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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②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두 번째 르포 : 한강로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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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곳엔 어김없이 다툼이 생긴다.
  •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일대가 헐리고 새로 지어지면서 사람을 웃기고, 울린다.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배혜자(74) 할머니가 배추김치를 담근다. “국수 말아 이제껏 살았다”며 웃으신다. ‘옛집’이란 간판을 내건 국숫집은 낡은 건물 안쪽 작은 공터에 있다. 전차가 다닐 적 정거장 터란다. 숭례문, 서울역을 지나온 전차가 이곳에 섰다. 남산 한강 이태원으로 길이 갈리는 삼각지의 지번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삼각지 로터리엔 34층 높이 주상복합건물 ‘용산파크GS자이’가 서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한강로의 랜드마크. 한강로는 지금 헐리고 새로 지어진다. 삼각지에서 한강로2가, 3가 방향으로 고층건물이 진격 중이다. 높은 건물이 새로 서는 곳엔 어김없이 다툼이 생긴다. 한강로2가에선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

‘옛집’은 ‘용산파크GS자이’ 맞은편 우리은행 용산지점(옛 조선실업은행 용산지점) 뒤쪽에 있다. 조선실업은행 용산지점은 1921년 4월1일 개점했다. 조운선(漕運船) 포구이던 용산은 일제강점기 때 경인선 철도가 지나면서 돈이 돌았다. 1899년부터 영업한 첫 근대(近代) 은행인 대한천일은행은 조선실업은행과 합병하면서 이름을 잃었다.

배 할머니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국수를 말았다. 전라도 승주 산골서 여천의 산골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함께 상경해 동작구 흑석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30여 년 전 남편이 죽은 뒤 강을 건너와 가게를 냈다. 할머니는 남편 얘기를 하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3남1녀를 낳았는데 아들 하나를 잃었다고 한다.

2평 남짓한 방엔 깎아놓은 무가 가득하다. 배추 140포기, 무 8가마로 1주일 동안 손님에게 낼 김치를 담근다 했다. “중국산 김치가 싼데, 왜 사서 고생하시느냐”고 묻자 “배고픈 사람 상대로 그따위로 장사하면 죄 받는다”고 면박을 준다. 젓갈이며 멸치를 보여주면서 “여천서 올라온 놈들”이라고 자랑한다.

대기업 광고에도 나올 만큼 소문난 ‘옛집’의 3000원짜리 ‘온국수’는 소박하다. 멸치국물에 소면을 말아 내는데 ‘담백하다’는 말 외엔…. 솔직히 국수보다 김치 맛이 더 좋았다. 할머니의 손은 세월의 흔적으로 거칠었다. ‘옛집’ 주변 풍경은 지금도 1960년대다. 할머니의 걱정은 오래된 집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거다.

“국수 팔아서 자식 키웠는데…. 헐리면 돈 벌 데가 없어. 다행히 이번엔 빠졌어. 다음엔 들어갈 것 같은데….”

‘옛집’에서 나와 한강 방향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한강로 2가다. 용산재개발 4구역 남일당 건물 1층엔 분향소가 있다. 누군가 ‘살인 개발도, 폭력정권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라고 써놓았다. 1월9일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식이 열렸다. 지난해 1월20일 희생된 이들은 ‘민중열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삼우젯날 분향소는 썰렁했다. 세입자 2명이 분향소를 지켰다.

“작년 봄까지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희생자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돈을 둘러싼 줄다리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희생자 5명의 보상금은 35억원.

“조건이 1년 전과 달라졌느냐”고 두 세입자에게 묻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전철련(전국철거민연합)한테 물어보라. 전철련에 모든 걸 위임했다”고 답했다. 한 세입자는 “돌아가신 분 몫이 많아…”라고 말끝을 흐렸다. 희생자는 세입자가 2명, 전철련 회원이 3명이다.

분향소 옆 골목에서 ‘장안약국’을 운영하는 이상화 할아버지도 세입자다. 할아버지는 “세입자 보상은 달라진 게 없다”면서 시큰둥해 했다.

지금껏 휴업 보상비만 3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났을 뿐이다. 갈등의 핵은 상가 권리금. 시행사는 권리금을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전철련이 개입하면 투쟁은 공격적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떼법’이 통하지도 않는다. 근원적 처방은 논의되지 않는다. “더 줘라” “못 준다” 다툴 뿐이다. 결국 ‘명분’은 사라지고 ‘돈’만 남는다. 약간의 뒷돈을 챙기고 대열을 이탈하는 세입자가 나타나고, 그 수가 늘면서 동력은 약화한다. 각개격파(各個擊破). 지도부가 가장 먼저 뒷돈을 챙기고 뜨는 예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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