리는 줄로만 알았어. 뭐랄까. 딸처럼 귀엽기도 하고,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여대생 애인처럼 싱싱하고 섹시해 보이기도 하고…. 으음, 잘 키워보고도 싶고 뜨겁게 사귀어보고도 싶은, 그런 복잡 미묘한 아저씨의 감정을 이제 갓 열아홉, 스무 살 된 너희들이 이해할까? 콕 집어 표현은 못하겠지만, 피겨의 여왕 김연아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이었단다.

    그건 분명 문근영을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었어. ‘국민 여동생’이라고 칭했던 문근영은 사실 성적(性的)인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않았거든? 그저 ‘귀엽고 착하다’는 느낌이었지. 근데 너희를 바라보면, 이건 달라. 유식한 말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자기감정이나 행동에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그 순간과 과정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의지와 상관없이 복종하게 되는 감정)’라고 하지? 우리 아저씨들이 겉으론 너희를 딸 취급하지만 속으론 음흉한 생각을 한 번쯤(아니 더 많이) 품어보는, 그런 ‘나쁘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음 말이야. 그런 상태가 되어버리곤 한단다.

    난 처음엔 궁금했어. 철없는 10대들을 넘어 30, 40, 50대 아저씨들의 마음까지 미혹하게 만드는 너희의 이런 모습이 상업적으로 철저히 의도된 건지, 아니면 우연히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인지 말이야. 그런데 너희가 ‘Gee’에 이어 최근 ‘소원을 말해봐’라는 노래를 들고 나왔을 땐, 분명히 알겠더라. 이건 10대뿐 아니라 우리 아저씨들까지 타깃으로 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일단 우리 아저씨들은 이 노래의 가사에서부터 확 달아올랐어. 가사를 한번 살펴볼까.

    “(태연)소원을 말해봐. 네 마음속에 있는 작은 꿈을 말해봐. 네 머리에 있는 이상형을 그려봐. 그리고 나를 봐. 난 너의 지니(Genie·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야, 꿈이야. 지니야. (서현+윤아) 드림카를 타고 달려봐. 넌 내 옆자리에 앉아. 그저 내 이끌림 속에 모두 던져. (유리) 가슴 벅차 터져버려도, 바람결에 날려버려도, 지금 이 순간 세상은 너의 것. (모두) 그래요. 난 널 사랑해. 언제나 믿어. 꿈도 열정도 다 주고 싶어.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 소원을 말해봐. 소원을 말해봐….”

    아, 너를 보라고? 내가 운전하는 스포츠카에서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함께 달리겠다고? 회사 일이나 잔소리하는 마누라 같은 복잡한 얘기는 모두 던져버리라고? 그냥 이 순간을 너와 즐기라고? 내게 꿈과 열정을 다 주겠다고? 내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고? 소원을 말하기만 하라고? 그래.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 나의 소원을 말해주마. 소녀시대 아홉 명 멤버들과 모두 함께 최고급 월풀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해보는 게 내 소원이야. 됐니? 정말 들어줄 수 있니? 내 소원. 아, 하지만 이런 건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야 하는 거지, 입 밖으로 내어 말해선 안 되는 거지….

    이 아저씨를 너무 저질이라고 탓하진 말아줘. 너희들이 ‘소원을 말해봐’를 부를 때 너희의 옷과 춤을 보면, 아저씨로서 오히려 이런 생각을 품지 않고는 못 배길 걸? 먼저 너희 옷을 좀 봐. 거창하게 ‘마린룩’(해군 복장과 흡사한 패션으로 선원이나 선장 등 바다와 관련된 것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거 일본산 ‘야동’의 대표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세일러복’을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 아니야? 게다가 여기에 핫팬츠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아홉 미녀가 늘씬한 다리를 쭉쭉 뻗어대는데…. ‘제기차기 춤’이라고 해서 오른다리 왼다리 차례로 살짝살짝 굽혀가며 제기 차는 시늉을 하는데, 이 아저씨들 뇌리엔 오직 너희의 가녀린 종아리 라인만 확실하게 들어올 뿐이란다.

    아저씨들까지 확 달아오르게 하는 ‘Guilty Pleasure’

    아, 뭐랄까. 무슨 물랭루즈에서 캉캉 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이 묘한 기분! 이런 너희의 모습을 보면서 ‘아아, 참 순수해’라고만 생각할 아저씨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마린룩으로도 모자라서 군복 비슷한 ‘밀리터리룩’을 연이어 입고 나와 아저씨들의 ‘제복 판타지’를 부추기는 건 또 뭐니? 소녀시대 너희, 너무 잔인한 거 아니니? 책임져.

    근데, 혹시 너희들 생각해본 적 있니? 왜 아저씨들이 유독 너희 ‘소녀시대’를 좋아하는지 말이야. 요즘 ‘걸(Girl) 그룹 전성시대’란 말도 있잖니? 너희뿐 아니라 ‘2NE1’(투애니원·4인조) ‘카라’(5인조) ‘포미닛’(5인조) ‘브라운 아이드 걸스’(4인조) 같은 소녀그룹들이 요즘 가요계를 휩쓸고 있지. 그런데 우리 아저씨들이 특히 좋아하는 그룹은 너희 ‘소녀시대’랑 ‘원더걸스’란다.

    ‘소녀시대’랑 ‘원더걸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어.

    먼저 첫 번째는 노래와 춤이 참 쉽다는 점이야. 너희들 노래, 이 아저씨들이 딱 한 번만 들어도 노래방에서 따라 부를 수 있거든? ‘원더걸스’의 ‘텔미’를 볼까? “텔미, 텔미. 테테테테 텔미….” 얼마나 쉽니. 특히 ‘원더걸스’의 히트곡 ‘So Hot(소핫)’은 클라이맥스 가사까지 끝내줘. “I′m so so so hot hot.” 듣기만 해도 뜨거워지잖아? 춤도 인터넷에 10대들이 올린 UCC 동영상 보면서 연습하면 2~3일 안에 마스터할 수 있어. 그러고는 회사 젊은 여직원들과 회식자리에서 써먹는 거지. 노래방에서 너희들 노래 부르면, 여직원들이 난리야. “차장님, 너무 멋져요. 완전 신세대야!”하면서 말이지. 다시 말해, 너희들 노래와 춤을 따라 하다보면 어느새 나 스스로 ‘아저씨’를 벗어나 회춘(回春)한 느낌이란 말이지. 남들한테도 ‘신세대 문화와 공감하고 그것을 만끽하는 진취적이고 세련된 남자’란 인식을 심어줘 회사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말이야. 근데 ‘2NE1’이 부른 ‘Fire’는 노래나 춤이 너무 어려워. 우린 그저 ‘예쁜’ 걸 원하는데, ‘2NE1’이 내세우는 ‘힙합정신’이란 것도 영 부담스럽고. 또 노래에 랩은 왜 이렇게 많아? ‘카라’는 귀엽긴 하지만, 너무 ‘아이’들 같은 느낌이 나서 뭔가 확 잡아당기는 맛이 모자라지.

    소녀시대, 포에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두 번째 공통점이 뭔지 알아? 바로 멤버들이 갖는 이미지야. 너희 두 그룹의 멤버들은 하나 같이 ‘징그럽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뭐랄까. 귀엽고 한편으론 섹시한 느낌도 들지만, ‘대놓고 섹시함을 드러내는’ 콘셉트는 아니지. 그래서 아저씨들이 공개적으로 “나 쟤들 좋아해. 쟤들 팬이야”라고 밝히는데 부담이 없어. 아내나 여직원들 앞에서 “나 이효리 광팬이야” “나 서인영 열혈 팬이야”라고 말해봐. 그럼 십중팔구 “아유, 너무 밝히는 거 아니야?”라는 핀잔을 들어. 졸지에 ‘저급’으로 전락해버리는 거지. 하지만 “여보, 나 ‘소녀시대’가 참 좋더라”라고 말하면, 아내는 나를 센스 있고 젊은 취향의 남편으로 생각해준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내 앞에서도 대놓고 좋아할 수가 있어. “‘원더걸스’에 흠뻑 빠졌다”고 해도 아내가 질투하거나 경계하는 법이 없어. 왜냐하면 ‘원더걸스’는 ‘손담비’처럼 한 명이 아니라 무려 다섯 명이나 되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냥 ‘원더걸스’라고 하는 ‘무리’를 좋아한다고 아내는 생각해. 그중 ‘선예’를 좋아하는지, ‘예은’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소희’나 ‘유빈’이나 ‘선미’를 좋아하는지 생각하진 않는단 얘기지. ‘흑심’을 품어도 완벽한 위장이 가능한 것이야. ‘걸 그룹’의 순수성과 귀염성을 좋아한다고 ‘포장’을 하면서도, 아저씨들은 속으론 소녀 멤버들의 섹슈얼리티를 소비한다고 볼 수 있지.

    게다가 ‘소녀시대’나 ‘원더걸스’가 부르는 노래 가사나 춤은 귀엽고 다소 고전적이야. 특히 ‘Nobody(노바디)’를 부르는 ‘원더걸스’를 봐. 아저씨들에게 익숙한 반짝이 의상에다 하늘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1970~80년대 디스코를 복고적으로 추잖아? 가사는 또 얼마나 순정적이고 순종적인데.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난 다른 사람은 싫어 네가 아니면 싫어.” 아! 나를 마초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여자! 이건 남자들의 로망이야.

    이에 비해 ‘2NE1’의 노래와 춤은 지나치게 진취적이고 도발적이야. ‘2NE1’의 히트곡 ‘I Don′t Care(난 상관 안 해)’의 가사를 들여다볼까.

    “네 옷깃에 묻은 립스틱들 나는 절대로 용서 못해. 매일 하루에 수십 번 꺼져있는 핸드폰.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아. (중략) I don′t care. 그만 할래. 네가 어디에서 뭘 하든 이제 정말 상관 안할 게. 비켜줄래. 이제 와 울고불고 매달리지 마.”

    아유, 무서워. 아저씨들이 볼 땐 자신감이 너무 넘쳐. 지금 이 남자에게 목숨 걸지 않고도 얼마든지 혼자 잘 살 수 있단 얘기잖아? 뭔가 쑥스러워 하고 새침해 하는 ‘맛’이 없지. 그룹 이름대로 너무 21세기적이야. 우리 아저씨들은 그런 여자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질 뿐이지. 핫팬츠에 하이힐 신은 ‘소녀시대’의 다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지만, 파격적으로 찢어진 레깅스 차림의 ‘2NE1’이나 ‘포미닛’은 너무 도전적이고 강해서 “좋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엔 좀 부담스럽거든.

    아,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나 스스로가 천생 ‘아저씨’네. 우리가 너무 부담스럽니? 하지만 어떡해. 너희가 좋은 걸. 그래도 단란주점에서 폭탄주나 먹고 비싼 담배 피워대는 데 빠지는 것보단 너희한테 빠지는 게 사회적으로도 훨씬 건설적인 게 아닐까. 우리는 ‘소녀시대’ 너희가 광고모델로 나오는 통닭 시켜 먹고 너희 브로마이드 한 장 한 장 모으는 맛에 산단다. 우리 중 일부는 ‘음원 다운로드’를 어떻게 받는 건지 몰라서 너희의 CD를 통째로 사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저씨 팬은 오로지 우리 ‘소녀시대’가 잘되어야 한다는 염원에서 CD를 산단다. 우린 너희가 앞으로도 영원히 예쁘고 귀엽고 살짝 섹시한 ‘소녀’들로 남길 바라. ‘소녀시대’, 포에버!

    정신과 전문의가 본 ‘소시’ 신드롬

    대한민국의 아저씨들은 왜 걸 그룹들에 열광하는 걸까? 그들은 어떤 심리에서 움직이는 걸까? ‘심리학 초콜릿’과 ‘스타트 신드롬’의 저자인 김진세 고려제일정신과 원장은 다음과 같이 이유를 분석한다.

    “쉽지 않은 분석이다. 전체적으론 30~50대 아저씨들이 느끼는 불황심리의 탈출구로 볼 수 있다. 사회의 중추세력인 ‘아저씨’ 집단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심리적 불안감이 쌓일 땐 본능적 욕구의 해소를 통해 이 불안감을 일부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과거에 보여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술이나 담배, 여자, 도박 등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 쓸 돈이 풍부하지 않은데다가 이런 ‘탈출시도’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비정상적이며 병적인 행위들로 지적되면서 사전에 차단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걸 그룹들을 통해 아저씨들은 욕구불만의 세계로부터 ‘대리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걸 그룹을 만들어내는 공급자(연예기획사)의 상업적 전략이란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청순하면서도 섹시하고, 똑똑해 보이면서도 ‘멍’해 보이고, 청순한 딸의 느낌도 있지만 동시에 섹시한 애인 같기도 한 소녀들의 외모는 중년 남성의 자기도덕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또 외우기 쉽고 친근한 노래와 춤은 우울하고 힘든 아저씨들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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