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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송파 | 松坡

김영순 Style, 도시의 표준을 바꾸다

  •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김영순 Style, 도시의 표준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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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파구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해 세계로부터 주목받은 게 아니다. 김영순 스타일은 디테일을 강조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를 지향했다.
김영순 Style, 도시의 표준을 바꾸다
백화점 가죠?”김영순 송파구청장이 뜬금없이 묻는다.

“당연히 가죠. 왜 물으세요.”

“백화점 입구에 회전문 있죠? 우측보행이에요, 좌측보행이에요?”

“우측으로 걷죠.”

초등학교 때 ‘교양인은 좌측통행’이란 구호를 익힌 게 떠오른다.

“에스컬레이터는요?”

“우측으로 오르내리는 것 같은데요.”

그가 웃으면서 또 묻는다.

“그런데 왜 좌측통행을 해왔을까요?”

“….”

2007년 7월, 송파엔 색다른 현수막이 걸렸다.

‘우측보행, 송파가 시작합니다.’

한국서 가장 먼저 우측통행을 시작한 곳은 송파다. 말마따나 에스컬레이터, 회전문, 지하철 개찰구는 오른쪽 걷기를 기준으로 삼는다. 육상 트랙도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게끔 설계한다. 그런데 학교에선 왜 왼쪽으로 걸으라고 가르친 걸까?

한국도 처음엔 우측통행이 원칙이었다. 첫 근대적 도로교통법인 1905년 ‘대한제국 규정’이 그렇다. 좌측통행으로 바뀐 건 1921년 조선총독부가 규정을 바꾸면서다. 그 후 한국인은 일제의 규정에 따라 왼쪽으로 걸었다.

“우측보행이 사람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도로, 교통표지판도 우측보행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고요. 그동안 좌측보행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겁니다.”(한양대 인체공학연구센터 김정용 교수)

인간의 인지·신경계는 좌측통행보다 우측통행을 선호한다. 좌·우뇌가 비대칭인데 주의력에서 우뇌가 좌뇌보다 우수하다. 우측통행하면 좌측통행할 때보다 정신부하, 심장박동수가 각각 13%, 18% 줄어든다.

10월1일 보행자 통행 방식이 88년 만에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지하철 역사 계단마다 화살표 모양의 우측통행 안내 표지가 붙었다. 인체가 설계된 방식 덕분인지 걷는 방향을 바꿨는데도 큰 혼란은 없었다.

김영순 Style, 도시의 표준을 바꾸다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석한 김영순 송파구청장

“잘못된 규정을 바로잡지 않고 88년 동안 엉뚱하게 걸은 겁니다. 건널목에 서서 사람이 오른쪽으로 걷나, 왼쪽으로 걷나 관찰해보세요. 전세계에 좌측통행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어요. 일본도 1946년 우측통행으로 바꿨습니다. 옛날 같으면 우리만 안에서 고생하면 됐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대예요.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얼마나 헛갈리겠습니까? 반대로 외국 나가서 왼쪽으로 걸으면 민폐겠죠. 송파가 2년 전 우측보행을 시작한 후 청와대에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2년여의 캠페인, 건의, 홍보 끝에 ‘김영순 법’이 국가의 표준이 됐어요.”

김영순 Style

2007년 봄, 송파구청 여권과는 오전 7시부터 붐볐다. 대기표를 받으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다른 구청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기표를 못 받으면 다음날 또 줄을 서야 했으며, 신청 서류를 제출한 뒤 여권을 손에 쥐기까지 1주일 넘게 기다려야 했다.

“출근길 수백 명의 시민이 줄 선 걸 보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간 밀린 물량만 털어내도 여권 발급에 소요되는 시간이 준다는 걸 알았습니다.”

여권과 직원들은 대기 물량을 털어내고자 밤샘을 밥 먹듯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여권 신청부터 발급까지의 소요 시간이 48시간으로 줄었다. 사정이 급박한 시민에겐 30분 만에 여권을 발급해줬다.

입소문은 바람처럼 퍼지게 마련. 서울, 경기에서 시민들이 송파구청으로 몰려왔다. 하루 400건이던 여권 발급 신청 건수는 800건으로 늘었다. 다른 구청은 송파구의 혁신을 떨떠름해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관가의 묵계(默契)는 송파를 중뿔나게 여겼다.

“빠르면 이틀, 급하면 4시간 만에 여권을 만들어주겠다고 발표했어요. 다른 구청에선 뭐 잘났다고 설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욕먹을 각오를 했어요. 직원들한테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은 세상이 바뀌었죠. 비법 같은 건 없습니다. 여권과 인원수는 다른 구청과 비슷했죠. 평소보다 일을 많이 한 게 해법입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밤늦게 퇴근한 거죠. 잡담, 사적 용무로 낭비하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1시간으로 보장된 밥 먹는 시간도 줄였고요.”

송파구의 혁신이 알려진 뒤 서울시는 여권 발급 대행 업무를 맡은 구청의 여권과장을 소집해 4일 이내 발급을 권고했다. 지난해 8월부터 자치구들의 여권 발급 처리 소요 기간은 4일로 줄었다. 송파구의 여권 발급 혁신은 2007년 서울시 창의행정 대상을 수상했다.

“송파구 혁신의 핵심은 일종의 ‘양심선언’이다.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뿐 이들이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이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2007년 5월23일자 경향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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