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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美, MB의‘아무개’ 무슨 뜻인지 묻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美, MB의‘아무개’ 무슨 뜻인지 묻다

  •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그랜드 바겐”을 발표했다. “더 큰 대한민국”을 내걸었다. 그리고 ‘아무개’를 이야기했다.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세 용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아무개’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MB의 자신감이 오히려 불안하다.
美, MB의‘아무개’ 무슨 뜻인지 묻다
9월21일 이명박 대통령은 뉴욕 연설에서 북핵 폐기와 대북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을 ‘원 샷(one-shot deal)’에 맞바꾸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제안했다. 그러자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고 했다.

9월30일 청와대에서 ‘특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대통령이 내년 G20 정상회의를 한국에 유치한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허공에다 손을 크게 흔들며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 그랜드 바겐에 한?미 간 이견이 없다고 하면서 “미국의 아무개가 모르겠다고 하면 어떤가”라고 했다. ‘아무개’는 캠벨 차관보를 지칭한 말이었다.

“뉘앙스를 말해달라”

이 대통령의 아무개 발언 다음날 미국 정부에서 한반도문제를 담당해온 한 전직 고위 관리는 한국인 지인 A씨를 찾았다. 넌지시 “아무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A씨는 “어떤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전직 미국관리는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한국인이 그 단어를 사용할 때의 뉘앙스와 맥락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특정하게 지칭하지 않는 표현으로 ‘김모씨’‘이모씨’가 있다. 그러나 ‘모(某)’를 아무개로 바꿔 쓸 때는 대개 존칭인 ‘씨’가 빠진다. ‘김아무개’‘이아무개’라고 한다.

美, MB의‘아무개’ 무슨 뜻인지 묻다
실제로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어떤 사람을 아무개로 표현한다면 이는 그 사람에 대한 비호감이나 비하의 뉘앙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 정당은 “검찰의 지적수준은 변 아무개 수준”이라는 논평을 냈다. ‘변 아무개’라는 익명의 표현이지만 보수성향 인터넷논객인 ‘특정 유명인’을 지칭한 것이 자명하다. 이때 아무개는 그 특정인을 비하하는 작용을 한다.

한 국내 일간지는 이 대통령 기자회견의 영문판 기사에서 ‘so-and-so’라고 썼다. 사전의 제1 의미로는 아무개, 속어 의미로는 ‘나쁜 사람’, ‘싫은 사람’으로 번역된다. A씨는 전직 미국 관리에게 아무개의 뉘앙스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해줬다.

A씨에 따르면 미국 외교당국의 전직 관리들은 퇴임 후 민간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어 정부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특히 미국 고위 외교당국은 확인할 내용이 있을 때는 직접 나서는 대신 이들 전직 관리들을 동원해 알아보는 게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보름쯤 뒤 캠벨 차관보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중국, 일본 순방에 앞서 정상회담 의제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들렀다. 한국만 건너뛰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특히 대통령의 외교 발언은 일상적인 ‘말(speech)’과 구별되는 ‘발화행위(speech act)’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위’의 효과를 낸다. 국가의 진로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라는 유기체’는 ‘아이다(AIDA) 모델’의 수순에 따라 한국 대통령의 아무개 발언에 주목했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했으며, 그에 상응한 행동을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한국만 건너뛴 것으로 행동의 끝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진심으로 착각했다?

아무개 발언의 실마리가 된 그랜드 바겐 구상은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과 내용적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후자는 남북한에만 해당하는 사안인 반면 전자는 6자회담 참가 6개국에 모두 해당하는 사안이다. 당사국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그중 미국과의 사전 조율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캠벨 차관보뿐만 아니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그의 의견(his remark)”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너무 나갔다(far-fetched)”고 했다. 다음날 미국 정부는 “한미 간 다르지 않다”고 수습했지만 10월9일 오바마 정권과 가까운 조엘 위트 전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그랜드 바겐은 도착하는 순간 이미 사망했다”고 못을 박았다.

어쩌면 한미 간에 조율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조율이 불가능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명박 정권의 그랜드 바겐의 ‘오리지날판’은 2005년 마이크 모치즈키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더 큰 당근과 더 큰 채찍’으로서의 ‘그랜드 바겐’ 이론이다. 순차적 단계적 접근을 배제한 공화당 매파의 방식과 가끔 혼용되었고 지금의 오바마 정권은 분명히 그 방식을 싫어하는 것으로 비친다.

“북핵 문제는 마치 월가에서 테이블 위에 돈을 쌓아놓고 이 돈을 받고 손 떼라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위트 전 북한담당관이 이명박 정권의 그랜드 바겐을 일갈한 내용이다. 한미관계 복원을 최고의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그랜드 바겐 문제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 사이에 괴리가 생겼고 이명박 정권은 한미관계의 긴장을 감수하고서라도 의사를 관철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가정은 현실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언뜻 보아도 북핵 문제에서 한미 간 이해관계의 괴리는 그리 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 모두 북핵 폐기 및 위협의 제거를 지향하고 있다.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랜드 바겐과 같은 목표에 이르는 방법론상의 차이다. 드러나 있는 상황만 놓고 본다면 북핵 문제에서 오바마 정권이 북한과 같은 민족인 이명박 정권에 비해 훨씬 덜 강경한 방식을 택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미 간 갈등은, 한국 정부가 보수성향이든 진보성향이든, 주로 미국이 북한에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려 한 데서 발생해왔다는 점에서 의외의 일이다.

이명박 정권은 애써 복원한 한미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그랜드 바겐 발표를 강행할 이유가 없고 북핵문제 대응과 관련해 한미 간 중요한 갈등요인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랜드 바겐을 둘러싼 한미 간 논란은 사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는 다소 놀랍고 흥미로운 말을 했다. “이명박 정권은 진심으로 자신의 그랜드 바겐이 오바마 정권의 북핵 정책과 마찰 없이 조응하는 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발표하면 미국 정부로부터 암묵적 혹은 명시적 동의와 지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명박 정권이 시간적 순차성을 부정하는 그랜드 바겐 특성과 그 반대의 오바마 북핵 정책 특성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착오’로 간과했을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안 그랬다면 오바마 정권의 최대 반감을 산 것으로 보이는 “원샷(one-shot)”이라는 표현은 사전에 충분히 튜닝(조정) 될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더 큰 대한민국’의 불편함

월가에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는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미국 일극체제에 중국이 조심스럽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이 안보의 근간인 한국에 있어 10년 뒤, 20년 뒤의 상황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회복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의 미래 역시 여전히 불투명하다.

핵무기 탑재 가능 대륙간탄도탄을 앞세운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과 이 대통령의 ‘더 큰 대한민국’ 선언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눈앞의 현실의 슈퍼 파워와 말로 하는 구호가 대비되었다. 지금은 자신감을 표출할 때는 아닌듯 하다. 더 큰 대한민국은 더 조용히, 신중하게, 실력을 길러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구호화’하는 순간 불편한 느낌을 준다. 주변국들에게도 경계심을 줄 것이다. 국가 프로파간다의 전문가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랜드 바겐, 더 큰 대한민국, 아무개…. 일련의 매끄럽지 못한 상황은 대통령의 외교안보 보좌진에 대한 점검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차관보.

이명박 대통령

신동아 2009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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