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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해동네’와 ‘달동네’를 인정하라

정신병 한방치료 전문가의 자살예방론

  • 황웅근│흰구름한의원장, 심성계발연구소장│

내 마음속 ‘해동네’와 ‘달동네’를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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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해동네’와 ‘달동네’를 인정하라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최근 몇 년간 연예계 대스타와 경제계 대표, 유명 정치인, 심지어 전직 대통령마저 자살하는 사건이 잇달았다. 유명인은 제쳐두고라도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수위에 오른 지 오래다. 마치 자살 바이러스에 감염된 나라처럼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생명을 포기하는 풍조가 만연한 대한민국. 어쩌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는가. 이 글에서는 그 심리적 원인과 기전을 밝혀 예방책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왜 자살을 하는가. 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괴롭기 때문만은 아니다. 괴로움이 점점 커지면서 고통이 극에 달하고 더는 이 땅에 붙어 있을 곳이 없을 때 인간은 심리적 피난처로서 자살을 떠올린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자살은 편안한 안식처로 인식되고 결국 한 가지 생각만 남는다. ‘어떻게 자살을 할 것인가.’자살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다가 결국은 자기도 모르는 새 실천하고야 만다.

그들은 어떻게 하여 극도의 심리적 고통에 처하게 되었을까?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각종 사회보장이 잘돼 있는 핀란드나 일본과 같은 선진 복지국가라 하더라도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면 외적 요인보다 내적 요인이 훨씬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자살률이 높은 선진 국가인 핀란드의 경우 모든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으로 갈수록 자살률이 급속히 높아지는 것을 보면 복지정책에 따른 환경적 요인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전체적으로는 경제적 풍요를 이뤘지만, 경제의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외적 요인이 강할지라도 개인의 심리가 건강하면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반면, 외적 요인이 약할지라도 개인의 심리가 불안하면 극단적 선택을 일삼기 쉬운 점을 보면 역시 궁극적으로는 내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적 요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개인 심리의 불건전성이다. 심리의 불건전성은 각종 정신병을 일으킨다. 우울증, 불안장애,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라

개인 심리의 불건전성이란 병적 심리다. 병적 심리란 무엇인가? 인정하지 않는 심리다. 무엇을 인정하지 않는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의 한 부분은 인정하되, 또 다른 부분을 인정하지 않음을 뜻한다.

어떤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가?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은 인정하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러지 않은가. 아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은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도 인정한다. 각종 시험에 합격하면 내 뜻대로 되는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두 가지밖에는 없다. ‘내 뜻대로 되는 세상’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를 ‘해동네’로 규정하고 후자를 ‘달동네’로 규정해본다. 해동네와 달동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개인 심리가 건전한 사람들은 해동네와 달동네 그 둘을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해동네 하나만을 인정하고 집착하면서, 또 다른 세상인 달동네를 부정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달동네를 부정하면서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나 달동네가 어떤 존재인가. 겨울과 같고, 밤과 같고, 비와 눈과 같이 존재하는 엄연한 세상이다. 거대하게 존재하는 삶의 한 축과 사투를 벌인다면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지는 자명하다. 존재는 승리하고, 나는 처절히 깨지고 패배한다. 그렇게 패배해도 좋다. 철저히 패배해서 해동네만 인정하는 나의 고집이 꺾인다면, 나는 다시금 유연해지고 새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계속 고집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집을 꺾지 않을수록 나와 존재의 싸움은 점점 치열해지고, 그만큼 고통은 가중되며, 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최후로 가장 불행한 선택을 감행한다. 해동네도 좋지만, 달동네도 괜찮다. 둘 다 인생에 필요한 한 축이며,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준다. 고로 괜찮다. 아무렴 괜찮다.

‘해동네도 좋지만, 달동네도 괜찮다’라는 사고방식은 존재를 인정함이요, 유연성이요, 믿음이다. 달동네를 부정하고 해동네여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은 사기와 절도, 강도, 강간, 폭력, 살인과 전쟁, 자살로 이어진다. 이런 사고방식은 총보다, 칼보다, 핵폭탄보다 위험하다. ‘해동네도 좋지만, 달동네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줄 안다면 어찌 자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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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웅근│흰구름한의원장, 심성계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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